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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와 자전거

by 김경진

가을 찬 풍경


후련한 한숨이 터져 나올 때, 나는 2차 실기시험장 대문 밖에 서 있었다.
환경교육사 3급, 7월부터 시작된 대장정은 11월 29일로 막을 내렸다. 이게 뭐라고, 과정은 보통 깐깐하고 철저하기 그지없었다. 내 마음은 그림 속 마차 뒤를 따라가는 강아지 같았다. 마차는 가을이고, 나는 그 뒤를 쫓는 점박이 강아지였다. 내가 좋아하는 ‘가을만끽’을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채, 어느새 11월 말이 되어버렸다. 시간에 쫓기고 마음이 좁아지니 시야마저 좁은 틈새로만 파고들었다. 가을을 건너뛴다는 건, 결국 내게 가을이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나는 가을을 사랑한다. 태어난 달이 9월이기도 하고, 내 생일상에는 언제나 감과 밤, 그리고 찰밥이 빠지지 않았다. 추수의 계절에 풍성한 열매는 내 생일상에 고스란히 올라왔고, 마음까지 가득 채워주었다. 10월이 되면 진한 땀방울만큼이나 짙푸르던 산들이 찬바람을 맞으며 옷을 갈아입는다. 하루, 이틀 운전할 때마다 도로에 선 나무들의 오묘한 색 변화가 손끝까지 밀려와 심장으로 내려앉는 감동을 주었다. 아파트 담벼락을 가득 메운 담쟁이덩굴도 가을을 따라 물들어가니,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 빠져 있다가 매서운 겨울바람을 얼굴에 맞으면 괜히 서운하고 야속한 마음이 내려앉는다.

11월 초가 되면 놀이터는 늘 적막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찬바람에 부모들은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콧물 한 방울에도 겁을 내고, 기침 소리에도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렇게 10월 같은 11월의 밤을 맞이한 적은 없었다. 환경을 공부하다 보니, 기후변화가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재난임을 몸서리치게 느끼게 된다.


마차 탄 풍경

휘휘부는 가을바람에 덜컹덜컹, 다그닥다그닥 가을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흐르고, 볼빨간 네 가족이 마차에 몸을 맡기며 가을맞이하러 가는 중이다.

가족은 동여 쌓고 어디로 가는걸까? 세상이 온통 물기없는 붓으로 물감을 진~ 하게 바른 “한폭의 가을날”에 빠알간 바퀴와 네 가족이 정겹기만하다. 엄마 옆자리를 꿰차는 막내아이의 조잘거림이 청명한 가을하늘로 울려퍼지는 어느날이다

모드 루이스 (Maud Lewis 1903~1970 , Canada), Carriage and Dog


자전거 탄 풍경


11월 30일 오후 7시 우리 가족은 모두 자전거를 타고 헤어샵에 갔다. 지난 해 같으면 11월의 자전거는 그로부터 3월까지 복도 방치각이다.

따르릉따르릉 네 명이 한 줄로 달리는 길에 세 번의 신호등과 여러 아파트를 가로질러 단골집 헤어샵에 도착했다. 나란히 주차해 놓고 서로를 잠금줄로 동여 매어둔다. 그리고는 한 사람씩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다시 매여놓은 잠근줄을 풀고 다시 한 줄로 달린다. 도착한 곳은 BHC치킨집이다. 일요일 밤에는 홀에 우리뿐이었다. 오늘은 여기서 저녁을 먹자. 오늘도 어김없이 막내는 기여코 엄마 옆자리를 꿰찼다. 최신곡이 흐른다. 흥얼흥얼 몸을 들썩이며 닭 한 점 포크로 찍었다. 11월 30일 가을바람이 기분좋게 시원한 밤이다.



"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 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후회 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


<자전거탄풍경,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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