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vine Kel Jun 07. 2024

한나 파울리 <아침식사 시간>,1887

나를 잘 대해주는 식사

Hanah Pauli <Breakfast time>,1887


나를 잘 대해주는 식사



결혼 후 두 번째 집으로 옮길 때 내가 추구한 바가 있다.

꼭 화산석 6인용 이상의 큰 식탁을 살 것. 그리고 화려하게 나를 위해 차려진 밥상을 찍어 올리는 것.

이케아에서 산 원목 4인 식탁으로 시작한 우리의 신혼 생활을 보내고 난 뒤 두 번째 집에 대한 확고한 생각은 넓은 주방과 6인용 화산석 식탁이었다.

다이닝 룸의 개념을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워 익히 알고 있었다. 한국의 아파트의 구조상 다이닝룸의 존재는 부엌과 한 몸이다.


(사진1) 다이닝룸 공간이 따로 돼 있는 한국 집. 오랜 건물이었는데 서양식 사고를 받아 만든듯하다.
(사진2-5)화산석 6 식탁 나의 아침 식사
(사진6-7) 친구들과 할로윈파티 하던 식탁 그리고 그날 친구들과 함께
(사진8) 부모님 초대 식사 식탁의 모습. 계획을 세울때 준비할때 모두 고단하지않고 행복하기만 했고 식사자리 오신 부모님들이 매우 감동하셨다.


식사만을 위한 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국의 오래된 서양식 사고를 갖고 만든듯한 집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진1)

dine 식사하다. dining room 식사를 하는 공간, 방.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사진2-5). 시간을 들여 정성을 쏟아 만든 한 끼는 삶을 소중하게 대해준다.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은 식사를 함께할 누군가를 사랑 주는 시간이며, 사랑을 주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참 좋은 시간이다.


요리 시간을 즐기며 나의 취향에 맞는 그릇을 한 점 한 점씩 사 모으는 재미를 그릇장에서 꺼낸다. 식탁보를 펼치고 그날의 요리에 맞추어 꾸밀 작은 소품들을 머릿속에 꺼내 이리저리 옮겨본다. 분위기를 한층 더 올려주는 계절을 알리는 꽃과 불을 붙이지 않아도 세워두는 초를 품은 은촛대, 은식기, 겹겹이 쌓인 접시들. 저마다 모두 쓰임이 있음을 인지하고 그들 스스로를 소중하게 대한다. 식지 않게 은근하게 데워지는 약불, 차가운 빈 그릇이 아닌 온도가 적당히 있어 어떤 요리가 닿아도 어색하게 식어가지 않도록 품어줄 침착한 준비가 되어있다. 음악은 일찍부터 홍차가 물에 우러나오듯 식탁 아래로 흘러간다.

사람들이 약속 시간에 하나둘 양손 가득 작고 큰 선물들이 줄이어 들어오고 훈기가 더해지면 자리에 앉아 소담하게 준비된 음식들을 먹으며 따듯한 한 스푼 시작될 시간.

초대를 받은 사람들도 초대하여 식탁을 준비한 사람들도 모두가 사랑으로 좋지 못한 기운이 들어올 틈이 없다. 그나마 있던 부정적인 기운은 이내 사라진다.

사랑이 담긴 식탁은 식탁을 받는 사람, 식탁을 준비한 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치유한다. (사진6-8)



Love cures people – both the ones who give it and the ones who receive it.
_Karl Menninger 미국 정신분석가

사랑은 사람을 치료한다.
사랑을 받은 사람, 사랑을 주는 사람 모두.




Breakfast


기독교의 ‘페스트 기간’을 들어본 적 있는가? 이때 fast는 형용사 ‘빠른’이 아닌 명사 ‘공복’을 말한다.

잠이 들고 하루 중 가장 장시간을 공복 상태로 두었다가 아침이 되어 break 깨트리는 것이 바로 ‘breakfast’ 아침 식사이다.

16시간 공복으로 건너뛰는 아침을 작년 11월부터 해나가고 있다. 두 달 만에 몸무게가 5킬로가 편안하게 빠지기 시작했고 운동을 추가하니 4킬로가 더 빠져 9킬로 감량에 성공한다. 앞자리가 바뀐 것도 나에게는 뿌듯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체력이 많이 올라갔다. 언제나 낮잠 시간을 확보해 두지 않으면 저녁이 되면 쓰러질 듯 힘이 드는 민망한 체력이었기 때문이다. 몇 개월의 번아웃끝에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하고 4월. 나는 마음이 병든 채로 포기하려 했으나 결국 나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두려움에 박차고 그대로 실행해 나갔다.

4월의 영어강연. 아침 식사를 거른 채 16시간 공복이 계속된 6개월의 산물이 아닐까.


다행히 너무 비대하지 않은 몸으로 많은 분들 앞에 서서 지난 16년간 나의 일을 하며 느낀 점들을 풀이해 나갔다. 강연 중 하나는 한국 사회에서 영어를 배우는 자녀들을 둔 부모님들의 의식 교육이었다. 불안하고 어려운 마음은 알지만, 한국어를 처음 배워나가는 우리 자녀들의 어린 시절부터 떠올려 보면, 외국어를 배워나가는 자녀들에게 부모의 역할은 단순하지만 명확하게 보인다.


모국어를 해나가는 아주 어린 자녀에게 우리의 반응은 무엇이었는가.

100명 중 100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무한 칭찬’이다.

‘엄마’, ‘아빠’ 두 단어에 열광하던 부모님들. 한글을 하나 시작한 자녀에게 칭찬하면 자만하여 더 못하리라 삼가며 칭찬을 아끼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 하지만 의아하게도, 외국어 ‘영어’를 배워나가는 자녀들에게 대부분 부모는 어느 순간부터 칭찬하는 것의 강도를 일부러 줄여나간다.


한국 사회가 유독 그런 것인지는 모르나, ‘자만’이라는 단어를 가장 두려워하고 ‘겸손’의 미덕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우리 한국 아이들은 어려운 영어단어를 누가 좀 더 알고 말고의 차이로 레벨을 나누고 영어 레벨 단계 성취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어 ‘영어’ 언어의 강점과 장점, 많은 국가에서 자국어로 사용하는 세계 공용어의 매력적인 언어로서의 자체를 먼저 느낄 수 없도록, 마치 교과목의 한 공부해야 하는 과목만으로 아이들에게 주입한다. 그 누가 주입하려 했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바로 주입의 형태다.


나의 부모는 한국인이다. 외국에서 살아 본 적은 없었지만, 젊을 때부터 외국으로 사업하러 다니신 아버지의 짧은 영어 실력 덕분에 통역사를 고용해 어디를 가던 두 배의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을 겪으시곤 세 아이의 영어는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란걸 뼛속 깊이 느낀 부모를 운 좋게 두었다.

그런 것을 미리 겪으시고도 아이가 어릴 때 영어 학원을 바로 보내지 않은 점, 시키려 들지 않은 점이 매우 신기했다.



외국어의 배우기의 초석: 궁금함


우리는 부모님과 주말마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4~5편의 영어로 된 영화를 보았다.

엄마는 가끔 일본판 유치원/어린이 뽀뽀뽀 같은 비디오도 빌려오셨다. 이것이 내가 일본어를 처음 접한 ‘Core memory’(영화< Inside out>에 나오는 용어로 가장 오래 기억되는 ‘핵심 기억’)이다.

“영화 속에 흘러 노니는 이 언어가 뭐지?” 에 대한 궁금증을 만들어 주는 그것만이 내 부모님이 우리에게 영어라는 언어를 몸에 가랑비 젖듯 스며들도록 그렇게 그것이 부모가 자녀에게 호기심을 자아내는 방법이 아닐까.

나는 4학년이 돼서야 수학단과반 옆 영어교실에서 흘러나오던 Bingo를 외워 따라 부르며 영어 수업이 듣고 싶다 하였다. 조금 지나 소수의 아이가 있던 외국인 선생님을 만나는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나의 부모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인 언어를 언어 자체로 만나며 배우기를 바랐다. 길거리에, 여행을 가다 열차에, 외국인들이 있으면 뛰어가서 말을 걸었다. 말을 건다는 것을 유창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는 것이 그저 ‘Hi, Welcome to Korea!’라고 외치는 것 그리고 바로 “Kelly!”라고 부르시며 손 하나 까딱하는 제스처와 함께 나와 인사시켰다.


부모님이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그 아침 식사를 어떻게 시간 보내며 소화하느냐는 온전히 자녀에게 있다. 언어를 언어로 잘 대해주면, 시간이 흘러 반드시 좋은 보답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칼 라르슨 <벤치에 누워 책 읽는 여인>,191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