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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기억해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작가의 그 문장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1. 그의 부재

 

매해 한 번씩 열리던 강의 축제 그랜드 마스터 클래스는 코로나로 몇 차례 연기되며 무산되나 싶었는데 다행히 3년 만에 다시 열리게 되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시간이 늦춰지면서 행사의 단골 연사인 이어령 선생님을 만날 수 없었다는 것.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책 <마지막 수업> 출간 소식에 혹시나 하면서 올해도 선생님의 강의를 기대했지만 부고 소식이 먼저 들렸다. 그렇게 미리 만들어 둔 영상으로 선생님을 만나야 했다. 매해 그 자리에 계시던 선생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시간이었다.




#2.  그를 담기엔 간장종지였던 나


이어령 선생님과는 인연은 15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료조사 시절을 끝내고 내 이름의 원고를 시작하던 혈기왕성한 시절 신년 특집으로 이어령 선생님과의 대담 프로를 맡게 되었을 때다. 그해 이슈와 전망을 묻고 대답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도 유명 경제 전문가였기에 나만 잘하면 되는 프로그램이었다. 련 책들을 쌓아두고 공부하고 미친 듯이 질문을 뽑았다.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원고를 작성해 방송에 들어갔지만 첫 질문을 하고 알았다. 내가 예상한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질문 하나 했을 뿐인데 이어령 선생님의 속사포 같은 답변은 가지치기를 하며 내 대본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베테랑인 진행자와 티키타카로 분위기도 좋았지만 오프닝과 클로징만 빼고 내가 한 것은 뭘까. 며칠 밤샘하며 썼건만  '내 원고는 쓰레기야~ 정말 발렸어.'라며 스스로 자책한 시간.  분명, 이어령 선생님같이 방대한 지식을 가진 큰 분을 담기에 내 그릇은 '간장종지'였다. 벼락치기한다고 이어령 선생님의 방대한 지식을 어찌 따라갈 수 있었겠나. 그때는 몰랐지만 말이다.




#3. 미래는 어떻게 기다려요? 


실패담이 된 신년대담 프로그램 후, 이어령 선생님을 만난 건 한참 시간이 지나서 그랜드 마스터클래스라는 강연장이다. 매해 빠지지 않는 연사인 선생님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넘치는 열성과 지식으로 항상 시간을 오버하는 바람에, 언제부턴가 이어령 선생님의 강좌를 마지막 시간이었다. 2019년, 그해 강의의 주제는 <공동의 미래>였다. 역시나 그날도 넘치는 열정으로 선생님은 준비한 ppt의 절반도 못 한 상태였지만 끝까지 관객의 질문을 받으셨다. 꼬리에 꼬리를 이어가던 질문의 마지막 주인공은 한 청년. 원하는 일자리도 어렵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맘대로 되지 않는 미래에 대해 불안함과 답답함을 가득 담아 물었다.


"선생님, 미래는 어떻게 기다려야 하죠? "

선생님이 대답하기를, "여러분 친구들과 어떻게 약속하죠? 몇 시에 어디서 만나! 그러면 그 시간에 친구가 나오죠.  미래는 기다리는 게 아니에요. 약속하는 거예요. 약속한 걸 만나러 가는 거예요 "


미래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약속하는 것'이란 말. 잊히지 않는 대답이다. 열정 넘치는 지식인의 통찰이 담긴 대답이었기에 내겐 '미래'하면 떠오르는 말이다.




#4.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작가의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으며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이 겹쳐서 떠오른다. 8편의 소설 은 각각 다른 이야기이지만  내 마음에 맴도는 건 '시간'이다. 주인공은 엄마가 쓴 소설의 실체를 알게 된다. 오래전 출판됐지만 당시 출판 금지돼 본 적 없는 엄마의 소설.  엄마가 쓴 소설 속 연인은 두 번의 시간여행을 통해 시간이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간이 없으니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오직 이 순간의 현재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미래에서 거꾸로 과거로 돌아가는 두 번째 시간여행을 하면서 사실은 '과거'지만 '미래'가 된 삶을 기억하면서  세 번째 삶을 살게 될 때는 인식의 패턴이 완전히 바뀌어 이전과는 다르게 살게 된다. 이미 일어난 일들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원인이 되어 현재의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며 미래를 기억하며 사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박혜진은  "미래를 기억하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묻지 않고 자신이 누구일 수 있는지 물으며 스스로 변형시킨다는 말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5. 미래를 기억한다는 말은


미래를 기억한다는 말. 처음에는 '미래'를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인가 의심했는데 그것과는 다른 듯하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보며 생각한다.  2회 차 인생을 사는 주인공은 1회 차의 인생을 살아본 결과로 미래를 다 안다. 하지만 미래를 안다고 그의 인생이 순탄하게 풀린다는 얘긴 아니다. 다만, 미래를 알고 있기에 알고 있는 그 미래가 되도록 '현재'에서 애쓴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원하는 일이 안될 때 난 과거에서 '원인'을 찾았다. 만약 그때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되지 않았을까 후회하곤 했는데 이상하게 과거의 기억이 진할수록 현재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경험한 것들은 상상이 되는데, 경험하지 못한 미래는 구체적으로 상상이 되지 않으니까.  

소설에서도 그렇다. 시간여행을 경험하는 자신의 소설과 다르게 소설을 쓴 엄마는 자살로 끝을 맺어 성인이 된 딸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만약, 20년 후 딸의 미래를 기억했다면 죽지는 않았을지 모른다고 누군가 말한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기억한다면, 현재는 다른 방향으로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  



이제는 안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미래가 다가올 확률을 100퍼센트에 수렴된다는 것을. 1999년에 내게는 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는 일이 있었다. 미래를 기억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과 일어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어령 선생님이 말씀하신 '미래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는 것'이라는 말에 김연수 작가는 ' 기억해야 할 것은 과거가가 아니라 미래'라고 화답한 것은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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