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명다양성재단 Jan 14. 2020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와 멧돼지

생명 특집 [멧돼지들에게는 아직도 진행 중인 사냥의 공포]

전 세계를 달구던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이윽고 한반도에 도착해 전국을 살처분의 악몽으로 또다시 몰아넣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사태의 불똥은 멧돼지에게 튀었다. 갑자기 전면적으로 허락된 멧돼지 총기사냥으로 강산에 총성이 울려 퍼졌고 수많은 멧돼지가 사살되었다. 동네 뒷산에 갔다가 입산금지 표지판을 보고 어리둥절한 시민들은 정부가 어련히 알아서 하는 조치라고 생각하며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실상은 그리 간단치 않다. 오히려 이 외래 질병의 피해자인 말 못하는 멧돼지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이번 기회를 활용해 지자체마다 이 동물을 소탕해 버리겠다는 광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한국 역사에 유래가 없는 규모의 멧돼지 사살이 벌어진 현 상황에서 지금이라도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벌어진 본 사태와 같은 생태적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되돌아보는 일은 매우 시급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발생과 멧돼지의 관계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북아프리카 사하라지역에 사는 와트호그(Warthog)에서 일어나는 질병으로 원래 진드기를 통해 야생 개체 간에서 전파된다. 만화 <라이온 킹>에서 품바의 모델이 된 이 동물은 ASF에 대한 내성이 있어 만성질환으로 발병하지 않고 북아프리카에서 사육된 집돼지에게 먼저 전이되었다. 아프리카 내에서는 약 29개국에서 ASF가 발병하였다. 이후 집돼지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의해 유럽으로 옮겨졌는데 2014년 이후 발틱 국가, 폴란드,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순으로 약 3개국에 전파되었다. 유럽 내에서 ASF의 주요 전파경로는 집돼지의 사육, 투기, 유통이었다. 즉, 아프리카에서 야생 와트호그에서 집돼지에게로 최초 감염시킨 단계를 제외하고, 야생 멧돼지가 집돼지에게 ASF를 감염시킨 사례는 세계적으로 거의 없다는 것이다. ASF가 발병한 국가 중 멧돼지가 집돼지를 감염시킨 것으로 의심되는 거의 유일한 국가는 러시아이다. 전통적으로 돼지를 방목하는 러시아에서는 사료 등으로 멧돼지와의 접촉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의 러시아에서도 멧돼지가 집돼지에게 ASF를 옮긴 사례는 전체 발병의 1.4%에 불과했으며 대부분은 운송 및 오염된 사료가 그 원인이었다.

공장식 축산으로 키워진 집돼지가 도로에서 운송되는 장면

아시아의 경우 중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전역에 ASF가 확산되어 지금까지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 등 9개국에서 발생하였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도 역시 멧돼지에 의해 ASF가 집돼지에게 전파된 사례는 전무하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사육방식의 특성상 집돼지와 멧돼지 간의 접촉할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 간의 전파 사례는 없다. 중국 현지 조사결과 ASF의 주요 발생 원인은 차량 및 작업자를 통한 전파가 46%, 오염된 먹이가 34%. 감염된 돼지 및 분산물의 이동이 19%을 차지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경우 역할조사 결과 발표가 없었으나 이 두 나라 모두 관리대책은 돼지 및 돈육 제품의 이동을 제한시키는데 초점을 두었으며 멧돼지에 대한 조치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ASF는 워낙 치사율이 높아 멧돼지 개체군이 그 원천이 될 수는 없다. 한 번 걸리면 약 1-10일 내에 고온 및 출열로 사망하게 되며 폐사율은 최대 100%에 이른다.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의 생존기간 또한 매우 길다. 살코기 및 분쇄육에서는 105일, 염장육에서는 182일, 건조육에서는 300일에 육박하며 냉동육에서는 무려 1000일 동안도 생존한다. 분변에서는 약 11일, 오염된 돈사에서는 약 1개월 동안 발견된다. 멧돼지의 ASF 전파력은 집돼지에 비해 떨어진다. 멧돼지는 전파하기보다는 오히려 감염을 당하는 피해동물이다.



한국의 ASF 발병과 야생 멧돼지와의 관계

한국은 지난 9월 17일 파주시 연다산동 돼지 농장에서 ASF가 처음 발병하였다. 그 이후 연천, 김포, 강화, 철원 등지의 농가와 멧돼지에서 발생하였으며 현재까지 돼지농장 약 14곳, 멧돼지 약 30마리에서 발병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ASF가 발생한 지역을 보면 강화, 김포 및 철원 지역을 제외하고 ASF 발병농가와 ASF 발병 멧돼지 발견 지점이 매우 인접해 있는 곳이 많다. 그러나 중요한 건 모두 먼저 농가 발생하고 약 2주에서 1달 이후에 인근 멧돼지에서 발병했다는 점이다. 농가와 멧돼지의 발병지역이 서로 3-4㎞ 이내의 근거리에서 발생한 경우(ASF 차단을 위해 울타리를 설치 할 때 감염지역은 1.3㎞, 위험지역은 3㎞로 설정하고 있음)만 추려 분석하면 모두 농가에서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멧돼지에서 발생하는 패턴이다(표 참조). 즉, 멧돼지에 의한 전파보다 오히려 집돼지에서 멧돼지에게로 옮겨갔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양돈 방식은 집돼지와 멧돼지 간의 접촉이 거의 불가능하다. 일 년 내내 차단된 축사 내에서 키우는 집돼지는 방목되는 다른 나라와는 매우 다른 환경에 놓여있다. 그러나 분면 또는 사체의 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접촉을 통한 오염물질의 전염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연천 백학면의 농가는 살처분한 돼지를 차단시설도 없이 산속에 방치했다가 뒤늦게 당국에 발견되어 펜스를 설치하는 사례가 있었다. 멧돼지와 집돼지가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곤충 등에 의한 매개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ASF의 중간 매개체로 알려진 새물렁진드기는 한국에 있지도 않으며 지금까지 조사된 각종 조류 및 곤충에서도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즉, 축산 관련 인력 및 차량의 이동, 오염된 사료의 유통, 오염된 돼지고기의 투기 등의 위험성이 ASF전파의 가장 압도적인 원인임이 세계적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와 양돈업계는 스스로가 피해자, 멧돼지가 가해자라는 등식을 만들어 멧돼지의 무차별 사냥을 정당화하였다.

한국의 경우 발생지역이 대부분 민통선 지역이라는 점 때문에 북한에서 ASF가 발병하여 멧돼지를 통해 내려왔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일각에서는 이를 이미 기정사실화 하여 마치 감염의 경로가 이미 확증된 것으로 여기는 사태마저 벌어졌다. 그러나 한반도 DMZ의 남북경계는 그 어느 국경보다 치밀한 펜스로 매우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다. 강과 물길을 통해 사체가 떠내려 오는 가능성 또는 이미 발견된 것처럼 보도가 되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북측으로부터 연결되는 물길은 많은 경우 수문으로 막혀있어 발병 멧돼지가 산 채로 내려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펜스의 높이가 멧돼지의 움직임을 차단하지 못한다는 설 또한 있으나 야생 멧돼지는 쫓기는 상황이 아니면 펜스를 넘으려 하지 않고 우회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북한의 멧돼지 밀도는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멧돼지는 식량난으로 이미 많은 수가 사냥되어 개체군의 크기가 매우 작다. 또한 땅을 파헤치는 습성상 지뢰가 많은 DMZ일대에서도 제대로 서식하지 못한다. 북한에서 ASF가 발생한 지역 또한 군사분계선과 무척 멀다. 북한에서 유일하게 ASF가 발생한 자강도 중국접경 북상협동농장은 DMZ로부터 무려 약 300나 떨어져 있다. ASF의 자연전파 속도가 1년에 8-17에 불과하다는 걸 감안하면 북측 발생지역에서 멧돼지끼리 자연적으로 감염시키며 한국까지 오려면 17년 이상이 걸린다는 뜻이다. 즉, 북한에서 온 멧돼지가 ASF를 남한의 농가에 전파했다는 주장은 현재까지의 증거로 보았을 때 사실무근인 것이다.




한국 멧돼지에 대한 정부의 대응 및 피해

ASF방역을 위해 멧돼지를 소탕한다는 각종 언론기사

정부는 지난 9월 11, 12일에 강원도 철원군과 경기도 연천군에서 감염된 멧돼지 4마리가 발견됨에 따라 접경지역의 멧돼지를 모두 없애기로 했다고 발표하였다. 어떤 질병의 발생을 이유로, 그것도 야생으로부터 매개되었다는 증거가 전무한 상태에서 한 지역의 야생동물을 전부 없애는 정도의 조치는 이번이 처음이다. 해당지역에서 발견된 멧돼지는 무조건 사살한다는 방침으로 대규모 군사작전이 펼쳐졌고 ‘말살’, ‘전멸’, ‘섬멸’과 같은 전쟁 용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회자되었다.


광범위한 지역에 퍼진 한 종의 동물을 전부 죽이는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자체가, 그것이 별 이견 없이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상황, 그 모두가 충격적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가축에게 적용한 극악무도한 살처분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연에게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연 생태계에서 야생동물의 자유로운 이동은 필연적이다. 오히려 병원균은 이동과 교잡을 통해 개체군에서 유전자의 교환과 재조합이 이루어질 때에만 원천적으로 대응 가능한 것이다.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동(動)적이다. 바로 그 시스템의 역동성이 씨앗을 퍼뜨리고 꽃가루를 전달하고 자원을 순환시키는 것이다. 쉼 없이 돌아가는 생태계에 고병원성 물질을 애초에 투입한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야생동물은 사냥을 하면 이동거리가 증가하는 특성이 있다. 사냥은 일종의 포식행위로 인지되기 때문에 포식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자연스럽게 행동반경이 커지는 것이다. 그래서 감염지역의 동물을 박멸하기 위해 사냥을 시도하면 오히려 감염범위가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유럽식품안전청(EFSA)도 무차별 사냥은 야생 멧돼지 ASF의 위험성을 낮추지 못하며, 사냥을 통해 개체군을 과도하게 낮출 경우 보상 번식으로 인해 오히려 전파와 지리적 확산을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ASF 극복의 성공 사례로서 체코가 자주 언급되는데 이 경우에서도 사냥은 매우 제한적으로 시행되었다. 속전속결로 멧돼지를 국지적으로 아예 없애려고 한 한국과는 달리 체코는 1년의 기간 동안 단계적으로 대처하였다. 우선 발생 초기에는 대중적 여론과 정치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사냥을 전면 금지했다. 발생 지역이 원래 사냥터임을 감안하면 매우 획기적인 조치였다. 그 후 몇 주가 지난 후에야 포획틀 및 경찰 스나이퍼를 이용하는 등 개체군 안정화를 최대한 꾀하였다. 핵심 감염지역의 경우 전기 펜스를 설치한 물리적 방어로 확산을 방지하였다.

이에 반해 한국은 ASF가 발병하고 멧돼지에서도 발병이 확진되자 삽시간에 전국이 멧돼지 사냥터로 돌변했다. 발병지역은 물론 경계지역에서도 멧돼지의 신속한 전면제거를 목표로 야생 멧돼지 개체수 조절을 발표한 15일 이후 2988마리를 잡았고, 10월 15일에서 11월 10일까지 전국적으로 총 14,754마리를 잡았다. 발병지역은 물론 본 사태와 전혀 무관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그리고 심지어는 제주도에서도 포획은 이루어졌다. 경상북도는 올해 14,000마리 이상을 포획하여 발생지역을 제외한 지자체에서는 가장 많았다. 충청북도는 9,500마리 이상을 잡았는데 일부 이중 70%를 자가소비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SF 대응과 무관한 멧돼지 사냥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기도와 강원도를 제외한 이남 지역에서 포획된 멧돼지에서는 ASF 바이러스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마치 멧돼지를 합법적으로 죽일 기회만을 기다렸다는 양, 지자체마다 멧돼지를 솎아내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것이다.


대형 맹수류가 멸종된 한국에서 멧돼지는 대형 포유류로서 생태계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생물이다. 멧돼지는 바닥을 뒤지며 섭식을 하기 때문에 종자 및 균근 곰팡이의 분산에 도움을 주고, 다양한 미소서식지 환경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또한 생태계 내에서 사체 또는 썩은 고기를 소비함으로써 먹이사슬의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지금과 같은 강도의 사냥이 계속되면 지역 개체군이 아예 사라질 수 있으며 이렇게 될 경우 유전적 다양성이 심각하게 감소할 것이다. 유전적 다양성의 감소는 결국 ASF와 같은 질병에 대한 저항성을 장기적으로 저하시키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또한 이 모든 사안을 떠나 한반도의 산림 생태계에 오랫동안 서식해온 멧돼지를 갑자기 씨를 말리겠다는 식의 행위는 그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참고 문헌  

아프리카돼지열병 중앙사고수습본부 보도참고자료. 2019. 10. 30.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대응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 <인간과의 공존을 위한 야생동물 질병 관리> 자료집. 2019. 환경부

아시아지역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현황. 2019. 6. 2.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Petr Šatrán. 2019. From ASF infection in wild boar to eradication and free status recovery in the Czech Republic. State Veterinary Admission.

European Food Safety Authority. 2014. Evaluation of possible mitigation measures to prevent introduction and spread of African swine fever virus through wild boar. EFSA journal 12(3): 3616

Guberti, V., S. Khomenko, M. Masiulis and S. Kerba 2018. Handbook on African swine fever in wild boar and biosecurity during hunting. Global framework for the progressive control of transboundary animal diseases.

http://www.hani.co.kr/arti/animalpeople/farm_animal/914585.html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13161.html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0767648&memberNo=30800897&vType=VERTICAL

작가의 이전글 자연에 대한 살처분을 즉각 중단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