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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상상_ 최후의 생존자는?

<나, 참 쓸모 있는 인간>, 김연숙 작가의 그 문장

내게 <<토지>> 안팎의 사람들은
소심함의 쓸모도 알려주었습니다.
이해득실을 따지는 일로부터의 소심함이 아니라,
인간의 부끄러움에서 비롯되는 소심함의 쓸모 말입니다.

<나, 참 쓸모 있는 인간> , 김연숙


1. 카라코람 하이웨이 실크로드 길을 따라


10여 년도 훨씬 전 여행 프로그램을 장기간 하면서 낯선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빵빵했을 무렵, 선배 작가 언니의 제안으로 평상시 가기 힘든 특별한 여행을 가게 되었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중국 신장자치구의 카슈가르에 이르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라고 부르는 약 1,200km에 이르는 옛 실크로드 길을 따라가는 여행은 매해 문명교류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실크로드 역사 탐방 여행의 일종이었다.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선공부 후 여행. 떠나기 전에 4주에 걸쳐 그 지역의 실크로드 공부를 하고 떠나는 여행이라는 점이었다.  




2. 낯선 사람들과의 14일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던 선배 작가를 따라나선 여행은 듣던 대로 구성원이 정말 다양했다. 10대 중학생부터 70대까지, 성별도,  직업도 다양한 낯선 사람들과 떠난 2주간의 여행이었다. 그 옛날에도 그랬겠지만 요즘 같이 교통 편한 세상에도 가기 힘든 코스였다. 몇 시간씩 포장도로를 달리고 입에 안 맞는 현지식을 같이 먹는 것은 디폴트였고 예상치 못한 여러 일들이 여행 내내 이어졌다.                  


어느 마을 입구에서는 갑자기 시위대가 버스를 에워싸고 올라오는 바람에 잔뜩 긴장해야 했고, 고산지대에서는 누군가 술을 먹고 숨을 못 쉬고 쓰러져 산소탱크를 사러 가는 사건도 있었고, 실크로드 흔적이 남아있는 암석 위의 문양들을 보기 위한 길에는  뜨거운 땡볕 아래 화장실이 없어 우산으로 가리며 볼일을 봐야 했다. 당시 중국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해라, 중국 접경의 서쪽 국경을 넘을 때는 검문이 무자비했다. 작은 용량의 치약도 눈앞에서 집어던지고, 일행의  가방을 다 열어젖혀야 하는 일들도 있었다. 힘들게 중국 국경을 넘어 우루무치에 왔을 때는 우리 숙소에서 멀지 않는 곳에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는 걸,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고 국경 넘어 들어간  어느 작은 마을 숙소는 너무 더러워 침대에 몸을 옆으로 세워서 자아 했다. 몸의 불편함보다 매일이 예측 불허의 상황이었다는 게 오지 여행의 본질인 것 같다. 지금은 잊지 못할 여행의 맛으로 남아있지만.



3. 원하든, 원하지 않던 느슨한 가족처럼


모르는 사람들과 2주간의 여행은 종일 같이 생활하면서 원하지 않았는데도 느슨한 가족 같아졌다. 함께 밥을 먹고 생활을 공유한다는 좋은 의미도 있지만,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느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상황에 따라, 각자 자기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너무 더워 모두 탈수 증상을 겪게 됐을 땐,  나이 지긋한 간호사 출신의 한 분이 나서서 준비해온 히말라야 소금을 나눠준 덕에 탈수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냉방병에 걸린 사람에겐 차 안에서 바람이 덜 나오는 곳으로 자리를 양보하고, 음식에 안 맞아 고생하던 사람은 같이 현지 음식을 못 먹는 미안함을 자신이 가져온 온갖  반찬을 나눠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재능 기부의 형태도 있었다. 누군가는 역사에 해박해 역사 이야기를 해주었고, 또 통역 역할을 하고,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단체 사진 촬영을 맡았고, 젊은 사람은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일을 하고, 그것도 아니면 차 안에서 간식을 돌리는 사소한 일이라고 맡아하곤 했다. 그렇게  원하든, 원하지 않든 2주간 함께 먹고 자고 이동하는 동안, 서서히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4. 이상한 상상_ 누가 가장 먼저 죽을까?


여기서 밤마다 난 이상한 상상을 했다. 도시에서 중요했던 것과 여행지에서 중요한 것의 순위가 달라지는 게 보였다.  머리보다는 힘이, 복잡한 지식보다 실용적인 지식이, 매뉴얼 되지 않은 일을 처리하는 순발력이 중요한 오지의 생존 방식. 불편한 일이 생기면 상황에 맞춰 해결하거나 포기하거나의  선택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오지에서 어떤 이유로 누군가를 버리거나 죽여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누가 제일 먼저 희생될까? 제일 쓸모가 없어서 사라져야 할 사람은 누가 될까?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쓸데없는 상상의 상상을 더하던 중, 내 레이더 들어온 한 남자. 그는 중년의 남자였다. 어떤 상황에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동 중에도  탈까 봐 팔토시만 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덥다고 밖에 나가지도 않고 에어컨을 켠 차 안에서 혼자 자리를 지키는 모습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


‘아, 저 사람이 1순위구나.' 그는 정부기관에서 꽤 고위직인 남자였다. 도시에 있었다면 그의 능력은 최고치였을 텐데, 낯선 이곳에서의 그의 쓸모를 평가하자면 0!!  예를 들면 간식을 나눠주거나 짐을 들어주는 것과 같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작은 일조차 1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그럴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았겠구나. 하지만 여행 와서도 똑같은 방식을 고집하는 중년 남자의 모습이 거슬리면서, 나의 이상한 상상의 첫 목표물이 되었다.  


그날 밤 생각했다. 그 남자에 비춰볼 때, 이곳에서 나의 쓸모는 무엇일까? 과연,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도시에서 생각하는 쓸모란 진짜 쓸모였을까?  진짜 쓸모란 무엇일까? 사람의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나는 가장 먼저 사라져야 할 1 순위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상하고 엉뚱한 상상으로 밤이 지나갔다.  



5. 쓸모의 가격표, 문명과 오지의 차이


가끔 쓸모의 가격표를 생각한다. 같은 위험 상황에 빠진다면, 누가 남고 누가 죽게 되는 걸까? 누가 귀하고 그렇지 않은가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 기준은 정당한가? 문명의 기준에서는 자연의 원리와 다르게 허약한 누군가도 이해득실에 따라  '권력'을 가진 강자로 만들어진다. 외모, 학력, 돈, 출신 등의 보이지 않는 권력. 이것은 진짜 능력이고 쓸모일까? 그렇다면, 상황이 달라져도 변치 않을 사람의 가치와 쓸모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떻게 길러지는 걸까? 그러면서 매일 밤 여기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최후의 생존자는 누구일까를 상상하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과연, 쓸모란 무엇이란 말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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