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인가? 도피인가?

일하지 않는 인간들의 아주 사적인 생존기

by 배당받는 고슴도치

파이어족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여기까지 아주 잘 왔다고 인사를 전하고 싶다.
아주 좋은 안내서를 찾았으니, 축하한다.
하지만, 이곳은 종착지가 아니다.
대망의 FIRE라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에는
아직 확인해야 할 질문들이 있고,
마주해야 할 감정들이 있다.

이 물음들에 답을 하며 파이어에 가까워지도록
배당받는 고슴도치가 가이드가 되어 함께 하겠다.

지구를여행하는파이어족을위한안내서.jpg


자, 먼저 묻는다.

그대는 정말 ‘파이어’를 꿈꿔 이 여정에 오른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일’이라는 괴물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인가?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방황했었다.

내가 지금 파이어족이 된 건지, 도피를 한 건지.

스스로 불안함을 많이 느꼈었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하나 생각도 했고,

일일 알바라도 해볼까 하기도 했었다.

기나긴 터널을 지나 끝으로 나온 기분이 아니었다.

잠깐 쉬는 느낌이었다.

언제든지 다시 돌아가게 될 것 같았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더 파이어에 대해 공부했다.


그렇지만 좋은 안내서가 없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가이드로서 제안하는 것은 이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자는 거다.

당신이 꿈꾸는 FIRE는 진짜 꿈인가, 단순한 도피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나는 왜 파이어를 ‘선택’했는지.


첫 번째 시간의 유한함

좋은 인생이란 후회가 없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난 내가 아주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실수와 실패가 있었지만 내 모든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다시 돌아간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란 자신이 있었다.

내 모든 선택에 자부심이 있었다.


엄마가 아픈 이후로 내가 했던 모든 선택들은

많이 후회스러웠다. 바보 같았다.

나를 가장 많이 힘들게 했던 것들은 내 선택에 대한 후회였다.


엄마가 시한부를 선고받고는,

내게 평범하게 남들처럼 취직을 하면 좋을 텐데,라고 했었다.

그래서 취직을 했다.

그리고 일만 했다. 정말 일만 했다.

정신없이 일하는 와중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었다.

‘엄마가 아픈데 어떻게 연락도 없이 일만 하냐고,

격리된 병실에 혼자 쓰러져서 죽을 뻔했었다고.’

마치 청개구리 이야기 같았다.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엄마의 시간은 짧았고, 그 짧은 시간을 나는 대부분 일을 하며 보냈다.

시간을 돌린다면 절대로 나는 출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선택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 틀린 선택이었다.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은 가족과의 시간, 자유를 위해서인데.

나는 얼마 없는 시간을 영원하다 생각하고 일을 했었다.

앞으로는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두 번째 건강

어릴때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완벽할 것 같았다.

그 말은 돈 말고는 모든 것이 완벽했단 말이었다.


젊을 때는 건강이 영원할 것 같다.

나의 건강도 가족의 건강도.

건강은 돈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더라.

차라리 돈이 없는 게 낫겠더라.

시간이 가고 나이가 들수록 내 건강도 나빠지더라.


나는 클라이밍 강사로 일을 하다가 어깨를 다쳐 퇴사를 했다.

어깨를 수술하고는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다친 어깨를 안 쓰기 위해 팔을 많이 썼더니 팔이 다치더라.

허무했다.

그렇게 두 번의 부상으로 일을 그만뒀더니 미래가 절망적으로 보였다.

내 몸과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구조는 영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수술을 위해 MRI에 들어갔고 폐소공포증이 왔다.

내가 생각하는 답답한 모든 것에 대해 공포가 생겼다.

물리적으로는 지하철, 엘리베이터, 좁은 공간들이 그랬다.

정신적으로는 주에 5일 나는 여기서 일을 해야만 해 라는 압박감.


이런 사실은 나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우울은 작아지거나 커지는 일은 있어도,

절대 사라지진 않더라.

내가 원하지 않는 환경에서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하기가 싫어지더라.

정신건강 역시 회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세 번째 일만 하는 인생에 대해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 일을 하는 것 이더라.

이 구조가 내겐 이상하게 보였다.

우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며

16년의 시간 동안 교육을 받으며 일을 할 능력을 키운다.

심지어 교육을 받아도 좋은 일자리는 많지도 않고,

서로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그 일자리는 좋지도 완벽하지도 안전하지도 않다.

운이 좋아 겨우 직장인이 된다면 평생 노동을 해야 한다.


혼자서 사회에 살아남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겐,

일자리라는 기회를 준다.

감옥에 몇십 년을 있다가 나온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더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이 바로 노동이었다.

노동이 곧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인간은 노동이란 행위로 태엽을 감는 인형 같았다.

그리고 그 태엽이 멈추는 순간 인형은 멈춘다.

노동이 행복하지 않다면 이 태엽을 왜 감아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청개구리 같은 나는 왜 태엽을 감아야 하는지 의문을 가졌다.

태엽을 감기를 거부하고 살아가보자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택인지 도피인지 고민했다.


일이 너무 힘들고 하기 싫었다.

일을 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그래서 그만뒀다, 이건 도피였다.


철저하게 계획해서 선택한 것이 파이어라면, 난 그런 편은 아니었다.

일을 하다가 숨을 못 쉬겠는 순간이 잦아져서 급하게 그만뒀다.

그 이후에 파이어의 최소조건을 설정했고,

시간만 있으면 그 기준을 채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파이어족이 되었다.

하루하루 행복하고 자유로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갈 곳도, 할 일도 없는 그 느낌.

허무함. 공허함.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스스로 돌아봤다. 이 선택이 후회가 없을까.


지금의 내 인생 내 모습은 아름답지 않았다.

지금의 난 지하철과 엘리베이터도 못 타는 우울증 환자였다.

일이 없는 백수와 사회부적응자와 파이어족은 뭐가 다른건가.

내가 기억하는 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였을까.

혼자서 배낭 하나 메고 세계를 여행하던 순간이 있었다.

매일 하루하루를 살아있다는 기분과 행복을 느꼈다.


심지어 현실은 거지 같았다.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길에서 노숙을 하기도 하고,

한 달 넘게 텐트에 지내며 샤워도 못 하고,

개미그득한 시리얼로 배를 채우기도 했었다.

그래도 좋았다. 자유로웠다.

그때 느꼈던 행복, 만족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기억으로 이때까지 버틴 것 같다.


세계여행은 내 평생의 꿈이었고, 꿈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진정한 자유란 이런 것일까 자주 생각했었고 자주 적었다.

살면서 가장 건강하고 행복해 하던 시절의 나,

몸도 마음도 건강했던 나.

다시 그렇게 되고 싶은 욕심이 컸다.


마지막 퇴사? 도피였을 수 있다.

도피라도 해서 내가 좋았던 모습으로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다면

도피건 뭐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과거일 뿐이다.


앞으로 미래에 내가 파이어족으로서 행복할 것인가는

지금부터 내가 뭘 어떻게 해 나가느냐에 따라 달렸단 생각이 든다.

하루 24시간을 내가 온전히 소유하게 됐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모든 시간을 쓸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지금부터는 내가 어디에 시간을 쓰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 정해지는 거다.

지금 당장 내가 좋은 생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으면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내가 이 안내서에서 해주고 싶은 조언은

항상 꿈꿔온 밝은 미래와 긍정을 계속 유지하라는 거다.

레바논티레에서.jpg 레바논 티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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