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비 개인 뒤>,1962
사람을 키워 내는 일
아이를 키우면서 일할 수 있어 좋으면서도 가끔은 버겁다.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하지만 가끔은 마음이 우선순위가 흔들려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누구나 다 하는 것 같은 ‘육아’. 때론 아이 키우는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 같아 보일 때가 있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생각 드는 날이 손에 꼽는다. 매일 크고 작은 일에 후회한다. 오늘도 최선을 다했나 자신에게 묻는다. 사람을 키워 내는 일은 쉽지 않다.
천경자의 <비 개인 뒤>,1962 작품을 봤다. 정겨운 모습의 집 앞. 아무렇게나 펼쳐진 우산 다섯 개. 비를 말리려 펴둔 우산이 바람에 움직였나 보다. 비가 올 때는 우산 하나 있으면 든든한데, 비 개고 들고 다니는 우산은 그렇게나 짐 같다. 뭐든 있을 때 잘해야 하는데, 쓸모없어진 것 같을 때 소중함을 잊는다. 참 간사하다. 우산을 보니 친구들 이야기가 생각난다. 일하는 엄마를 두었던 친구들이 이야기 해준 것이 있다. “비 오는 날 우리 엄마는 일하셔서 한 번도 우산을 들고 오신 적 없어. 혼자 비 맞고 가던 날이 그렇게 생각나. 비가 오면 늘 서글펐던 것 같아.”라고 했다. “어이 친구. 자네가 우산을 가방 안에 챙겨 다니지, 그랬나.” 혹은 “학교 앞에서 하나 사지 그랬어.”라고 해주면, 그 친구가 실소하며 친구의 슬픔 또한 날아 가 버릴까.
행운
우산 들고 기다리는 엄마를 둔 아이들은 얼마나 행운인가. 있을 때는 잘 느껴지지 않고 빈자리가 생기면 그렇게 눈에 들어온다. 마치 ‘살림’ 같다. 했을 때는 티가 잘 나지 않는데, 막상 쓸 수건이 하나도 없거나 휴지가 휴지 걸이에 없을 때처럼 바로 티가 난다. 행운이란 누리고 있을 때는 잘 모르나 보다. 행운이란 것도 나중에 안다. 그제야 있을 때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아이가 유치원생이라 앞으로 14년은 내 손길이 더 필요하다. 혼자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기를 조금 더 빼면 지금 같은 육아는 얼마나 남았을까.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엄마가 돼야지.’ 친구의 쓸쓸한 눈망울을 보면서 다짐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도 쉽지 않다. 등 하원을 엄마가 할 수 있는 환경은 정말 행운이다.
다섯 개의 우산 그림 아래로 노란 우산 하나 들고 사뿐히 걸어가는 여인이 보인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엄마 모습 같다. 하교 시간 전에 부랴부랴 움직이는 엄마의 마음은 사랑 그 자체다. 여인 위로 사랑 표가 비구름 색깔이 되어 떨어지는 것 같다. 하얀 꽃도 보인다. 봄이 되면 피어나는 하얀 꽃이 활짝 피어 날아가는 것 같다. 봄이다. 봄비가 내리는 것일까. 봄비면 3월쯤이니 새 학기. 아이도 어른도 처음을 준비하는 설렘과 작은 긴장이 느껴지는 계절이다. '붉은 노을이 지면 돌아올 아이들도 기억해 줘야지.' 해서 그린 걸까. 노란 개나리 같은 색감도 붉은색과 조화를 이루며 노닌다. 멀리서 바라보니 나비 같다. 봄비가 내리는 것 같다. 노란 커튼 뒤로 아이 먹일 점심밥을 준비해 두고 엄마는 나왔을까. 수수께끼 같은 오른쪽 아래의 그림은 다시 돌아보니 위에서 바라본 우산의 창살 같다.
우산과 같은 마음
우산과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품어줘야겠다. 어릴 때는 엄마의 어깨가 산처럼 커 보여 나를 지켜주는 큰 곰 같았다. 나를 위해 싸워주기도, 나를 혼내기도 했던 엄마의 어깨는 지금 나보다 좁고 가냘프다. 마음이 커지고 몸이 커져 버린 나처럼 내 아이도 나를 그렇게 바라볼 거다. “엄마가 혼낼 때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훌쩍이며 말하는 6살 아이는 언젠가 생각하겠지. ‘엄마가 하나도 무섭지 않네. 엄마도 겁이 많은 사람이었네. 이제 내가 엄마를 지켜줘야지.’ 저녁을 준비하고 우산을 들고 운동을 마치고 차량에서 내리는 아이를 마중 가는 시간이 행복하다. 무탈하게 하루를 보내고 온 모습을 확인하면 미소가 연신 난다. 마중 나온 할머니, 엄마, 아빠들 얼굴은 모두 그런 미소를 지녔다.
미소를 장착하고 오늘도 아이를 마중 나간다. 마중 나갈 수 있음에 감사해야겠다. 이 시간이 먼 훗날 행운이었음을 알 테다. 내 얼굴만 보면 "엄마 배고파" 하는 아이를 위해 밥을 준비해 두고 오늘도 아이를 마중 나간다. 마중 나올 엄마가 있는 내 아이가 먼 훗날 ‘나는 행운이었구나.’하고 생각할 추억을 내가 만들어 줄 수 있다니. 얼마나 행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