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세이] 평화를 빕니다.

뒤러 <기도하는 손>

by 유승희
뒤러 <기도하는 손>

평화를 빕니다.

뒤러의 <기도> 그림에세이


평온

평온을 찾은 길은 오히려 간단했다. 많은 자극을 줄이고 혼자의 시간을 가지며, 더 많은 우울함을 토해낼 수 있는 공간을 영위하는 것이었다. 모르는 사람들 속에 고독이 반가웠다. 몇 개월 만의 일이었을까. 자신이 만든 고독에 고립되는 행운을 누리는 것이란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었다. 할머니를 찾았다. 기도했다. 어디쯤 계시려나 싶은데 내 주위에 있어 주시는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김상욱 물리학자는 유퀴즈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원자들은 대부분 시간을 죽은 상태로 있다가 어느 날 우연한 이유로 모여서 생명이 됩니다. 생명이라는 정말 이상한 상태로 잠깐 머물다가 죽음이라는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는 거죠. 그래서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면 내가 살아 있다는 이 찰나의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알게 돼요. 죽음 앞에서 무엇도 위로가 될 수 없지만, 원자는 영원불멸해요. 지금 내 몸을 이루고 있지만 죽으면 다시 뿔뿔이 흩어져서 나무가 되거나 지구를 떠나 별 일부가 될 수도 있어요. 우린 원자의 형태로 영생할 수 있어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 원자 형태로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들은 위안을 주더라고요.” 유퀴즈 161화의 일부 이야기였다.


중학생이 되어 할아버지 할머니를 몇 개월 차로 하늘로 보내드렸다. 머리가 굵어지던 시기, 질문할 것이 많아지던 시절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두 잃은 나는 장례식장에서 서글피 울었다. 돌아가신 지 3일이 되어 꿈에 나타난 할머니는 금색 실이 수놓아진 방석 위에서 나를 꼭 끌어안아 주셨다. 그 품의 기억이 정말 온몸에 느껴지는 꿈이었다. 행복하시다고 했다. 그 꿈을 꾼 날 이후로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입시, 취업, 결혼, 출산 각종 큰일을 앞둘 때마다 할머니께 기도했다. 늘 마음속으로 찾았다. 나의 수호신이라면 할머니가 아닐까, 하면서.


평화


내 주위 모든 분의 무탈을 빕니다. 인연의 넓이와 깊이를 감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미사 드릴 때 서로 인사하는 모습을 그리며, 오늘 하루도 모든 이의 무탈을 빕니다. 봉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힘든 일을 겪는 누군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살아가겠습니다. 때론 가족을 위해 희생할 줄 알며, 때론 가족을 위해 선두에 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겠습니다.


미약한 내가 세상에 나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인류에게 큰 도움이 될까. 미약함이 모여 큰 것이 되는 건 개개인이 얼마나 큰가를 알려주는 고고한 진리이다. 나 같이 작은 세계의 이야기가 나의 강아지들에게는 세계 전체가 되어 줄 수 있다. 아이와 등원 길에 구해준 귀뚜라미가 세상의 끝에서 다시 그의 세상 한 챕터로 기록되기도 할 테다. 인류 모두를 구할 수 있는 슈퍼맨은 아니더라도, 어느 몇 사람, 몇 동물, 몇 미물에게 도움을 주는 역사로 남을 수는 있다. 그것으로 봉사하며 살아간다는 작은 소망을 잃지 않기를 빈다.


기도


기도 하며 살아가는 마음을 그냥 지나치지 마소서. 욕심일지는 모르나 누군가에게 해하며 살아가지 않고 있을지니, 이 작은 세계를 지켜주소서. 근심 걱정과 빠른 이별을 택하며 나의 할 일에 몰두하는 의지를 갖게 하소서. 나의 삶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도록 글을 쓰는 일을 주저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왜 세상에 왔는지 소명을 다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삶의 끝에서 “참 좋은 여행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찰나를 주소서. 너무 아프지 않은 여행의 끝자락이 되게 해주소서. 좋은 기억으로 용서받을 수 있을 만큼의 죄만 짓고 가게 해주소서.


저를 스쳐 간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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