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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명다양성재단 Oct 14. 2019

자연에 대한 살처분을 즉각 중단하라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에 따른 정부의 멧돼지 몰살 계획에 반대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또다시 살처분이라는 재앙이 되풀이 되더니 급기야 가장 우려하는 사태가 시작되고 있다. 다름 아닌 야생 멧돼지에게로 이제 총부리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전부에게로.


 정부는 지난 9월 11, 12일에 강원도 철원군과 경기도 연천군에서 감염된 멧돼지 4마리가 발견됨에 따라 접경지역의 멧돼지를 모두 없애기로 했다고 발표하였다그동안 구제역과 조류독감 등 수많은 축산 관련 질병으로 온 나라가 진통을 겪었지만그로 인해 한 지역에 사는 야생동물을 전부 없애는 무자비한 조치가 결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군사분계선 (DMZ) 이남은 물론 그 안이라도 발견된 멧돼지는 무조건 사살한다는 방침으로 심지어는 군대와 헬기까지 동원되고 있다. '말살', '전멸'과 같은 단어가 언급은 물론 실행되고 있다.


 광범위한 지역에 퍼진 한 종의 동물을 전부 죽이는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자체가그것이 별 이견 없이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상황그 모두가 충격적이다그런데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가축에게 적용한 극악무도한 살처분의 사상을 너무나 손쉽고 자연스럽게 자연에게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이제는 병을 매개한다는 이유만으로 한 지역의 개체군을 몰살해도 되는 세상이 도래했다는 말인가게다가 당장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도 아닌결국 좀 나중에 죽이기 위해 키우는 돼지를 잠시 살려놓기 위해서그럼 새로운 조류질병이 발생하면 그땐 철새도래지에다 폭탄이라도 투하할 것인가?


 지구상에 생태계가 있는 이상 야생동물의 자유로운 이동은 필연적이다오히려 병원균은 이동과 교잡을 통해 개체군에서 유전자의 교환과 재조합이 이루어질 때에만 원천적으로 대응 가능한 것이다자연이 작동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동()적이다바로 그 시스템의 역동성이 씨앗을 퍼뜨리고 꽃가루를 전달하고 자원을 순환시키는 것이다쉼 없이 돌아가는 생태계에 고병원성 물질을 애초에 투입한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발발한 병이 대체 무슨 경로로 세계 곳곳에 퍼졌겠는가세계를 잇는 축산업 무역체계가 아니고선 한국을 비롯해서 중국베트남필리핀몽골루마니아폴란드러시아 등 지구 전체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병을 퍼뜨리는 근본 원인인 사람과 물자의 수송은 절대로 원천봉쇄 하지도 할 수도 없으면서 감염이 확증된 개체가 겨우 5마리인데다 감염경로도 불확실한 야생동물은 전부를 몰살시킬 정도의 철저한 잔혹성은 발휘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가장 극단적인 반생명주의이다.


실탄으로 무장한 군대가 동물을 주적으로 삼고 숲속에 급파된다는 이 엄청난 사건의 중대함을 정녕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단 말인가수많은 무고한 멧돼지는 물론 산림생태계에 일어날 여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이러한 만행은 말 못하는 동물에게 모든 누명을 씌우겠다는 우리 사회의 적극적인 남 탓’ 의지를 여실히 드러낸다방역의 업무를 환경부에서 농림부로 이관하라는 대한한돈협회의 주장은 이 상황에 대처하는 사고의 민낯이다야생동물을 농축산 체계의 걸림돌이나 부속물쯤으로 치부하고 포섭해 버리겠다는 뻔뻔함이다.



 입이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자. 병을 일으키는 근본원인은 공장식 사육과 축산체계이다. 끊임없이 질병을 생산하는 이 시스템을 건드리지도 않은 채 마치 멧돼지의 국지적 매개가 문제의 원흉인 것처럼 여기는 대응방식은 위선과 기만의 극치이다. 게다가 가축의 질병을 매개하는 야생동물을 죽이는 조치는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가령 영국은 소결핵을 매개한다는 이유로 수만 마리의 오소리를 죽였지만 오히려 결핵이 더 퍼질 위험성을 증가시키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이 주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엄청나다. 축산업계가 아닌 무고한 오소리에게 병의 책임을 돌리는 것에 반대한 시민들과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거세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킬 정도였다.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의 경우도 발생국가인 폴란드에서 멧돼지 사살기획이 발표되자 이에 반대하는 청원에 30만 명 이상이 서명하였다.


 태풍이 온다고 멀쩡한 나무를 자르는 것이 정당화 되고, 인간이 일으킨 병을 전달한다고 야생동물을 전멸하는 것이 합리화 된다면, 과연 다음 단계가 무엇이 될지는 짐작만 할 수 있다. 이제는 일상어로 굳혀진 살처분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회자되고 수많은 가축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이 차분히 수용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절망적이다. 여기에 이제는 자연에까지 죽음의 손길을 뻗치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살처분의 광기는 즉각 멈춰야 한다. 이 땅에 생명의 가능성과 감수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려면 말이다.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 동물행동생태학 박사 김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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