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 김기창 <모란도>
꽃이 그대를 슬프게 하기도 기쁘게 하기도
피는 꽃
꽃이 피려 할 때의 형상이 신비롭다. 이미 활짝 펴버린 꽃 주위로 남아있던 꽃봉오리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듯하다. ‘꿈과 희망이 있는….’꽃봉오리가 열리면 그동안 수많은 시간이 켜켜이 쌓여 터지는 순간 같다.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 그다음은 다시 ‘꿈과 희망이 있는….’ 이라는 줄임말과 시작되겠지.
모란은 부귀, 영화, 왕자의 품격, 행복한 결혼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 지름이 15cm 이상 되는 큰 꽃이다. 5월에 주로 피고 홍자색을 갖고 있다. 뿌리껍질을 통증 치료, 지혈 등 약용으로 사용한다. 모란은 꿀이 많아 벌들이 좋아한다. 꽃이 크고 화려해서 부귀화라고 일컬어진다. 모란은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진 꽃이다.
운보 김기창의 <모란도> 그림을 보며 집에 걸면 어떨지 상상해 본다. 새로운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아이는 질문할 테다. 모란의 꽃말부터 찾아둔다. 모란을 주제로 그린 화가의 이유가 있을 테고 선조들이 신라시대 때부터 중국으로부터 들여와 향유 했을 이유가 있을 테다. 아이가 있으니 알려주고 싶은 것이 많이 생긴다. 소통의 주제가 되고, 함께 공부할 수 있다.
지는 꽃
모란이 활짝 자신의 꽃을 자랑하고 난 뒤를 생각해 본다. 지는 꽃의 자리만큼 아쉬운 것이 없다. 꽃 선물을 즐기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생명의 영원함은 없다. 다시 상기 받는 것이 괴롭다. 꽃은 3일 정도 지나면 시름시름 고개를 떨군다. 꽃 선물은 그래서 받으면 나중에 처리할 때 가슴이 답답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꽃이 지는 시간처럼 아린 순간이 있다. 찬란했던 봉우리가 터지면서 가장 예쁜 모습을 나눈다. 가위로 잘린 꽃이 서서히 아름다움을 잃어갈 때, 그 자리에서 치워지는 그 순간이 괴롭다. 선물은 며칠의 짧은 시간 예뻤고, 버려질 때 아쉽기만 하다.
피고 지는 속에서의 아름다움
운보 김기창의 <모란도>를 가만히 보았다. 수일이 지나서야 글을 써야겠다 한다. 무작정 쓰던 예전과 달리, 나의 글쓰기는 창작의 고통을 느낀다. 그 고통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한 채 뭐가 더 나은 것이라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마음의 큰 서리와 파도가 함께 치던 날, 나 자신이 성장했다고 또는 후퇴했다고 규정짓지 않는다.
피는 꽃이 아름답다고만, 지는 꽃이 슬프다고만 생각하지 말자.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삶이 크게 달라진다. 나에게 나이 드는 즐거움 이란 이럴 때 찾아온다. 유연한 사고, 무엇이든 장단점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무언가가 크게 좋다고 크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인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지는 꽃이면 어떠리. 피는 꽃이면 어떠리. 피고 지는 가운데에서 그동안 고생했노라 토닥토닥 해주면 될 것을.
응원을 받아보니 응원을 잘한다. 응원도 받아본 놈이 잘한다. 잇달아 넘어져 본 놈이 다시 일어선다. 발을 바꾸고 요령이 생긴다. 남들과 다른 시기에 꽃을 피우기도 한다. 늦게 핀 꽃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당신의 꽃 같은 시간은 과거였을까, 지금일까, 미래가 될까. 그저 매 순간 나는 다 같은 꽃이었음을. 그때는 그래서 좋았고, 지금은 이래서 좋고, 미래는 또 그렇게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