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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류 Sep 04. 2024

오딜롱 르동 <감은 눈>, 1890

오딜롱 르동 <감은 눈>, 1890

내가 죽으면 이 생각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눈을 감고 무념무상의 상태가 된다면 차라리 좋겠다. 남겨진 가족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도 웬일인지 두려워진다. 내가 하는 과거와 지금의 생각과 기억들은 어디로 가버릴까.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호기심의 첫 번째 질문은 늘 이것이었다. 내 생각과 기억은 어디로 갈 것인가. 조용한 상태가 되어 비로소 행복만을 만끽할 수 있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남겨진 사람에 대한 연민과 그들의 슬픔이 걱정될 뿐이다. 이 삶이 다하여 나는 어딘가로 가는 것일까. 내 육신을 벗어난 나의 정신은 어디로 갈 것인가. 늘 궁금하다.

10대 때는 죽음에 대한 동경이 있기도 했다. 과거형으로 답하는 이유는 현재 아이를 낳고 아이 옆에 오래 건강히 머물고 싶어서이다. 40이 가까워져 오는 나이임에도 부모님의 건강이 매우 염려되고 혹여 아프실까 매우 두려운데, 이 작은 아이는 오죽할까 싶어 기운을 차린다. 건강하게 나이를 먹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사뭇 진지해진다. 정신과 육체가 모두 건강한 것이 중요하다. 어느 하나라도 삐끗하는 날에는 균형이 무너지고 삶이 덧없이 느껴지는 날이 있더라. 정신과 육체는 참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한 인간을 움직여나간다.

번아웃을 올해 몇 번이나 겪어 가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 40대의 문턱에서 넘어지던 언니를 보면서도 '역시 나처럼 독하지 못해, 착하기 때문에 생기는 마음의 병이구나.' 오만하게 아는 척을 한 나를 반성한다. 눈을 감고, 과거와 현재의 나를 주목해 결핍과 스스로 넘지 못한 산을 다시 오르는 체조 같은 것일까. 눈을 감고, 향긋한 봄 냄새를 맡으며 차디찬 겨울을 견딘 나를 축복해 주는 시간일까. 40대를 맞이하는 이 몇 년의 세월이 이렇게 두려울 줄 누가 알았나.

10대에 남들과 다르게 걸어간 나를 가여워하는 듯 20대는 나의 날개를 펼쳐 세계를 누볐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능력을 잘 활용해 세계 속에 나를 확인했다. 20대 후반에 입사하고 세상이 무서운 줄 모르고 오만방자한 걸음과 춤을 추며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날들이 있었다. 30대가 되어 미치도록 사랑하게 된 남자와 결혼하였다. 운 좋게도, 30대 중반쯤 남편을 닮은 아이를 낳았다. 30대 후반이 된 지금 나는 제2의 직업을 찾아 나를 계속 시험해 보고 있다. 결과는 괜찮고 나는 그 길을 계속 걸어나가 목표한 목적지에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둘째 딸, 자퇴생, 대학생, 교환학생, 영어통역 자원봉사자, 교류 학생, 졸업생, 신입사원, 사원, 기획팀 막내, 퇴사자, 대학원 준비생, 토익 강사, 대학 강사, 개인 영어강의, 영어교육 강연가, 강연가, 영어동기부여 강연가, 엄마, 아내. 이 세상 태어나 나의 역할을 주르르 나열해 보니, '세삼 나는 참 열심히 살았구나. 세삼 나는 참 빈둥거렸구나.' 싶다. 꾀를 내어서 해야 할 일을 미루던 게으른 나 자신을 만났고, 밤을 새워서 할 일을 마무리 짓는 완벽주의 나 자신도 만났다.

오만무도했지만, 마음 따듯하게 사람들을 도울 줄 알았던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도 꿈꾸는 미래의 나에게도, 그날들이 모두 좋았음을 눈을 감고 나에게 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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