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의 일본 생활: 일, 공간, 마음

by 조이

도쿄에서 일하는 5년차 직장인이었습니다. 이제는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지내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일한 곳


이번 달에는 출장이 잦았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곳은 나라현의 한 시골 마을입니다. 집을 구매한 고객이 일본을 방문하기 전에 내부 리폼, 정원 손질, 입주 청소, 유틸리티 셋업을 도왔고, 드디어 직접 일본에 올 날이 되어 키를 건네주러 갔었어요.


이번 고객은 미국 텍사스에 사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가족입니다. 토요타에서 근무하면서 일본에 출장을 많이 왔었는데, 그때의 경험이 좋아 아이들의 방학 때 머물 수 있는 별장을 일본에 구매했다고 해요. 소나무가 있는 정원이 딸린, 볕이 잘 드는 이층집입니다.


이 가족이 이 동네를 정말 사랑한다는 걸 느낀 순간들이 있었어요. 일본에는 동네별로 자치회가 있는데, 여기에 자발적으로 가입하고 기부를 할 방법을 찾아달라고 부탁받기도 했고, 근처 이웃들께 돌릴 선물과 편지를 함께 고민하기도 했어요. 집 리폼을 할 때에도 로컬 비즈니스를 응원하고 싶다며 집 근처에 있는 회사들로 선별해달라고 요청했고요.


일본 전국 방방곳곳에 매물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직접 가지 않고 근처 회사들에게 현지 대응을 맡기는데요. 그래서 이 집도 실제로는 제가 처음 방문하는 곳이었어요. 직접 가 보니 이 집에서 새로운 추억들을 많이 만들 수 있도록 기반을 닦는 일을 했다는 실감이 들었고, 그만큼 뿌듯함도 느꼈어요. 이 일이 저에게 주는 가장 큰 보람이에요.





다녀온 곳

출장 후 하루 더 머무르면서, 제가 첫 번째 회사를 그만두고 다음 일을 구하던 시기에 잠시 살았던 효고현 롯코(六甲)에 들렀어요.


한국으로 돌아갈까도 고민하다가 한 번 더 일본에서 취업 준비를 해보자고 마음먹었던 때였어요. 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에 친구가 선뜻 자기 집을 내주었고, 저는 그 집에서 약 4개월 정도를 혼자 지내게 되었어요. 덕분에 마음 놓고 취업 준비를 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커리어를 이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제 생활은 이력서 작성, 면접 준비, 헤드헌터 면담, 면접. 정말 그것밖에 없었어요. 그럼에도 내 공간이 있고, 나를 지지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참 든든하게 느껴졌어요.


오랜만에 살던 동네를 산책하고, 자주 찾던 카페에도 들렀습니다. 이곳은 와이파이도 없고, 내부 인테리어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 있고,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공간이에요. 그래서 일부러 노트 한 권만 챙겨 가 아무 방해 없이 사색에 잠기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해주던 곳입니다.




내 모든 모습을 인정하기


지난주에 무언가에 홀린 듯 일본에 있는 한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어요. 제가 예전에 했던 커뮤니티 및 오피스 관리 직무와 똑같은 공고가 올라와 있었거든요. 지금까지 몸담아온 업계는 아니지만 이미 한 번 해봤던 직무였어요. 무엇보다,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회사여서 그 곳으로 출근하는 제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그 네임 밸류에 꽂혀 하루 종일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두근두근하며 보내기 버튼을 눌렀죠. ‘여기 붙으면 당장 입사해야지!’ 하면서요.


그런데 곧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어요.


이미 이 일보다 다른 일을 하고 싶어 부서 이동까지 했었고, 오피스 관리라는 특성상 100% 출근이 필요해서 지금과 같은 스타일로 일할 수 없는 자리였거든요. 그런데도 왜 이 회사에 지원했던 걸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는 보이는 타이틀을 중요하게 여기고, 누구나 다 아는 회사에 들어가면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대단하다’는 말을 듣는 걸 분명히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그 마음을 억지로 눌러왔던 것 같아요. 인정 욕구는 건강하지 않은 욕구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래서 늘 열심히 하는 나, 성장하려는 나, 자기 일을 만들어가려는 나만 칭찬하고 그 반대편에 있는 나약한 마음이나 인정받지 못하는 마음은 애써 모른 척해왔어요.


그런데 한쪽만 계속 인정받다 보니 다른 한쪽의 마음이 자꾸 나를 보라고, 나도 여기 있다고 다른 방식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어쩌면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도 나이고, 그걸 부끄러워하며 억누르는 마음도 나이고, 프리랜서로서 나 자신을 더 세일즈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전부 같은 나일 텐데요.


상반된 마음들까지 포함해서 ‘이것도 나구나’ 하고 그냥 적어두기로 했어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도쿄에 사는 프리랜서의 일상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