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휴식의 균형

실베스터 슈체드린 <포도로 덮인 베란다> 1828 캔버스에 유채

by 유승희
실베스터 슈체드린 <포도로 덮인 베란다> 1828 캔버스에 유채


휴식 시간


러시아 화가 실베스터 페어도시예비치 슈체드린의 <포도로 덮인 베란다>는 사람들의 휴식 시간을 그린것 같다. 포도덩굴이 내어주는 그늘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오후의 한 장면 같다. 나귀도 이른 아침부터 짐을 싣고 나온 허리를 펴는 시간.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고군분투 중인 가장은 남 눈 의식하지 않고 바닥에 다리를 쭉 펴고 쉬어본다. 일터를 따라온 아들이 아빠의 고단한 하루를 알게 되어 울적해진 표정 같다. 부모의 인생을 제대로 알게 되는 시기가 10대의 어느 날이면 조금은 철이 든다. 철든 아이가 애석하다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언젠가 알아야 할 인생의 그림자를 거울삼아 설계할 미래를 그린다. 어두운 때가 오더라도 부모의 고단한 그 어느 날을 기억하고 다시 나아간다. 철들지 않고 살 수 있는 건 어른이 없는 피터 팬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휴식이 주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일주일에 며칠은 일하고, 나머지 며칠은 자유시간으로 쓴다. 일중독이었던 내가 2년간 몇 번의 번아웃을 겪은 후 바뀐 시간표로 살고 있다. 일주일 중 하루는 어디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충전한다. 아이는 어리고 손 많이 갈 시기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귀하다. 등원을 시키고 아침 운동을 한다.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운동하러 간다. 루틴이 되었다. 운동 시작 일주일 정도는 운동시간이 고역이었다. 크나큰 발전이다. 몸매를 위해서 하는 운동이었지만 체질식을 공부하고 먹고 운동하니 이유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건강한 몸을 갖는 것. 정신을 바르게 만든다는 걸 안 뒤로는 운동도 식사도 즐기게 되었다.


일과 미래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밥 먹고 공부하는 것이 큰 행운이다. 미래를 응원받고 쓰러져도 말할 수 있는 어른이 인생에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형제자매가 있어 어른들로부터 받은 사랑의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또한 큰 행운이다. 미국으로 3년 전 떠난 언니네 가족도 열심히 산다. 몇 년째 자기 사업을 키우고 있는 남동생도 열심히 살아간다. 국내외 출장이 잦다 보니 한 해에 반은 떨어져 지내는 우리 부부도 아이 하나 키우며 열심히 살고 있다.


일은 분명 힘들다. 하지만 일은 머리 아프고 힘든 상황을 벗어나게 해주는 힘도 갖고 있다. 우울해지면 혼자 있고 싶어진다. 누구에게도 맞추지 않고 어딘가 파묻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 시간이 오래되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우울의 시간을 끊기게 해주는 것이 나에게는 일하는 시간이다.


생각이 깊은 것은 좋지만, 생각이 많으면 좋지 않다. 긍정적인 마음이 100퍼센트인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랄까. 생각이 많으면 진지해지고 '만약에'라는 가설을 설정하기 시작한다. 가설은 불안을 만들고 불안은 두려움을 만들며 두려움은 사고를 닫는다. 창조의 사고를 닫은 인간의 뇌는 '어쩌다 만나는 행운'을 예상치 못해 비운을 노래한다. 나의 뇌는 한동안 그랬다. 일을 하는 시간이 얼마나 값진지 안다. 돈도 벌고 나의 뇌도 일깨우는 일거양득의 시간이다. 일이 곧 나의 정신을 위한 휴식 시간인 샘이다. 적절히 배합해서 만든 지금의 시간표가 퍽 마음에 든다.


월요일


아이가 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니면서 주말이 가끔 버거울 때가 있다.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음식을, 졸릴 때 쿨쿨 자고 싶다. 남편도 나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낳고 기르니 많은 것을 희생해 잘 길러보자는 각오가 무색하게 가끔은 쉬고 싶다. 푹 쉬는 주말이 언젠지 기억나지 않는다.


월요병이 사라졌다. 월요일은 기다리던 한 주의 시작이다. 아이를 등원시키는 신바람 나는 월요일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월요일 운동시간. 체성분 분석기를 재고 내 몸의 구성을 살펴본다. 체중이 늘었지만, 체지방은 줄었다. 근육이 올랐다니 기분 좋은 소식이다. 운동은 힘들다. 하지만 어느새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다. 힘들고 말고 할 것 없이 삶의 계획표 중 하나가 되고 나면 하지 않는 날이 오히려 어색하다. 운동한 뒤로 체력이 오르니 하원 후 만나는 아이와의 시간이 기다려진다. 그 힘든 주말도 계획을 세우고 나간다. 주말이 기다려진다.

포도덩굴 밑에서 쉬는 아빠와 아들 그림을 다시 본다. 오후 다섯 시 반 차량에서 내릴 아이를 만나러 가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그림 속 아이는 내 아이가 생각나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엄마가 된 나를 격려한다. “나는 오늘도 잘 키우고 있다.” 이만하면 엄마 노릇도 제법 잘하고 있다. 엄마들 모두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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