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우리 집도 점점 낡아간다. 7년 전 남편과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살 집을 보러 다녔다. 5층이었지만 오전 햇살이 비치는 이 집이 참 좋았다. 남편과 여러 곳의 집을 구경했지만, 마지막 선택은 이곳이었다. 이 집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길, 그런 웃음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예쁘게 늙어가길 원했다. 그런 집이 이곳, 저곳이 아프기 시작한다. 마치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는 걸 아는지 나도, 집도 하나씩 상처가 생긴다.
남편이 없으니, 나는 초능력이 생겼다.
그날은 여느 날과 같았다. 오랜만에 친정엄마의 생신을 축하하러 집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시어머님이 보내신 택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현관문 앞엔 물방울이 조금 떨어져 있었다. 늘 그랬듯 택배 상자에서 떨어졌겠거니 생각이 들었지만, 그날따라 물방울에 나의 시선이 머물렀다. 엄마가 주신 반찬을 정리하고 다시 현관 밖에 나가 봤다. 아까 상황과는 다를 게 없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이럴 땐 친정 아빠가 맥가이버다. 방금 아빠에게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드렸는데 아빠는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여러 번 전화를 걸지만 응답이 없다. 두 번째 맥가이버에게 전화를 건다. 관리사무소 시설 담당팀이다. 아저씨가 오신다는 확답을 받고 나니 걱정스러운 마음이 덜하다. 아저씨는 한달음에 오셔서 어디가 문제인지 이곳저곳을 살펴봐 주신다. 괜찮은 것 같다며 나를 안심시키고 가셨지만 내 느낌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촉이 그렇다고 하지 않는다. 아마도 수도 배관이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새벽까지 현관문을 들락날락하며 물이 더 새는지 확인해 본다.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다. 다음날, 내 촉이 맞았다. 배관 밸브에 문제가 있었다. 물이 계속 새고 있었다. 다시 맥가이버를 불러 상황을 설명했다. 어제 온 맥가이버와는 다르게 더 꼼꼼히 봐주신다. 아저씨는 밸브를 갓난아이 다루듯이 살살 잠그며 혹시 물이 더 새는지 보자며 조처를 해 주셨다. 다행히 밸브의 문제였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 촉이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아니 한편으로 촉을 발동시킬 만한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기를 기도했다.
‘촉아, 나 대지마.’
어릴 때도 그랬지만 나는 잠에서 깨어나는 게 너무 힘들다. 요즘은 새벽에 일을 하다 보니 아침에 눈을 뜨기가 더더욱 힘들다. 떠지지 않는 눈으로 안방 화장실로 향한다. 어, 이상하다. 분명 어젯밤 화장실 청소를 깨끗하게 하고 물기를 다 쓸어버렸는데 바닥에 물기가 있다. 큰아들이 물이 다 튀게 썼나 보다 투덜거리며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을 나간다. 하지만 영 개운치 않다. 다시 나의 촉이 발동한다.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바닥의 물기를 쓸어낸다.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다시 화장실로 향한다. 다시 물기다. 혹시나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몸을 최대한 바닥에 닿게 구부려 세면대 밑을 내려다본다. 어, 물이다. 물이 샌다. 많지는 않지만 분명 샌다. 첫 번째 맥가이버에게 전화를 건다. 맥가이버에게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니 며칠 후에 올라오셔서 봐주신다고 한다. 두 번째 맥가이버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한다. 역시나 이번에도 집으로 방문해 상황을 보시더니 이번에는 잘 모르겠다며 사람을 부르라고 했다. 며칠 후면 긴 연휴이고 수도 배관 문제이면 큰 공사가 될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지만 나는 첫 번째 맥가이버의 진단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며칠 후, 맥가이버는 여러 가지 부품과 장비를 한가득 담아와 상황을 살피셨다. 생각보다 상황이 힘들다고 했고 결국엔 맥가이버의 친구까지 동원하게 되었다. 연휴 3일을 맥가이버는 좁디좁은 공간에서 수도 배관의 누수를 해결했다. 남자 혼자서는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에 몸을 집어넣고 벽을 뚫고 누수의 흔적을 찾아 딸의 무시무시한 촉을 잠재워주셨다. 하얀 먼지처럼 일어나는 시멘트 가루를 마셔가며 아빠는 남편 없는 딸의 걱정을 먼지가 바닥에 가라앉듯 잠재워주셨다. 틈틈이 맥가이버 친구도 친구 딸의 걱정을 덜어주시려 휴일을 반납하며 함께 해주셨다.
아빠는 건축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신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아빠는 맥가이버다. 딸의 매서운 촉을 늘 잠재워주시는 맥가이버다. 남편이 없어, 불안해하는 딸의 걱정을 아시며 뚝딱뚝딱 해결해 주시는 마법사 같은 아빠다. 딸이 씩씩하게 사는 모습을 늘 응원하시며 기도해 주시는 아버지다. 나의 촉을 알아보며 잠재워주는 그런 아버지다. 마음이 불안해 보이면 기도로, 웃음이 없어진 딸의 얼굴에 활짝 미소를 만들어주시는 아빠다. 아빠가 계셔 나의 촉은 조금씩 조금씩 무뎌진다. 뾰족뾰족한 마음이 동글동글 만들어지는 중이다.
아빠는 아직도 나를 키우고 만들고 계신다.
모난 돌이 아니라 동글동글 예쁜 돌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