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샤갈 <마술피리의 기억>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행복
한해 한해 나이가 들면서 마음에 드는 음악도 영화도 그림도 쉽게 찾기 어려워졌다. 취향도 협소해지는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의 벽이 다치고 허물어지다 높아진 걸까. 까다로워진 걸까.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마르크 샤갈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 <마술피리> 그림을 그렸다. 눅진하게 내려앉은 크래커와 커피 한잔 하며 듣는 여유를 누비며 듣는 오페라가 아니다. 박진감 넘치고, 긴장감을 주는 오페라다. 자코모 푸치니의 <나비부인>처럼 구슬픈 이야기에 가슴 시리지 않아도 된다. 슬픔에 빠르게 압도되어 버리는 나이기에 사랑스럽고 경쾌한 오페라를 자주 듣는다.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꾸려갈 내 인생처럼 기쁘게 막을 내리는 걸 보고 싶다.
오페라 <마술피리>를 알게 된 건 오페라가수 조수미를 좋아해서였다. 10대였던 나,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통역 자원봉사를 했을 때 그녀를 보았다. 개막식 공연으로 오페라가수 조수미가 노래했다. 세계를 누비는 그녀가 한국의 큰 행사는 꼭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고 했다. 그분의 아름다운 음성이 다리 통증을 잊게 했다. 입이 자연스레 벌어졌다. 소름이 돋았다. 원인 모를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뺨을 타고 흘렀다. 사람의 목소리가 악기가 되어 음악과 조화를 이루니 천국에라도 와있는 걸까. 몸이 붕 뜨는 것 같았고, 조금 어지러웠다. 그때부터 그녀의 조용한 팬이 되었다. 조수미야말로 진정한 ‘마술피리 밤의 여왕’이라는 기사가 났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밤의 여왕의 두 번째 아리아를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단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그것과 연관된 것으로 관심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뭇가지처럼, 식물의 뿌리처럼. 좋아하는 마음의 힘은 많은 것과 연관 지어 나갈 수 있다.
조수미를 통해서 알게 된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 모차르트가 죽기 두 달 전에 완성한 전 2막의 징슈필이다. 징슈필은 독일어로 된 대사와 노래가 결합된 민속적 오페라 장르를 말한다. ‘밤의 여왕’의 아리아는 아름다운 선율에 반해 그 내용이 다소 섬뜩하다. 공부하면 알게 되는 것들이 좋다. 아리아의 고운 선율에 그 뜻을 미처 알지 못하고 매혹되었을지라도, 그 여정은 깊이 있고, 소중하다. 매혹되어 본질을 몰라봤다면 어떠하리. 그것이 아니었음을 인정하고 다시 나아가면 된다.
엄마와 목요음악회
엄마는 아침이 되면 음악으로 깨웠다. 어떤 날은 클래식을, 어떤 날은 오페라를, 또 어떤 날은 ABBA의 <Dancing Queen>을 들었다. 눈 비비며 부스스하게 일어난 아침의 기억은 늘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과 집안일하는 엄마가 보였다. ‘일어나.’라는 말은 1년에 몇 번 들어본 적 없었다. 일찍 서두르는 여행 날 아침이거나 제사를 위해 간 할아버지 댁에서였을 뿐이다.
아이 셋을 키우며 조용한 집순이 엄마가 목요일이 되면 꼭 들르는 곳이 있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그곳은 가톨릭 센터였다. 운전하지 못하는 엄마가 아이 셋을 하나 업고 둘 손잡고 간 곳이었다. 얼마나 중요한 곳이길래 엄마의 발걸음을 매주 가게 했던 걸까. 사람들이 나와서 공연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커다란 스크린으로 오페라 실황 공연을 보여주었다. 2시간, 3시간이 기본이었다. 그 당시 남동생은 유치원생이었으려나. 조용하고 예의를 중시하던 아이였다. 애늙은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부모님 수저 들기 전 들면 나를 타일렀고, 식탁에서 바르게 앉으라고 잔소리도 했다. 오빠 같은 놈이었다. 공연, 미술관, 전시회, 박물관 같은 곳을 데리고 다녀도 곧 잘 따라다녔다. 남동생은 그곳에 도착하면 허리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 잠이 들었다. 오페라를 자장가 삼았다. 둘째인 나는 호기심이 많아 화면을 보다가 어른들 사랑 이야기가 나오면 흥미가 없어져 엄마 얼굴을 자주 바라봤다. 그때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 그랬나 보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스크린 빛이 반사된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아리아가 구슬프게 울려 퍼지면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그곳에는 의자가 참 많았다. 쇠로 된 회색 등받이가 반달 모양인 의자였다. 음악회를 다닌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시절의 엄마도 지금의 나처럼 마음 둘 곳 찾았으려나. 오페라를 좋아하던 엄마가 찾은 오페라가 흐르는 곳. 아이 셋을 키우다가 가슴이 답답해 간 날도 있었을 거다. 그날만 기다리며 한 주를 보낸 날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 당시 어린 내 눈에 엄마는 늘 행복해 보였다. 늘 느긋해 보였다. 엄마 나이와 상황이 되어보니 이제는 알 것 같다. 오페라가 들려주는 시원한 음성으로 기분 전환되었지 싶다. 인생은 누군가의 말처럼 끝없는 기분 관리 같다. 제아무리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이라 해도 언제나 흔들림 없으랴.
그림과 오페라
나는 아이와 전시회나 오페라 클래식 공연을 자주 간다. 거친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을 찾아 듣고 보는 것은 중요하다. 청각과 시각이 아름다운 것에서 노닐고 쉴 때, 나는 다시 힘이 난다. 예술의 힘은 어느새 씨앗을 품고 마음의 뿌리를 내릴 것이다. 살아가는 힘을 줄 것이라 믿는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삶의 지혜를 만들어 줄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는 어른이 되면 누군가에게 과도하게 의지하지 않게 된다. 자신의 좋은 인생을 구상하는 시간이 늘어간다. 그 속에서 ‘나’를 만난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의 인생은 조금은 가볍다. 타인의 말에 좌지우지되지 않기에 단단하다. 고집과 아집과는 조금은 다른 결이다. 나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보면, 실행에 옮긴다. 육아의 목표는 독립이다. 독립을 위한 여정에서 아이에게 주고픈 것이 있다. 예술을 벗 삼아 살아가는 행복이다. 가르쳐 줄 순 없지만, 함께 할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좋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함께 미술관 다니고, 음악회 같이 가는 가족이 되고 싶다.
그림을 바라보다가 며칠 동안은 오페라 <마술피리>만 집안에 울려 퍼졌다. 좋아하는 소리를 듣고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축복이다. 그림 걸린 내 공간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 보낼 수 있어서 좋다. 성취감 굴레에 빠져 허탈해하던 날들이 지나갔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그림과 오페라로 계속 나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