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
아침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 아이 옷을 준비한다. 전날 준비해 뒀더라면 덜 손이 가겠다. 양말은 항상 두 번째 서랍. 형형색색의 도저히 감당되지 않는 양말 여섯 켤레. 머리가 잠시 어지럽다. 예쁜 색상은 아니지만 그 아이들도 나름의 쓰임이 있다.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풀이 일어나는 걸 보니 저가 섬유인가보다. 예쁘지는 않지만, 이 양말을 신기는 이유는 미끄럼방지 패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여섯 살. 달리고 힘쓰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까르르 웃는 아이는 나와 다른 존재다. 어렸을 때 나도 저렇게 해맑았었으려나.
등원 시간이 하루 중 제일 행복하다. 바삐 움직여서 8시 36분에 등원 차량이 오는 걸 볼 때면 노란 버스만큼이나 박하 향 가득한 청량감이 느껴진다. 선생님이 나오셔서 환하게 웃어주시는 걸 가만히 바라보게 된다. 미소가 주는 기분 좋은 영향력을 받아본다. 동그란 안경을 쓰시고 머리가 곱슬곱슬하다. 귀여운 미소의 앳된 얼굴이다.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선생님이란 그런 걸까. 내 직업에 회의감이 들던 요즘인데, 마음이 다시 좋은 방향으로 흐른다.
선생님의 환한 얼굴을 보니 내 자식을 맡기는 마음에 평온함이 생긴다. 지쳐있는 나 자신을 온전히 돌볼 시간을 노란 버스와 함께 바꾼다. 이제는 나를 돌볼 시간이다. 어제 운동을 하면서 달리기를 열심히 했더니 양쪽 무릎이 아프다. 조금 쉬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해서 운동복을 입지 않고 곧장 집으로 왔다. 기분이 살짝 새초롬해진다. 나의 루틴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때 오는 우울감은 너무나도 쉽게 나를 찾아온다. 그래도 내 무릎에 짧은 휴식을 주자. 기분과 내 무릎을 바꾼다. ‘나쁜 거래가 아니야.’ 해본다.
오전과 오후 2시 반
‘나는 오늘도 열심히 하지 않았어.’ 아니다.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자. 내가 진정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걸까? 가득하게 쌓아둔 설거지를 모두 했다. 침대보, 베개 커버를 꺼내서 세탁도 했다. 쌓여있던 빨래도 갰다. 세탁기 두 번, 건조기 두 번. 그리고 낮잠도 1시간 반 잤다. 낮잠을 자다가 공포감이 몰려왔다. 시계를 보고 과수면을 하던 지난날의 교훈을 생각했다. 곧장 일어나 곧장 샤워했다. 1시간 반. 3시간~4시간이던 시간을 반이나 줄였다. ‘내가 드디어 해냈구나. 기특해라.’
자신을 아프게 하는 채찍을 내려놓는 연습을 시작했다. 글을 쓰기 30분 전부터 글감을 생각해 내면서 짧게 울었다. ‘쓸 글이 없으면 어쩌지.’ ‘또 재미없는 글을 쓰면 어쩌지.’ 내가 기분이 좋아지는 글을 쓰고 싶다. ‘내 우울한 이야기를 오늘은 쓰고 싶지 않아. 극복하고 싶어.’
4시. 아이가 집에 오기 1시간 30분 전. 나는 적어둔 글 백여 가지를 훑다가 오늘 쓸 글감을 찾았다. 나를 칭찬하기. 얼마나 삶에 있어 힘을 주는 말인가. 자신을 스스로 칭찬해 주기. 생각보다 내가 자주 하지 않는 칭찬하기. 나를 아껴주기. 오늘까지 살아온 나를 칭찬하기. 누군가의 칭찬 말고 자신을 칭찬하기. 나사가 빠져버린 내 삶에서 나를 칭찬하기. 못해도 칭찬하기. 다시 할 수 있는 사람이라 믿어주기.
5시 30분
앞으로 글을 쓰고 수정하고 발행하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질 거다. 더욱이 무릎이 좀 쉬고 나니 괜찮은 듯하다. 무릎에 무리 가지 않는 선에서 땀나는 운동을 하러 갈 생각을 한다. 성취감에 목마른 자. 하기 싫은 것을 하고 나면 성취감에 꽤 일상을 기분 좋게 가꿀 수 있다. 다섯 시 삼십 분이 되면 아이는 운동을 하고 학원버스에서 내린다. 운동을 배워본 적 없는 내가 아이에게 꼭 선물해 주는 시간이다. 운동을 배워보지 않아서일까. 나는 몸을 격렬히 움직이는 어떤 운동에도 익숙하지 않다.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힘든 것이 싫기까지 했다. 마음의 병이 생기고 나서 운동으로 도움받는 지금은 운동을 싫다 좋다 말할 처지가 아니다. 그냥 해야 내가 하루를 고통이 덜하게 살 수 있어 하는 것이다.
운동의 효과를 계속 보면 좋겠다. 몸을 뒤틀고 쓰지 않는 근육에도 기회를 주는 시간이 나의 뇌세포에 힘을 주는 것인 줄 이제 알았다. 이제라도 알아서 얼마나 다행일까. 운동에 자주 노출되어서 운동은 해야 하는 일상의 시간임을 아이에게 남겨주고 싶다. 다행히도 아이는 나와 다른 사람이다. 마음을 빨리 털고 일어나는 멋짐을 가진 내 아이가 멋지게 보인다. 오늘도 아이는 나를 키운다. 내가 키운다고 생각해서 나의 희생만을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는 나를 키우고 있었다. 어버이날에 내 아이를 어버이의 가르침처럼 생각이 드는 게 신기하다. 나를 낳아준 사람은 우리 부모님인데 인생의 가르침을 제대로 바라보게 하는 건 내 아이라니. 놀라운 하루하루가 계속된다.
다섯 시 반이 되면 아이는 도착한다. 둘이 함께 어제처럼 얇은 영어 동화책을 다섯 권 정도 읽고 음원을 틀어두고 종이접기를 하겠지? 유치원에서의 생활은 어땠을까. 운동은 어땠으려나. 이것저것 궁금하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에 나를 돌보며 다시 힘이 난다.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배운 것이 있는 글쓰기를 마무리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