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고딩장기투숙객을 키우는 김져니
Nov 15. 2022
곁이 필요한 분이 계시다면...
- 시집 서점에서 보낸 문자 한 통 -
#1. 곁이 필요한 분이 계시다면
“행사를 하는 것이 맞을까, 내내 고민을 하다가, 마음 어려운 분들 중 곁이 필요한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싶어 졌습니다......”
-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 -
참석을 해야 하나 망설이던 때 도착한 문자 한 통. 시집 서점에서 열리는 시 낭송회 진행에 관한 내용이었다. 지난 토요일 밤 이태원 참사 후, 행사에 가는 게 맞는지 망설이던 찰나 온 문자. 하지만 “곁이 필요한 분들”이라는 단어에 이미 내 마음은 훌쩍 가닿았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마음을 혼자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헤매느니 가는 게 낫겠다 싶어 대학로로 향한 발걸음.
한 서점의 나선형 계단 위에 세 들어 있는 시집 서점. 어젯밤 참사로 무거운 마음을 안고 온 10명이 모였다. 문학평론가의 사회에 따라 시 한편씩을 돌아가며 낭송한 후, 마음의 조각을 나누는 시간. 나와 어느 중년을 빼고 20~30대의 젊은 친구들이다.
이래도 되는 걸까. 이런 일에 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내 갈등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진은영 시인의 신간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의 16편의 시를 돌아가며 낭송하고 각자 마음에 와닿는 시에 기대에 자신의 감정의 한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꺼내놓는다.
# 2. 깨진 마음이 찾아간 자리
너는 건드렸다
컵들은 다 깨졌어
사랑하는 이여, 금 간 컵들에 대해 변명할 필요가 없다
나를 이 몹쓸 바닥에서
쓸어 담아줘
- 봄의 노란 유리 도미노를 , 진은영 -
첫 시는 깨진 마음에 대한 것이었다. 유리처럼 와장창 깨진 마음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그 마음은 어떻게 자리를 찾아가야 할까. 슬픔, 미안함, 분노, 뭐라 이름 짓기 어려운 감정의 조각들. 각자의 이유로 온 다양한 사람들이었지만 갑작스러운 대형 참사로 겪게 된 깨진 마음들을 보여 주었다. 처음 보는 사이지만, 어쩌면 그래서 솔직할 수 있는 마음을 내보였을지 모르겠다. 안산이 고향이고 세월호 가족과 이웃하며 산다는 누군가는 그날이 떠올랐다 말하고, 누군가는 힘없는 시가 뭘 할 수 있을지 물었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빈 마음을 말하다 울먹였다. 부서지고 흐트러진 감정들이 쏟아진 자리. 말을 꺼내기 조심스럽고 힘들었지만, 이상하게 감정을 꺼내놓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곁’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책방지기가 우리에게 보낸 그 문자처럼.
“마음 어려운 분들 중 곁이 필요한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싶어 졌습니다......”
그날 책방을 나서며 생각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모른 척하는 게 슬픔을 잊는 게 아닐지 모른다고. 2022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 앞에서 느끼는 슬픔과 고통과 무기력함을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그렇게 고통을 말하고 듣고 지우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 3. 추모 글로 남은 참사 현장
그날로부터 열흘 뒤 가본 10.29 이태원 참사 현장. 지하철 역을 올라가는 양쪽 벽면에 메모지들이 빼곡했고, 지하철역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손바닥만 한 공간이 추모장소였다. 수많은 꽃들과 추모 글로 가득한 장소는 기대하던 추모 분위기와는 다르게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 혼돈스러웠다. 내가 간 날은 유명 정치인이 헌화를 하러 오는 바람에 이 장면을 찍으려는 카메라들로 북적였고, 그 옆에는 진혼굿 소리가 시끄럽고,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추모객들이 섞여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처음엔 멍한 채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이런 일상적인 장소가 참사의 현장이 되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러다 메모지를 한 장 한 장 읽으며 그날의 현장이 실감 났다. '미안하다', '기억하겠다', '분노한다'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이 색색의 종이로 남아있었다. 그중 눈길이 머문 건 19살 딸을 잃은 아버지의 손 편지. 꿈 많은 널 다시 못 본다는 게 안 믿기고 너무 보고 싶다며 꾹꾹 눌러쓴 편지를 읽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여기에... 사람이... 살아 있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4. 곁을 내주는 동그란 무릎의, 애도
외국인 희생자들은 사진도 걸려 있고 나이도 이름도 알 수 있는데, 우리나라 희생자들은 158명이라는 숫자 뒤에 가려져 나이도, 이름도, 얼굴도 알 수 없었다. 유가족들에게는 잊고 싶고 고통스러운 기억이겠지만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애도의 방식이 너무 달라 마음이 아팠다. ‘사람’이 있었다는 흔적을 지운 듯한 추모 현장. 점차 늘어나는 사망자가 ‘숫자’로만 남고 ‘사람’이 빠진 애도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동안 주인공들은 쏙 빠진 시끄러운 뉴스를 보며 단체로 실어증이 걸렸으면 싶었다. 정작, 말하기가 필요한 사람들인 유가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빨리 잊으라고 어서 지우라고 강요하는 듯한 사회 분위기가 안타깝고 한편, 무섭기도 하다. 내가 책방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시를 함께 읽고 사람들과 슬픈 감정을 나누며 위로받았듯이, 곁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곁'을 내줘야 하지 않을까.
힘없는 한 편의 시도 사람에게 '곁'을 내주는 판에, 슬픔이 슬픔에게 말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허락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 편의 시가 곁이 되고 고요히 모여 앉은 동그란 '무릎'이 되어주듯, “곁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곁'을 내주는 진정한 애도의 시간이 있었으면 싶다.
.....
그러니까 시는
돌들의 동그란 무릎,
죽어가는 사람 옆에 고요히 모여 앉은
.......
- 그러니까 시는, 진은영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