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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류 Jun 23. 2024

장서영 <터뷸런스>, 2024

백남준 아트센터, [빅브라더 블록체인] 전시 중 작품

<터뷸런스> 장서영, 2024

3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2:07

장서영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로리 엔더스의 <미래의 언어>와 비행기가 추락하는 에피소드에서 영감을 받았다.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들은 좁은 좌석에서 똑같은 식사를 받아먹고 이내 잠이 들어버린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해 보면 난기류에서는 함께 숨을 죽이는 운명 공동체이기도 하다. 비행하는 내내 옆 사람과 나란히 앉아있지만, 아무 사이도 아니고 아무것도 함께하고 있지 않다. 접점이 없는 시공간을 공유하면서 각자의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다. 더욱이 자동 추천 알고리즘과 같은 초개인화 기술은 편향된 취향을 강화하고 우리를 좁은 벽에 가둬 버린다. 기체가 상승할수록 희박해지는 산소처럼 공동체 감각은 말단으로 갈수록 희미해진다. 위태로운 비행을 그리는 <터뷸런스>는 인류의 불행한 운명을 부채질하는 미디어의 개인화에 대한 흥미로운 비유로 차 있다.


Chang Seo Young

<Turbulence>, 2024

three-channel video, color, sound, 12:07

Chang Seo Young was inspired by Laurie Anderson’s Language of the Future and the airplane crash episode featured in Good Morning Mr.Orwell. Passengers in the plane eat the same meal in a cramped economy seat during a flight and soon fall asleep. Yet, considered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we shared the same fate amide turbulence, holding our breath together as a communal group. Though we sit beside each other, we are strangers doing nothing together. We observe separate monitors while sharing a time and space devoid of crossroads. Moreover, hyper-personalized technologies such as automated recommendation algorithms reinforce our biased tastes and trap us between narrow walls. Just as oxygen fades with the ascension of the plane, a sense of community diminishes as we go further down the road. Turbulence delineates a precarious flight, full of interesting analogies to the personalization of media that fuels humanity’s unfortunate fate.


(백남준 아트센터 소책자 내용, 작가의 말들을 저의 감상을 소거하고 모두 타자로 쳐서 올립니다.)


3 채널 컬러 비디오로 보여주는 시각 꽉 찬 구성과 13세에 16시간 비행을 경험한 적 있었던 나에게 반가운 좌석에 앉아 헤드셋을 쓰고 보는 구조. 비록 이코노미석일지라도 최적의 안락함을 제공하는 좌석을 전시 동안 볼 수 있어 아늑함이 고조되었다.

전시를 보는 시간은 평일 오후로 사람들이 붐비는 시간이 아니어서, 편안하게 앉아 고조된 안락함을 누렸을 것이다. 이코노미석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앉아 가는 상황처럼 전시회에 사람이 붐볐다면 내가 앉아 이 작품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었을까. 런타임 12분 7초를 오롯이 내가 버티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이 작품을 12분 7초를 일등석처럼 즐겼다.

글 하나하나를 캡처하고 싶을 만큼 동의하는 글들이 계속되었다.

‘이 식사를 위해서 몇몇 생명은 존재가 종료되었습니다.’

‘모든 식사에는 누군가의 죽임이 있어야 된다는 거 너무 흥미롭지 않나요?’

‘당근, 죽었어요.’

‘이 혼잡한 이코노미석에서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옆 사람과 투쟁하는 것도’


미디어 아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백남준 작품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의 어린 시절부터 외국어를 접한 기회로 인한 것인지 모호하다. 외국어를 한국에서 배우기 시작한 나는 미디어를 통해 외국어의 세상을 알게 되었다. 교육열이 굉장하셨지만,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영화 세 편 정도를 비디오로 빌려 틀어주시던 세 아이의 아빠 덕에 영어로 말하는 세상을 접했다. 평일에는 어디선가 빌려온 일본어판 뽀뽀뽀 같은 어린이 교육 방송 비디오를 통해 일본어를 처음 접했다. 무슨 언어인지, 그 언어의 중요성을 미리 듣고 보는 것이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나의 부모님의 교육관은 어느새 나의 교육관으로 자리 잡았고, 강연하면서 느낀 것은 영어권 부모들의 교육관과 흡사하였으며, 많은 경험이 때론 느슨하게 흡수되는 교육을 지향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세 아이는 자라서 영어를 도구로 사는 언어에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으며, 나는 다국어 보유자로 어떤 언어를 배우는 것이 두렵지 않고 행복한 일인 것을 알고 있는 어른이 되었다.



굿모닝 미스터오웰 생방송에서 나온 로리 앤더스의 <미래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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