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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바닷속 외국어 물방울

이탈리아어 사랑

by 유승희
김창열 <물방울 SH87032> 1987년

방울


김창열의 <물방울 SH87032> 1987년 작품이다. 캔버스에 한지와 유화물감의 조합. 확대해서 본 그림에서 한지의 결이 잘 느껴진다.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예술을 사랑한다. 응원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까라바조 그림 한 점을 보기 위해 표를 사고 3시간을 왕복 오가는 마음이 스스로 예쁘다. 언어 배우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탐구하는 그 시간이 좋다. 이 글은 그림 제목인 '물방울' 글자에 대한 고찰이다.

그림 확대 사진. 한지의 질감이 느껴진다.

영어 Waterdrop, 일본어 滴しずく, 중국어 滴dī , 이탈리아어 góccia, 스페인어 gota. 내가 공부하는 언어이다.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는 아직 기초 수준이지만 천천히 진도를 나가고 있다. 계획표를 갖고 시간을 촘촘하게 짜서 생활하던 결혼 전 삶이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외국어 실력을 갖췄을 텐데, 결혼 후 아이를 키우고 집안 살림과 내 일까지 하는 마당에 체력은 밤이 되면 소진이다. 그래도 자꾸만 자꾸만 후회된다. 그래도 나는 할 수 있었을 텐데. 아파하고 힘들어하던 번아웃 시기에 공부라도 한자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부질없는 시간은 없었을 텐데도 가끔은 아쉽다.


이탈리아어 한 방울


È come una góccia nel mare. 바닷속, 물 한 방울과 같다. 마음이 힘들 때 가슴에 새기는 말이다. 여러 번 읽고 여러 번 써보기도 한다. 바닷속 물 한 방울과 같은 시련. 멀리서 보면 보이지 않은 바다 같은 인생의 한 방울. 김창렬의 그림 하나로 제목 하나로 좋아하는 이탈리아 문장을 아는 선에서 분석해 본다.


이탈리아어로 góccia는 액체 방울이다. È(에)는 영어로 be 동사의 의미로 ‘이다’라는 뜻이다. 알파벳을 쓴 영어와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는 가끔 신기하고 묘하다. 같은 재료로 요리 경합을 펼쳐서 예술적인 최고급 요리를 선보이는 것 같다. come(꼬메)는 영어로 as, like같이 ‘~처럼,~와 같은’의 의미다. una góccia(우나꼬챠)를 보면 둘 다 –a라는 어미로 끝나는데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에서 여성형의 기본적인 모습이다. 즉, góccia (물) 방울은 여성형의 단어다. 그래서 ‘한 방울’이라는 una를 붙여 una góccia가 한 방울이라는 글자를 완성한다. 카드가 한 장 남으면 “우노!‘ 라고 외치는 UNO 카드 게임이 있다. 한 개, 하나라는 단어는 un, una. uno처럼 남성형 어미 –o로 끝나는 단어와 여성형 어미 –a로 끝나는 단어가 있다. 그래서 여성형 명사 앞에는 단어의 어미를 –a로 맞춰준다. una góccia nel mare의 nel mare를 보면, mare는 바다다. 10년 전일까, ’La mer‘라는 프랑스 화장품 가격을 듣고 너무 놀랐다. 프랑스어는 공부해 본 적 없지만, la는 관사일 테고, mer는 '바다'라는 단어다. 그와 비슷하게 생긴 이탈리아어 mare. nel은 ‘~속’이라는 전치사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좋다. 그래서 ‘바닷속’이라고 해석한다.


김로마, Roma Kim


이탈리아어를 밀라노 언니 마르께 Marghe로부터 배웠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배우면서 읽기 연습까지 3개월을 열심히 배우고 엄마와 이탈리아로 아트투어를 갔다. 로마에서의 2주. 적지 않은 시간을 공을 들이고 갔더니 택시 아저씨와 짧은 대화를 하고, 음식 주문하며 매운 페페론치노를 추가하기도 했다. 사실 별것 없는 대화임에도 엄마는 감탄했다. 자식을 낳아보니 작은 행위에도 감동한다. 아이 이름을 ’김로마‘라고 짓고 싶었다. 누가 뭐래도 나의 염원을 담은 그 이름은 허락되지 않았다. 참 예쁜 것 같은데 말이다.


로마로 가서 살려무나. 어미도 따라가서 살고프다. 남편과 나의 신혼여행지도 차로 달리는 2주간의 이탈리아 전국 여행이었다. 로마를 시작으로 남부 아말피 쏘렌토 북부 돌로미티 밀라노. 마르게리타 피자를 사랑한다. 이탈리아 국기에는 초록, 빨강, 흰색이 있다. 초록은 바질잎, 빨강은 토마토소스, 흰색은 모짜렐라 치즈를 말한다고 마르께 언니가 알려주었다. 커피는 또 어쩜 그리 맛있나. 우리 부부가 참 좋아하는 피자와 커피의 나라. 화덕을 들고 캠프장에서 피자도 구울 정도니, 피자사랑이 얼마나 극진한지 알 수 있다. 아들도 매주 화덕피자를 찾아다닐 정도로 피자를 좋아한다. 가족 모두 미국식 피자보다 이탈리아식 피자를 좋아한다.

아들아, 너는 먼 훗날 이탈리아 아가씨라도 만나 로마에서 살려무나. 스리슬쩍 따라가 시어미 노릇은 아서라 두고 이탈리아에 살며 너희를 축복하고만 싶구나. 그땐 나도 축복받은 것이니 그 축복 함께 누리고픈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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