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덕후의 해달 논문 관찰기
얼마 전 ‘장화가 말라가는 방 습지 포유류편’을 준비하면서 해달에 관한 좋은 논문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해달은 사실 습지 포유류가 아니다. 해달sea otter은 13종의 수달otter 중 유일하게 바다에 사는 특이한 종이다. 나머지 수달은 모두 강이나 호수 같은 민물에 산다. 우리나라 말로는 수달과 해달이라고 나뉘지만 사실 해달은 수달의 한 종이며 '바다 수달'이다. 바다는 습지가 아니므로 장화가 말라가는 방에서 해달을 다루진 않았지만, 영어로 수달인 Otter를 검색하며 찾게 된 해달에 대한 흥미로운 논문이 있어 논문과 그들의 특성을 여기에 소개한다.
이 논문은 서식지에 따라 동물들이 어떻게 다른 행동과 특성을 갖게 되는지 실감할 수 있는 좋은 논문이다. 그리고 과학적 연구 논문이 어렵고 딱딱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논문이다.
수달은 물 속에서 헤엄치다가 수시로 뭍에 올라와 털도 말리고 휴식을 취하며 체온을 유지해야 하는 습지 생물이다. 반면 해달은 일생을 온전히 뭍이 없이 물에서만도 생활할 수 있도록 진화된 수생 생물이다. 해달은 수달 중에서 뿐만 아니라 *식육목 중에서 ‘유일하게’ 수생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적응된 독특한 동물이다. 물개나 바다 사자도 물 속에서 사는 식육목이지만, 얘네를 떠올리면 해변이나 바위에 모여 누워있는 모습이 먼저 떠오르른다. (*식육목: 척추동물 포유강에서 하나의 목을 이루는, 육식을 하는 동물군을 말한다. 개과, 고양이과, 곰과, 족제비과 등이 식육목에 속한다.)
물에서만 살 때 제일 문제가 되는 건 아마 쉴 때, 먹을 때, 새끼를 낳고 키울 때일 것이다. 그래서 완전히 생리 체계가 다른 고래를 빼면 대부분의 포유류는 뭍에 올라와서 쉬고 먹고 새끼를 키운다. 그런데 해달은 무려 물에서 배를 뒤집어서 쉬고, 먹고, 새끼도 키우는 발군의 기술을 선보이며 수생생활에 적응했다. 생각해보면 간단한데 이걸 해낼 수 있는 동물은 해달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달을 소개한 러시아 연구자들은 '해달의 잠자는 행동' 연구를 수행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해달들의 행동은 많이 연구가 되어있지만 밥먹기, 그루밍하기, 이동하기, 상호작용 외에 '쉬는 행동'에 대해서는 연구가 조금밖에 없다.’
*인용문은 모두 해당 논문을 발췌 번역한 것입니다. 해당 논문 정보는 아래에 있습니다.
이렇게 많이 연구되어 있는데 아직 쉬는 건 연구한 적 없지 않냐! 라는 주장이다. 포유류의 진화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그저 해달 덕후들이 사족을 쓰는 것 같기도 한 문장이다. 하지만 해달의 쉬는 행동에는 사실 이들이 어떻게 물 위에서도 잠을 잘 수 있는지, 즉 어떻게 포유류가 물에 적응했는지 알 수 있는 가능성이 숨어있기 때문에 진화적으로 흥미로운 결과를 얻어낼 수도 있다. 고래처럼 뇌를 반쪽씩만 자는지, 육상 동물에 가깝게 자는지 등 말이다.
그런데 사실 진지한 주제이긴 한데... 논문을 읽다 보니 행동 묘사가 더 흥미로웠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눈을 감고 있는 자세', '몸을 문지르거나 발바닥, 배, 꼬리를 잘근잘근 씹거나 핥는 행동을 하는데', '잘 때 앞발을 가슴에 올려놓는다.'
왜 이렇게 우리집 개랑 겹치는지...
장화가 말라가는 방 습지 포유류편에서 수달 보전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이유 중 첫 번째를 이렇게 꼽았다. '일단 너무 귀엽습니다.' 판다가 보전에 성공한 이유처럼, 실제로 인간 사회에서 귀여움을 받는 것은 멸종 위기 동물에게 중요한 요소이다. 해달도 이처럼 귀여운 동물 반열에 오르며 활발한 연구가 추진되었다.
그 중 비교적 기초 연구 단계인 해달의 잠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연구 내용을 소개해보겠다. 행동 관찰의 기본은 각 행동을 분류하고 정의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 연구자들은 해달의 잠 행동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
1. 활동적인 깨어있음
2. 조용한 깨어있음
3. 조용한 잠
4. 역설 수면*
*역설 수면: 렘REM 수면이라고도 불리며, 의식은 없지만 뇌파는 깨어있는 것과 비슷한 상태를 말하는 의학용어. 눈알이 빠르게 돌아가거나, 근육이 이완되거나, 몸에 경련이 일어나기도 한다.
일단 두 가지 깨어있는 행동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헤엄치기, 음식 먹기, 물에서 몸을 굴리면서 격렬하게 그루밍하기는 활동적인 깨어있음으로 기록된다. … 수면에서 배를 위로 향하고 누워있거나 나무 부표에 누워있으면서 눈을 뜨고 있으면 조용한 깨어있음으로 기록된다. 또한 몸을 문지르거나 발바닥, 배, 꼬리를 잘근잘근 씹거나 핥는 행동을 하는데 이것이 물에서 몸을 굴리는 행동과 동반되지 않으면 조용한 깨어있음으로 기록된다.’
다음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자는 행동에 대한 정의인데 이것은 이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므로 그림까지 첨부하여 설명을 분명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 그림이 논문치곤 너무 깜찍해서 좀 놀랐다.
등을 물에 대고 떠있는 전형적인 포즈나 나무 부표에서 움직임 없이 웅크린 채 20초 이상 눈을 감고 있으면 조용한 잠으로 분류했다. 해달은 물에서 잘 때 앞발을 가슴에 올려놓는다. 뒷발은 수면에 놓거나 배 위에 올려놓는다. 꼬리는 항상 수면에 있고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림 A). 이 상태에서 완전히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종종 몸을 움직였는데, 이는 중심을 잡고 자세를 유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끔 옆으로 돌아가기도 하는데 콧구멍이 물을 닿는 순간 다시 본래 자세로 돌아갔다. 하지만 대부분 잠에서 깨는 징후는 없었다.
행동 연구에서 행동을 묘사하는데 이렇게 귀여운 문장은 처음 봤다. '잘때 앞발을 가슴에 올려놓는다.' 특히 발은 'paw'라고 되어 있어 더 귀여운 느낌을 준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깊은 잠을 자고 있어도 움직임이 완전히 없어지는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바다 사자나 돌고래들처럼 뇌의 반만 자고 있을 수 있다는 암시를준다. 나중에 연구의 토의 부분에서 이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B는 역설수면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머리나 발바닥, 몸 전체를 한번 또는 연속해서 움찔거리거나 경련이 일어났고, 전형적인 조용한 잠 자세가 흐트러졌다. 물에서는 보통 움찔거리거나 머리가 천천히 수면으로 움직이면서 역설 수면이 시작됐다(그림 B).
역설 수면의 징후가 육상 포유류와 공통적인 모습이었다고 써있는데, 읽으면서 우리 집 개 구름이가 자는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구름이는 이렇게 눈이나 코를 움찔거리다가 이내 발바닥을 달리는 듯이 움직이며 역설 수면 상태로 들어가기도 한다. 어릴 때는 젖을 먹는 것처럼 입을 움직이기도 했다.
그림 C, D는 역설 수면 중인 모습이다.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때 그림 D가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역설 수면paradoxical sleep이라는 의학 용어를 모르고 ‘말도 안 되는, 모순의’라는 뜻으로 해석해 '말도 안 되는 가상의 자세'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니 실제로 해달이 자주 하는 행동이었다.
역설 수면일 때는 머리가 물에 자주 잠겼고 해달은 옆으로 돌아가거나 배가 밑으로 내려간 포즈로 네 발과 머리가 물에 잠긴 채 최대 1분까지 그대로 있었다(그림 C, D). 부표에서 역설 수면 시에는 눈에 띄게 분명한 근육 긴장 저하가 있었다. 목과 때로는 발들을 부표 위로 쭉 늘어뜨렸다. … 해달이 다시 배를 위로 한 상태로 돌아가거나, 눈을 뜨는 등 잠에서 깨는 징후를 보이거나, 또는 움찔거림이 60초 이상 관찰되지 않으면 역설 수면이 끝났다고 판단했다.
사람은 역설 수면 시에 자세를 잡아주는 근육들이 이완해 호흡과 맥박이 흐트러지는데(즉, 코를 골거나 혈압이 높아지기도 한다), 해달은 배를 위로 하고 물에 누워있는 자세가 흐트러지는 것이다. 이로 인해 숨이 막힐 수 있지만 아마도 해달은 자다가 잘못해서 코가 물에 잠기더라도 금방 몸을 뒤집거나 대처할 수 있도록 수면 방식이 진화되었을 것이다.
한편 동물이 자면서 움찔거리는 지속 시간을 관찰해서 기록하다니, 이렇게 귀여운 걸로 논문을 쓰고 인정받아도 되는 건가 생각이 들었을 때쯤 연구 방법과 결과를 자세히 읽게 되었다. 그런데 연구 결과 보통 수달은 20-22시에 시작해 아침 06-09시까지 잠을 잤다. 그리고 이 연구는 비디오 분석이 아닌 눈으로 직접 3-4시간씩 교대로 관찰하며 이루어진 연구였다. 한 번에 36-72시간을 연속적으로 관찰하였으며, 이 시간 동안 5분마다 15초씩 관찰하고 기록되었다. 동물원에서 동물 행동에 대한 관찰 기록을 5분만 해보면, 초 간격으로 일어나는 행동을 기록하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규칙적인 시간을 맞추기도 상당히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를 나누며 재단 연구원들 사이에는 각자 밤새면서 까치를 돌본 기억, 귀뚜라미 소리를 녹음한 기억들이 오갔다. 대부분의 동물학자들은 말이 통하지도, 행동을 방해할 수도 없으니 연구 대상 동물을 모시며 모든 것을 동물에 맞춰드려야 한다. 해달 연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연구 결과 해달은 밤에는 물과 땅(부표)에서, 낮에는 물에서만 잠을 잤고, 환경에 완전히 익숙해질 때까지는 물에서만 자는 모습을 보여 땅(부표)보단 물에서 자는 걸 더 안전하게 여기는 걸로 보였다. 또한 자면서 행동을 완전히 정지하지 않는 특징이 바다 사자와 똑같아서, 기존의 바다 사자 연구에서 밝혀진 것처럼 돌고래와 비슷하게 좌반구와 우반구가 따로 자는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로써 이 연구는 해달의 잠, 나아가 육지 동물과 수생 동물의 차이와 연결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기반을 제공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연구 논문에 대한 선입견과 부담감을 낮추고 그림부터 훑어보거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면 동물과 환경에 관한 연구 결과가 실제 보전에 더 많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해달 논문은 나에게 과학적 연구와 동물에 대한 애정의 경계를 흐리며 수생 포유류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흥미를 가져다주었다. 어떤 연구에서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앞으로도 연구 논문을 보는 나의 관점은 조금 달라질 것 같다.
논문정보
Lyamin, Oleg I., et al. "Behavioral sleep in captive sea otters." Aquatic Mammals 26.2 (2000): 132-136.
* 논문 원문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 안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