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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명다양성재단 Apr 12. 2018

살아남기의 어려움,
2017년의 이야기

저듸, 곰새기 - 돌고래 과학자들의 바다 소식

 어느 시기에 관찰을 하더라도 대체로 돌고래 무리에는 몇 마리의 어린 녀석들이 섞여 있습니다. 성체의 반 토막쯤이나 될까 싶은 녀석들도 때로는 어미 옆에서 슬며시 떨어져 꼬리로 수면을 두드리거나 뛰어올라 몸통으로 떨어지는 연습을 합니다. 물론, 모두 성공하지는 않습니다. 충분히 물보라를 일으키지 못하거나 엄한 허공에 대고 허우적거리기도 합니다. 가끔은 무리 제일 앞에서 문자 그대로 폴랑폴랑 뛰어다니는 듯 튀어 오르기도 합니다. 이런 돌고래들의 모습을 보면 세상 걱정 하나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여 다니면 그야말로 상어도 두렵지 않은 제주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며 사방에 넘치는 먹이들을 마음껏 먹고 마냥 자유로울 것 같습니다. 근데, 실은 이들도 살아남기의 어려움을 겪는 평범한(?) 동물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금등이와 대포를 찾습니다.

금등이(오른쪽)와 대포(왼쪽) / ⓒ장수진

 2017년 7월 18일, 서울대공원에 남아있던 두 마리의 남방큰돌고래 금등이와 대포가 제주 함덕에서 방류되었습니다. 바다에 설치된 가두리라도 하더라도 제한된 공간, 바다로 나가면 낯설고 생소한 환경이 아득하게 펼쳐집니다. 방류는 이 과정에서 서로를 의지하여 생존율이 좀 더 높아질 수 있도록 두 마리 이상의 유닛을 이루어 방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금등이와 대포는 오랜 기간 수족관에서 함께 지낸 시간에 비해 서로 각별한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가두리의 그물을 내리고 얼마 후, 대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탐색하듯 가두리 주변 여기저기에서 모습을 보여주던 대포는 동쪽으로 느리게 이동하여 서우봉 끄트머리로 접근합니다. 아마도 좀 더 동쪽으로 갈 모양인 것처럼 보입니다. 느리게, 그러나 일관된 속도로 대포가 멀어집니다. 대포를 따라가면 좋겠지만 금등이는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대포가 가두리 밖으로 나온 얼마 후 가두리 너머에서 한 번, 등지느러미를 보여 준 금등이는 이후 어느 방향으로 이동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지금까지 이 두 녀석은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크고 작은 야생의 무리가 이 지역을 몇 번이고 지나쳤지만 그 무리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이들이 방향을 잘못 잡아 바다를 건너간 것은 아닌지, 너무 연안에 바짝 붙어 있어 아직까지도 눈에 띄지 않은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가끔 해변으로 밀려오는 사체 중에도 이 녀석들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저희 연구팀은 물론 제주도에서 저희를 도와주는 많은 분들이 이 녀석들을 찾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제가 실수했기를, 눈앞에서 지나가더라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기를, 깊은 바다보다는 연안 가까이에 서식하던 과거를 깜빡 잊고 어딘가 낯선 지역으로 방향을 잘못 잡아 이동했더라도 살아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금등이와 대포를 찾습니다. 혹 제주도를 여행하시다가 돌고래를 만나게 되면 아래의 등지느러미를 가진 녀석들이 있는지 한번쯤 눈 여겨 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시월이의 사정

시월이와 새끼 / ⓒ장수진

 2014년 10월, 새끼로 추정되는 개체를 간절히 밀어내던 시월이는 이듬해 새로운 새끼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여름까지 이 새끼가 무럭무럭 자라 어미 옆에서 고개를 내미는 모습은 연구팀 모두의 즐거움이었습니다. 활발하게 헤엄치며 무사히 첫해를 넘겼으니 이제 남은 기간 큰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모두 믿고 있었지요. 


 금등이와 대포를 찾기 위해 모니터링을 하던 어느 날, 시월이가 혼자 나타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시월이는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만날 수 있었지만 새끼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을 살펴보니 시월이의 새끼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월이와 새끼(사진)

 사진에서 시월이의 새끼가 보이시나요? 얼마 전까지 발랄하게 돌아다니던 새끼의 등지느러미가 90도로 꺾여있었습니다. 새끼의 등지느러미가 쉽게 보일 리 없었지요. 한동안 새끼는 시월이 옆에서 마치 옆으로 누워 헤엄치는 것처럼 꺾인 등지느러미를 가지고 엄마를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돌고래는 참으로 튼튼하고, 다쳐도 꽤 빨리 회복하는 동물입니다. 프로펠러에 등이 움푹 파이는 큰 상처를 입어도 회복하기도 하고, 낚싯줄에 걸려 등지느러미가 반쯤 잘려 나가도 문제없이 다니기도 합니다. 시월이 새끼도 그럴 거라고 믿었습니다. 약간의 불편함은 있었겠지만 한동안 시월이 옆에는 납작하게 누운 새끼의 등지느러미가 함께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2주쯤 지난 어느 날부터인가 시월이의 새끼가 사라졌습니다. 네, 시월이는 또 한번 새끼를 잃었습니다. 


 저는 수의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질병이라기에는 등지느러미가 꺾인 시기가 너무 갑작스러웠습니다. 아마도 어딘가에 강하게 부딪힌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시월이는 아마도 한동안 또 혼자 다니겠지요. 그리고 언젠가 새로운 새끼와 나타날 겁니다. 모쪼록, 시월이가 더 이상의 상실을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2016년 4월의 시월이와 새끼 / ⓒ장수진
 꺾여있는 등지느러미 / ⓒ장수진



그리고 또 다른 어미 돌고래

 바람이 강하게 불던 날이었습니다. 파도 사이에서 1m나 될까 싶은 새끼가 휙 튀어 오릅니다. 느릿느릿 이동하던 무리가 1km를 움직이는 동안 새끼는 무리를 따라 이동하며 꽤 여러 번 물 밖으로 뛰어오르는 것 같습니다. 다음날도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었고, 같은 지역에서 머무르던 어미 옆에는 어제의 그 새끼가 또 튀어 오르고 있습니다. 


 보다 보니 아무래도 새끼의 움직임이 다소 이상합니다. 어미가 밀어 올리는 것 같기는 한데 가끔은 과도하게 높이 뛰어오르는 경우도 있고, 뛰어올랐을 때 입을 벌리고 있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급하게 사진을 뒤져 확대해보니 사실 새끼는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눈은 탁하고 근육은 이미 힘을 잃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쭈글쭈글함이 남아있는 작은 몸을 어미는 파도를 헤치며 이틀간 밀고 끌며 이동한 것 같습니다. 파도가 가라앉고 난 뒤, 새끼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죽은 새끼를 수면의로 밀어 올리는 어미 돌고래 / ⓒ장수진



그래도 방류 돌고래들은… 

 위에서 설명한 녀석들 외에도 돌고래들은 우리가 모르는 시간에 자신만의 히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을 겁니다. 담이는 2017년도에도 역시 한달 여 동안 원담에 들어와 나가지 않아 연구팀의 속을 썩였고, 어미와 떨어져 홀로 항을 이틀간 헤매다 사라져버린 작은 새끼도 있습니다. 새로운 새끼가 태어나기도 하고 이런 새끼를 주변의 다른 어른들이 함께 돌봐주기도 합니다. 다행히 제돌이를 비롯한 5마리의 방류돌고래들은 올해를 무사히 넘긴 것 같습니다. 고래연구센터의 발표에 의하면 방류 이후 남방큰돌고래들의 숫자가 늘어났다고 합니다. 우리가 보낸 이 녀석들이 오랫동안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숫자를 늘리는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래봅니다. 물론, 가능한 사고 없이, 행복하게요.

(오른쪽부터) 제돌, 복순과 함께 나타난 남방큰돌고래 / ⓒ장수진
춘삼이와 새끼 / ⓒ장수진





사진∙글 | 장수진

<사진 저작권자ⓒ장수진,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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