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 comfort, More life.
Less comfort, More life. _ 켈리류
모든 것이 편리한 현재.
좀 덜 편하게, 더 많이 다가오는 삶. Less comfort, More life.
(2017.08. 제주 밴 라이프 일기)
Journey makes us humble.
Because it realizes to us how small the part that I occupy is in the world.
_Gustave Flaubert 프랑스 작가
여행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세상에서 내가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작은지 두고두고 깨닫게 한다.
과학의 발전과 인간의 사고 확장으로 이어진 현재의 우리 삶은 많은 부분이 편리해졌다.
땔감 할 나무를 찾고 톱으로 자른다. 톱으로 자른 ‘통나무’로만 저장한다면, 나이테의 시작이 되는 부분부터 습기를 머금고 이내 곰팡이로 얼룩지고 말 테다. 단면이 잘린 나무를 도끼로 찍는 그것을 본 적 있는가. 그 장면은 습기를 방출하지 못해 썩어버림을 막기 위한 해결책의 장면이다. 도끼로 쪼개는 작업을 한 뒤 건조한 곳에서 장작을 가지런함을 유지하며 사방이 바람이 통하도록 환기 구멍을 뚫어 둔다.
이처럼 길고도 섬세한 작업을 하고 통풍이 잘되게 하여 건조 시켜야만, 연기가 나지 않고 잘 타는 ‘장작’을 품을 수 있다. 추운 겨울 보금자리의 불이 되어줄 장작은 오래전 인간의 역사 중 가장 대표 시 되는 불 그 자체다.
‘불멍 (불을 바라보며 멍하게 있는다는 은어)’을 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코끝을 지나는 서늘한 겨울바람의 공기도 즐기게 되는데, 이는 아마도 인간의 시작과 불이라는 소중한 온기와 더불어 땔감의 넉넉함에서 오는 모든 생명의 시초를 찰나에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닐까.
40대쯤이 되면 많이 비워 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고 듣는다.
많은 것을 담는 시기 10대 20대 30대를 지나 많이 비워 내야 하는 무의미해 보이는 이 작업은 인간이라면 대부분 하는 것 같다. 그 시기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나, 요즈음 나는 비워 내기하고 있다.
어느새, 단출한 아침과 점심을 차려 먹고 책과 음악으로 여유와 내 머릿속을 비워 낸다.
밴 라이프의 초기 식탁은 상다리가 부러지라 준비해 많이 담아 올린 모습이라면, 8년이 지난 지금의 식탁은 뭐가 별로 없다. 장을 보고 평소보다 많은 음식에 소화가 되지 않고, 먹는 것도 치우는 것도 일이 되어 지쳐버린 여행은 시간이 지나면서 간소화되고 조금 덜 하지만 그만큼의 책과 음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을 수 있었다.
차에서 숙박 (차박). Van life.
편리한 삶에서 나와 남편은 신기하게도 계속 지친다.
밀도 높아 답답함이 생기는 음역 속에 살다, 창문을 열어 공기의 흐름과 분위기의 전환이 이뤄지는 작업이 나와 남편에게는 ‘Van life (밴 라이프)’이다.
나는 호텔이 주는 조식과 청소로부터의 자유, 모든것이 부탁과 정중함으로 대우받는 안락함, 편리함을 누리고 돌아온 내 집은 불편하기만 했다.
떠나기 전 치우고 가지 못한 밥그릇과 수저, 물이 그대로 들어있는 물컵. 돌아와서 보면 할 일이 넘쳐 문 입구에서부터 아우성치는 집을 보면, 호텔에서의 시간이 나에겐 웬일인지 주제도 모르고 사치를 부린 시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호캉스라는 말이 버젓이 있지만 많은 이들의 공통어에 동감할 수 없음이 가끔 곤혹스럽다.
불편함과 아날로그의 방식, 남이 차려준 아침을 먹을 생각에 부풀어 위장에 밀어 넣게 되는 조식을 먹지 않아도, 그저 포트에 물을 끓여 똑똑 떨어뜨려 먹는 120ml의 커피 향을 맡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울컥해 눈물이 나고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마음껏 내 몸으로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밴 라이프를 매우 사랑한다.
남이 쓰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다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나로서는 그 험난한 화장실도 정복하고 가끔 상 위에 떨어진 음식도 주워 먹으며 면역력을 키워나가는 행위도 하면서, 짐을 챙기고 접어 넣고 아이도 돌보며 강아지가 다녀간 흔적도 치우고 돌아온 집은 그야말로 내가 아는 가장 편안한 공간이 된다. 수도꼭지에서는 언제나 틀어도 따듯한 물이 나오며, 건조기를 돌려 뽀송하게 만들어진 보드라운 따듯한 수건은 넉넉히 준비되어 있어 두려운 것이 없으며, 남은 전기량을 확인하며 전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냉동고의 꽝꽝 얼어 있는 얼음을 오도독 부숴 먹기도 에어컨 바람 앞에서 긴팔을 입는 사치도 누릴 수 있다. 아, 선풍기를 틀고 부드러운 광목 이불에 들어가는 더 한 사치도 가능하다.
Van life (차박; 차가 집이 되어 잠을 자거나, 식사하기도 하며 생활하는 것, 밴이나 작은 자동차에서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 _ 나의 정의
Van-dwelling or van life is an unconventional lifestyle of living in a car, van or other motor vehicle.
People who live this way by choice are typically seeking a more self-sufficient lifestyle characterized by freedom and mobility.
In 2020, in the midst of the COVID-19 pandemic, an idealized version has been popularized through social media with the hashtag #vanlife .
_ Wikipedia 위키피디아에서 부분 발췌
밴 라이프는 밴 (박스형 차량) 또는 다른 종류의 차량에서 살아가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생활 방식이다.
선택에 의해 이러한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은 자유와 이동성을 특징으로 하여 자급자족하는 생활 방식을 추구한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vanlife 해시태그와 함께 이상화된 밴 라이프 모습으로 유행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부분 발췌 후 번역이라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추가 설명하자면, 집을 구매할 수 없는 능력의 사람들이 집값과 생활비를 줄이며 밴에서 자급자족의 삶을 영위하여 빈곤층이 머무는 은신처를 벗어 나는 모습을 2020년 코로나19 시대를 거쳐 이상화된 모습으로 해시태그 #Vanlife를 붙여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Van life 일기와 편지
아들이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취미와 취향을 갖게 되면 좋겠다.
20대 때 배낭여행자이자 풍경 사진을 찍는 아빠와 할아버지 할머니 따라 밴 라이프를 시작한 엄마의 취미. 대자연 속에 있다가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행복해진다.
뭐 더 바랄 것이 있을까?
나는 그 존재로 가치 있고 행복하다는 걸 확인하는 시간.
(2022.08.17. 강원도 정선 밴 라이프 일기)
아들아.
인생을 살다 보면 다 내려놓고 머리를 식힐 곳이 꼭 필요하거든.
그때는 엄마와 아빠에게 가장 힘이 돼준 밴 라이프를 너도 해보는 건 어떠니.
자연을 보며 대충 끼니를 때우고 얼른 옆에 두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빠르지 않게 천천히 머리를 식히렴.
머리를 식히고 남은 자리에 진짜 좋은 추억이 난단다.
(2023.08.15. 경기도 남양주 주말 밴 라이프 편지)
배에 밴을 싣고 간 제주
나: 제주에 어떻게 정착하게 되신 거예요? 너무 부러워요.
가게 주인 할머니: 타지에서 제주로 오는 건 딱 두 가지야. 좋아서 오는 경우, 어쩔 수 없이 오는 경우. (잠시 숨을 고르시더니) 결혼한 지 얼마나 됐나?
나: 1년 조금 넘었어요.
가게 주인 할머니: 개를 키우네? 지랄한다. 애나 키우지! 뭐 한다고 강생이를. 애나 낳아 기르라. 내쁘리뿌이(내버려 버려라. 사투리).
나: 어어? 어머니도 개가 두 마리나 있으시면서?
가게 주인 할머니: 아니…. 내가 어디 보내려 했는데 다시 왔어. 인연인가 봐. 얘 진짜 귀여워. 앉아. 수박 먹고 가. 어서 앉아.
그 후의 대화는 제주 바다에 두고 가요. 할머니.
주인 할머니께서 가게 건너편(바다가 보이는 곳)에 차박하고, 가게 뒤로 함께 운영하시는 민박집에서 샤워하고 가라고 빨래는 해두고 널어 이틀 있다 찾아가라고 하시네요. 아. 여름 제주에서 기분 좋은 기억들이 늘어갑니다.
(2017.08.06.배에 캠핑카를 싣고 온 제주에서의 밴 라이프 일기)
제주도 밴 라이프 사진을 시원한 곳에서 보고 계신다면 그저 부럽고 한 여행 같으시겠지만,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누구나 즐겁고 편한 여행이라면, 5성급 호텔에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며 따듯한 수프와 구운 빵이 있는 아침 식사를 차려둔 곳이 아닐까요.
우리에겐 그저 샤워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화장실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이 즐겁고 편한 여행지입니다.
저희는 2주 동안 차박 캠핑 겸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샤워 시설이 없는 단출한 스타랙스캠핑카입니다. 대부분 차량이 그렇듯 시동을 켜지 않으면 에어컨을 쓸 수 없어요.
저희에겐 차박 캠퍼들의 대부분 필수품인 대용량 파워뱅크도 아직은 장착하고 다니지 않습니다. 차량에 원래 탑재된 파워뱅크는 차량 내 작은 냉장고를 돌리고 2층 루프탑을 자동으로 올리며 각종 라이트 정도 켜는 용도입니다. 더위에 맞서는 저희의 무기는 창문 그리고 12볼트로 사용할 수 있는 작은 선풍기 한 대입니다. 선풍기도 과열 방지를 위해 몇 분 틀다 끕니다. 그래서 시원하고 습도 낮은 차박 장소를 찾아야 합니다.
차박 장소 물색이 가장 핵심이고 그것만 해결되면 두려운 것이 없지요.
열한 번의 부부 캠핑을 내륙에서 경험하고 최소한의 짐을 챙겨 이번 제주 여행을 해나가며 차박의 힘든 점을 몸소 겪어가고 있어요.
뭐든 역시 경험이 중요하군요.
그 흔한 물 콸콸 쏟아지는 집을 떠나면 호텔을 떠나면 펜션을 떠나면 찬물만 나오는 수도꼭지와 샤워부스도 만나게 됩니다. 여름 같은 경우 샤워를 두세 번 하는데 차박 하시는 분들은 샤워부스를 들고 다니기도 하죠. 저희도 있긴 하지만 여자 캠퍼로서는 어려움이 많아 사우나 목욕탕 야영장 샤워실 등을 이용합니다.
여름 캠핑의 적은 모기 샤워 시설 화장실 입니다. 이 세 가지만 충족된다면 모든것이 행복한 차박이 되는 거죠. 아주 간단한 것 같지만 아주 충족시키기 어려운 조건들이죠. 자동차 캠프장은 모든것이 충족되지만, 난이도가 높지않아 이제 시시합니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냐고요?
여행이 더 우리의 사이가 더 깊어지는 걸 알 수 있고 이런 경험이 훗날 먼 미래에 무언가로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그저 이편한세상에서 좀 더 불편해 보니 현재 삶의 만족도가 더욱 높아집니다.
밴 라이프를 하면 나태한 제가 부지런해지고 문제해결에 대한 결집력이 생기고 불편한 것에 익숙해지니 불평이 줄어듭니다.
아침 태양이 더워서 단둘만 허용되는 침대에서 일찍 잠에 깨고. 조용하고 어두운 곳에서만 숙면하던 저는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매미 소리 들으며 잠도 들 수 있습니다.
조금 불편한 아주 행복한 차박 여행에 같이 빠져보아요. 꼭 캠핑카가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인터넷 차박 카페에서도 다들 개인차량으로 차박을 떠나니까요.
아무도 관심 없을 이 글이
어느 한 분에게 와닿길 바라며…. #vanlife #제주네번째밤
(2017.08.17 배에 캠핑카를 싣고 온 제주에서의 밴 라이프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