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_천을 두른 여성의 뒷모습 <개종 II>의 부분, 1913
북적거리는 이곳은 대중탕이다. 명절 전 찾은 대중목욕탕은 평소 주말보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삼 남매는 엄마와 함께 여탕으로 향했다. 목욕탕 안은 뿌옇게 흔들리는 수증기, 사람들의 흔적으로 탁해진 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환풍기 소리, 반구 형태를 하고 천정에 찰싹 붙어있는 물방울들의 향연이었다. 가끔 하강하는 물방울들은 물 위에 점점 커지는 원을 그리기도 하고, ‘앗, 차가워!’ 효과음을 만들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 틈 속에서 우리만의 물놀이가 시작되었다. 놀잇감은 바가지 하나면 충분했다. 바가지를 줄줄이 놓고 물을 담기도 하고, 차가운 물을 담아 담력 테스트도 했다. 온탕과 냉탕 사이를 누비는 사이 엄마는 자신의 몸에 쌓인 묵은 때를 밀며, 몸을 씻었다. 이제 우리 차례다. 삼 남매는 한 명씩 엄마의 호출을 받았다. 목욕탕 공기처럼 뿌연 기억이지만, 평상시 노출되지 않았던 팔 안쪽과 다리 안쪽에 때수건이 왔다 갔다 할 때면 어찌나 아프던지 그 기억만큼은 선명하다. 엄마가 무서웠던 나이였기에 약간의 신음과 함께 아픈 것을 꾹 참으며 몸만 움찔움찔거렸다. 삼 남매까지 모두 말끔해진 뒤에야 우리는 목욕을 마무리했다. 탕 밖의 공기는 상쾌했다. 깨끗하진 몸과 맑아진 정신을 무장한 후 마시는 요구르트는 최고의 음료수였다.
목욕탕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 깊은 곳에 꼭꼭 숨어 있을 때 백희나 작가의 <장수탕 선녀님> 그림책을 보았다. 어릴 적 경험이 절로 떠오르니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보다 읽어주는 내가 더 신이 났다.
신혼 초 온천이 있는 동네에 살았던 나는 주말에 온천을 찾았다. 찜질방과 온천물로 탕을 받아둔 대중목욕탕이었다. 남편 하나 보고 살게 된 수원이었기에 목욕탕 계산대 앞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처음으로 혼자 목욕탕을 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현기증에 세상이 흔들거렸던 난 정신을 차린 후 한참 앉아있었다. 많은 사람들 중 내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공포심이 들었다. 그 이후 목욕탕을 혼자 찾지 않는다. 이제 제법 자란 남매를 둔 덕분에 우리는 가끔 온천이나 워터파크를 찾는다. 워터파크에서 물놀이 후 몸을 씻기 위해 잠시 들릴 뿐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엄마가 된 나는 40년 전 엄마가 그랬듯 내 몸 먼저 씻고 놀고 있는 딸을 부른다. 얇은 때수건의 두께만큼 거리를 유지하며 딸과의 스킨십이 시작된다. 언제 이리 컸을까? 울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깨끗한 물로 마무리 헹굼을 한 우리는 <천을 두른 여성의 뒷모습>처럼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나온다. 붉어진 볼을 한 우리는 요구르트를 마신다. 장수탕 선녀님을 떠올리며 딸과 눈 마주치고 "요구릉~"
지난겨울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에서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개성 강한 여자들의 모습을 보았다. 에곤 실레의 <천을 두른 여성의 뒷모습, 1913>은 <개종 II> 작품의 일부분으로 가운데서 설교하는 인물을 열두 사람이 둘러싸고 있는 장면 중 일부분만 남아 전해지고 있다. 종교적 상징을 담은 <개종 II>는 인간 내면의 변화를 주제로 하여 영적 각성이나 내적 갈등을 표현한 작품으로 알려졌다. 작품 설명에 어깨에 천을 두른 여성의 비틀거리는 듯한 뒷모습에서 고독과 불안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작품 설명글과는 다르게 천을 두른 여성의 뒷모습이 강인한 엄마의 뒷모습처럼 보였다. 굵은 선 때문일까? 머리카락 한 올 흘러내리지 않는 헤어스타일 때문일까? 삼 남매를 키웠던 우리 엄마처럼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마음을 수련하듯 삼 남매를 깨끗하게 씻기고 고향으로 향했겠지? 이십 대 후반인 젊은 엄마는 온갖 책임감으로 똘똘 무장하고 시댁을 향했겠지? K 장녀이자 큰며느리였던 엄마, 엄마의 어깨에 내려앉아있었던 무게를 생각해 본다. 강인해질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아이들에게 난 어떤 뒷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생각해 보며, 어깨너머로 배우는 아이들에게 어른다움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2025 어버이날을 맞이하며, 부모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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