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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명다양성재단 Jan 25. 2016

돌고래 연구자의 감동적인 실화

돌고래 과학자들의 만화 '저듸 곰새기' 여섯 번째 이야기

이번 이야기는 과학자들의 관찰과 사진으로 구성된  특별호입니다.


 사람들은 돌고래를 참 귀여워한다.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를 방류하면서 우리는 거의 매일 같이 그들을 보았지만, 사실 우리 눈엔 뭐 그렇게 엄청 귀엽진 않았다(귀여움의 기준은 다양하니까). 돌고래가 야생에서 잘 살기를 바라고, 이를 위해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마당에, 그걸 알아가는 게 재미있는데다가, 바다를 좋아하기까지 하니, 매 순간 즐겁게 일하긴 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무척이나 짠하게 했던 돌고래가 있어서 소개해 본다.


 지난가을, 제주시에서 열린 해양학회에 참석했을 때였다. 종일 발표를 듣느라 졸음이 몰려오던 차에 잠이 확 달아나는 전화를 받았다. 서귀포 근처에 작은 돌고래 사체가 하나 발견되었다는 것. 다급히 한라산을 넘어 보목포구 근처로 차를 몰았다. 도착해보니 먼저 도착한 연구원이 배로 사체에 접근하고 있었다. 우리는 멀리 뭍에서 상황을 살폈다. 언뜻 보니 두 마리 같기도 했는데 햇빛 반사가 심한 시간이라 그 검은 실루엣이 돌고래인지 물결인지 긴가민가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배는 주위만 맴돌다 결국 해 질 녘이 되었고 포구로 돌아왔다. 자초지종을 들으니 사체가 한 마리인 것은 맞는데 사체 주변을 맴도는 성체가 한 마리 더 있단다. 그 돌고래가 너무 격렬하게 경계하는 바람에 배를 사체 가까이 대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 둘을 바다에 남겨두고 내일을 기약했다.

사체에 접근중인 배와 사체 주변을 맴도는 돌고래 성체


  다음날 아침 우리는 어제보다 조금 더 서쪽, 법환포구 근처에서 사체를 발견했다. 돌고래는 여전히 사체 주변을 떠나지 않았었다. 영상장비와 메모로 상황을 기록하면서 가끔 쌍안경으로 사체의 상태를 살폈다. 해가 눈부시게 비쳤다. 바다는 하얀 표면과 까만 물결로만 구분되었고 작은 사체는 파도를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는 조각배 같았다. 그 주위로 등지느러미가 불쑥 올라오더니 사체를 밀어냈다. 덕분에 점점 뭍으로 떠내려 오던 사체는 바다로 조금씩 다시 돌아갔다. 돌고래는 그렇게 사체 주위를 맴돌다가 사체를 깊은 바다로 밀어내는 일을 반복했다. 우리는 책임자에게 상황을 전달하며 관찰을 계속했다. 그런데 갑자기 캠코더 화면에 리핑(Leaping, 몸을 수평으로 하여 물 위로 뛰어오르면 ‘Leap’로, 수직방향으로 뛰어오르면 ‘jump’로 행동을 기록한다)하는 개체가 잡혔다.

리핑으로 추정되는 행동을 하는 작은 개체

 

 “방금 봤어요?” 꽤 높이 리핑한 그 개체는 여태 관찰하던 그 개체보다 크기가 작았다. 한 마리가 더 있는 것인가? 하지만 돌고래가 순식간에 물 위로 뛰면 그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다. 더 이상의 리핑은 없었고 연구책임자와 해경이 사체 인양을 결정하기까지 우리는 계속 그 둘을 관찰했다. 그런데 그 둘에게로 어선이 한 척 다가갔다. 어선의 뱃머리는 곧장 사체 쪽을 향하더니 사체를 거의 들이받고 섰다. 어민들은 사체를 지켜보며 배를 계속 그 자리에 대고 있었다. 그러자 큰 돌고래가 사체를 세게 쳤고, 사체는 배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으로 멀어졌다. 큰 돌고래는 등지느러미를 사체에 걸치고 배의 반대 방향으로 사체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파도를 거슬러 사체가 움직였다. 이 노력이 무색하게 배는 엔진의 힘을 빌려 자꾸만 둘에게 따라붙었다. 그럴수록 큰 돌고래는 더 격렬하게 사체를 밀쳐냈다. 둘은 무슨 관계일까? 왜 이토록 힘겹게 사체를 지키는 것일까? 제보를 한 어민들은 그 돌고래가 며칠째 그러고 있다고 했었다. 사체가  신고되면 어떻게든 인양해야 하는데 그러기가 미안했다. 배는 마지막으로 그 둘에게 다가가는  듯하더니 그대로 멀어졌다. 배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돌고래 한 마리가  또다시 리핑했다.


“봤어요? 확실히 더 작아요!” 확실히 작긴 했는데 헷갈렸다.

“큰 애를 잘못 본 걸 지도 몰라요. 저렇게 오래 숨 쉬러 올라오지 않을 순 없잖아요.”

다시 큰 돌고래가 사체를 밀치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점점 격렬해졌다. 도마 위에서 생선이 파드득거리는 것 마냥 사체가 요동쳤다. 한 번 더 밀치자 마침내, 사체가 공중에 붕 떴다가 수면을 치며 떨어졌다.


 그제야 알았다. 우리가 본 건 다른 개체가 아니었다. 큰 돌고래가 사체를 쳐올린 거였다.

 “쟤 탈진하겠다. 최대한 빨리 사체를 건져야겠어.”

등지느러미에 사체를 걸치고 이동하는 돌고래 성체


 인양할 수 있는 배를 기다리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둘을 지켜보는 것 밖에 없었다. 둘의 춤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이는 광경은 소리 한 점 없었지만, 우리는 돌고래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싸늘하게 식은 아이의 주검을 흔들며 제발 숨을 쉬라고 애원하는 어머니의 모습 같았다. 너무한 표현 같지만, 정말로 그랬다.


  얼마 뒤 해경이 도착했고 사체를 인양하기 시작했다. 떠 있는 사체에 접근하기 쉽게 작은 고무보트로 둘에게 천천히 접근했다. 큰 돌고래는 점점 더 거칠게 유영했고 고무보트는 심하게 출렁였다. 사체의 꼬리지느러미에 밧줄을 묶어 배에 연결했다. 그리고 포구로 달리기 시작했다. 큰 돌고래는 사체를 따라왔다. 사체를 따라 헤엄치며 거칠게 숨을 내뿜고 밑에서, 옆에서, 사체를 쳐댔다. 그래도 밧줄은 풀리지 않고 사체를 포구까지 데려왔다. 사체의 보호자 큰 돌고래도 포구까지 왔다. 돌고래는 배를 대는 시멘트 제방 바로 앞에서 거친 숨을 몇 번 내뿜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체는 부패가 심각했다. 혀가 퉁퉁 불어 입을 다물지 못했고, 배꼽으로 내장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지느러미는 식별이 불분명했다. 우리는 사체에서 분석에 필요한 샘플을 채취했다. 그리고 사체는 냉동고로 이송되었다.

인양하는 사체를 따라오는 돌고래 성체

 

그 큰 돌고래는 어디로 갔을까. 누구였을까. 그는 사체가 이미 죽었다는 걸 몰랐을까.

 

 속사정이 어떤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 행동은 인간과 참 비슷해 보였다. 그리고 인간과 비슷한 감정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면 저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아직은 못 찾겠다. 에너지만 소모하고, 생존에도 번식에도 아무 보탬이 안 되는 쓸모없는 행동을.

 

 우리는 큰 동물에게는 곧잘 감정 이입하고 나름대로 그들을 이해하려 한다. 그런데 작은 동물에게는 그렇지 못해서 그들의 표현을 그냥 지나치고 때로는 묵살한다. 모든 동물은 느끼고 반응하고 행동하고 있다. 우리 상상의 범위 안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그렇지. 그러니까 이건 우리 탓이다. 친절하게도 이번 돌고래는 우리와 비슷한 방식을 사용해주었다. 그래서 이 사연을 공유해봤다. 돌고래의 도움으로 시작해서, 개구리도 벌레도 느끼고 반응하고 행동하고 있음을 알아가고 싶어서 말이다.


당시 시간에 따른 일정과 돌고래의 행동을 정리하였다. 밑줄은 돌고래의 행동이다.

2014.10.02 14:30 서귀포 항 부근 해상에 사체가 하나 떠다닌다는 제보 받음.

2014.10.02 15:30 서귀포 항 도착. 연구팀1-인근해안도로에서 쌍안경으로 사체 관찰. 

연구팀2-서귀포항에서 용선하여 사체로 접근.

2014.10.02 17:00 연구팀2 사체 수거 않고 회항하여 연구팀 1과 합류.

2014.10.02 19:00 철수

2014.10.03 08:00 서귀포 항 부근 육상 모니터링을 통해 사체 추적

2014.10.03 10:30 법환포구 인근에서 전일과 동일한 개체 확인. 관찰 시작. 

조류에 밀려 해변으로 밀려들어오는 사체를 바다 쪽으로 밀어냄.

2014.10.03 10:40-11:10 어선 3대 사체 1m 이내로 접근하여 촬영하거나 선수로 접근. 

주변 개체 흥분했는지 격렬한 반응. 사체를 배 멀리 밀어내거나 아래쪽에서 밀어 올려 마치 살아있는 개체가 뛰어오르는 듯 보임.

2014.10.03 11:30 어선 사라진 이후에 잠시 소강. 사체 주변을 머물며 해변 쪽으로 밀려가지 않게 유지.

2014.10.03 11:35 사체로부터 200m 지점에 모터보트 지나가자 격렬히 사체를 보트 반대편으로 밀어냄.

2014.10.03 11:45 사체로부터 50m 지점에 어선 지나가자 다시 격렬히 사체를 선박 멀리 밀어냄.

2014.10.03 11:45-14:50 100-200m 인근에서 배가 지나가기만 해도 격렬히 반응.

2014.10.03 14:50 강정항에서 해경의 모터보트 타고 접근. 꼬리 부분에 밧줄을 걸어 사체 회수 시도. 보트에 접근하여 사체를 격렬하게 밀어냄. 밧줄 걸기가 어려움. 사체에 밧줄을 걸어 사체를 밀어내기 힘들자 보트를 밀어내려 시도함.

2014.10.03 14:50-15:50 사체 회수하여 서귀포항으로 이동.

2014.10.03 15:50 서귀포항 입항. 모터보트 접안 장소까지 따라와 사체를 밀어내려 시도. 수심 30츠 미만인 위치까지 접근.

2014.10.03 15:57 서귀포항 밖으로 나간 후 시야에서 사라짐. 


- 특이사항

• 어민 제보: 3일 전부터 서귀포-보목항 근처에서 발견됨. 접근 시도하자 격렬하게 반응하고 날카로운 소리(휘슬음으로 추정)를 냄.

• 사체: 체장 214cm, 암컷. 주변 개체: 성별 확인 못함. 개체 식별 가능.


사진∙글 | 장수진, 김준영

<사진 저작권자ⓒ장수진,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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