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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을수록... 지나침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속 D의  말



책 속에서 D는 이렇게 말한다. "시를 읽을수록 지나치지 못하는 게 많아요."  과연 그런지 궁금해 D가 추천한 시집을 사서 그가 말한 시 <게릴라성 호우> 한 편을 따라 읽어본다.  



게릴라성 호우


거리의 비는 잠시 아름다웠다

위에서 보는 우산들은 평화로이 떠가는 잠깐의

행성이 된다


곧 어마어마한 욕설이 들려오고 뭔가 또 깨고 부수는 소리

옆집 아저씨는 일주일에 몇 번 미치는 것 같다

한 여름에도 창문을 꼭꼭 닫을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나는 오늘도 한마디도 안 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마시면서 아아 했지만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는 말이 아니니까

홑이불처럼 잠시 사각거리다가 나는 치워질 것이다

직업도 친구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훌륭하다는 생각도 했다


작은 배드민턴 라켓 모양의 전자파로 모기를 죽였다

더 죽일 게 없나 찾아보았다

호흡을 멈추면서 언제까지나 숨 쉴 수 있다는 듯이


자정 무렵 택배 기사가 책을 갖고 왔다

그것이 땀인 줄 알면서 아직 비가 오냐고 물어봤다

내륙에는 돌풍이 불어야 했다


굳이 이 밤에 누군가가 달려야 할 때

너를 이용하여 가만히 편리해도 되는지

내 모든 의욕들을 깨뜨리고 싶다


- 김이듬, <<표류하는 흑발> > -




내게 두려운 사람이 있다면 생각의 '확신범'이다. 자기가 생각한 것을 순도 100%라고 믿는 믿음을 볼 때마다, 나는 두렵고 조마조마하고, 또 가끔은 그게 진짜 가능한 일일까 궁금해진다. 그러면서도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거침이 없으면 좋겠고 내 생각에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확신범이었으면 좋겠다고.......


나의 바람과 달리 언제 어디서나 늘 흔들릴 준비가 되어있는 내 마음은 '확신'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걸리는 건 나. 생각의 거미줄에 걸려 넘어지는 건, 나다. 그래서 불편하고 이래서 마음에 걸리고... 그럼에도 결과는 별반 달라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마음에는 걸리는 것 투성이다.




“빗길에 천천히 오셔도 돼요”


밖에서 비가 오는 날, 배달 앱에 이런 문구를 써넣는 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괜찮은데........ 너는 지나치는 게 많은 삶을 살면 훨씬 편할 텐데........ 시도 한 편 읽지 않으면서 지나치지 못하는 게 많으면 어쩌란 말인가. 아니면 시라도 읽던지. 하지만 난 이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말았다. 이 머뭇거림이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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