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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vine Kel Jun 06. 2024

칼 라르슨 <벤치에 누워 책 읽는 여인>,1913

엄마의 책

Woman Lying on a Bench, 1913 _ Carl Larsson



Don’t feel pity for yourself just because

your dream never came true.

Really poor thing is what you don’t have a dream.

_Eschen Bach 독일 시인     


그대의 꿈이 한 번도 실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가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말 가여운 것은 꿈을 꿔 보지 않은 것이다.     


     

엄마의 책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안경을 코 밑으로 내려쓰고 책을 보며 졸린 눈을 한 여자 어른이었다. 늘 힘이 없고 집에서의 옷은 파란색과 보라색의 중간 색상의 입술처럼 모양을 한 넥 모양의 칠 부 티셔츠를 즐겨 입었으며, 화장실에 앉아 금방 볼일을 보고 일어나는 법 없이 늘 노래를 길게 부르는 여자 어른이었다. 엄마의 도시락 속 편지가 친구들 사이에서 괜한 말이 나올까 숨겨서 읽었던 나의 마음을 모른 채 예쁜 글씨체로 각종 좋은 말들을 써주던 여자 어른이었다. 늘 다 터져버린 김밥용 김이 아닌 김을 사용한 김밥에는 머리카락이 떨어져 김밥을 먹다가 이에 머리카락 한 올을 꺼내 빼야 하는 수고를 시켜주는 어딘가 허술한 엄마였다.     


직조물이 조직적으로 베틀에 짜져 확연한 탄탄함을 갖고 있는 분이 나의 아빠라면, 짜임새 없이 엉성한 그물망 디자이너 옷 같은 사람이 우리 엄마였을까. 사회생활을 하며 명동성당을 다니고 결혼 전 생활을 이야기해 줄 때면 엄마의 눈에서 나는 나의 미래를 보곤 했다. 나도 저렇게 명동성당을 일요일마다 다니는 여자 어른이 될 테야. 나도 저렇게 책을 읽으면서 코 밑으로 안경을 내려쓰고 책을 응시하는 여자 어른이 되어야지. 나도 저렇게 아이들 아침잠을 억지로 깨우지 않고 오페라를 틀어 보이는 창문과 문을 모두 열고 나의 할 일을 하며 각자의 일이 있음을 느긋하게 알려주어야지. 나도 엄마처럼 서두르지 않아야지.           



엄마의 느긋한 도움          


나는 긴장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앞에 서서 이야기할 때 쳐다보는 시선이 가끔은 나를 뜯어먹으러 오는 새들과 같았다. (조류 공포가 조금 있어 ‘새’로 표현해 본다. 영어권 사고의 ‘bird’를 사람에게 대입하면 굉장히 무례한 표현이므로 오해의 소지가 있어 미리 알린다.) 그런 나에게 늘 해주던 엄마의 말들은 긴장을 낮춰주는 ‘한 모금의 숨’이었다.


아빠는 어릴 때부터 굼뜬 모습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아빠의 인생처럼 모든것이 빨리빨리 몸에 배 있으셨고 일 처리가 빠르고 완벽해, 굼뜨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나는 아무리 무서운 어투로 지시받는다 해도 바로 하는 아이도 아니었거니와 시키는 일에 대해서 내 생각을 골똘히 한 다음 행동하는 아이였다. (나의 아들을 볼 때면 아빠가 왜 그리 화를 냈는지 이제는 안다.) 아빠는 일로도 굉장히 열정이 넘치셨지만, 육아마저 과하게 열정적인 분이셨다. 그 시대의 아빠 상을 고수하면서 ‘밥은? 아(이)는? 자자.’ 이 세 단어만 하시며 돈만 벌어오셨다면 달랐을까. 넘치는 모성애를 지닌 아빠와 살아온 부인은 ‘엄마의 자리를 대부분 내어준다.’라는 마음이었노라 지난날을 회상하시곤 했다.“아빠가 커갈 때 부모님이 바쁘셔서 그 서늘함을 이기지 못하는 듯해. 그래서 너희들에게는 뭔가 놔두어도 될 부분까지 말해주고 싶고 챙기는 것인데 가끔 너무 힘에 부치긴 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아빠의 마음은 그렇다는 걸 잊지 말아줘. 저런 아빠가 엄마는 가끔 가엽다." 어쩜 저리 다른 성향이 성격이 만나서 결혼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의 '' 이라는 '목적지'로 데려다주는 아빠     


불도저같이 달려가는 아버지를 볼 때면 숨이 막혀서 엄마를 꾀어내어 도망가자고 하고 싶었다. 아빠는 그저 ‘어린 시절 가족여행은 소중한 추억이다!’라는 느낌표 가득한 얼굴로 주말이면 짐가방을 언제 다 준비했는지 문 앞에 두셨다. 가족들과 여행을 가야 하면 새벽 5시에 모두 기상시켜 차멀미가 심해 늘 토하던 나를 데리고 목표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좋은 옷을 입혀야 그 옷에 맞으며 분위기가 생긴다며 일로 나름 자리 잡아 가시기 시작하시면서부터 값비싼 옷들을 입히기 시작했다. 언니가 입던 옷들도 일절 주지 않고 ‘새 옷 그것도 좋은 옷’을 사주었다. (지금 보면 언니는 굉장히 키도 크고 팔다리가 가늘고 길어서 그 옷이 내가 맞을 턱이 없었다. 아 지금 보니 아비의 지독한 사랑은 개그 소재로 전락한다.)     


엄마는 이런 아빠를 가끔 이해하지 못했지만, 언니의 외모에 비해 조금은 딸렸던 내가 누릴 수 있던 특권을 덕분에 누리게 해주었다. (나는 언니의 외모를 늘 칭송했던 여동생이었고 언니와 비교하면 떨어지던 나의 미모를 단 한 번도 한탄한 적 없다. 19년 같이 살아봤던 내 언니는 심성이 고운 사람이었기에 이쁜 언니가 나의 언니란 사실만으로도 감사했고 늘 자랑스러웠다. 가끔 어떤 분들이 어린 시절의 나와 언니를 외모로 비교하는 부분에 내가 결핍이 있다고 오인을 받는데 나는 오히려 자랑스러워한 존재임을 적어 둔다.) 그런데, 사실 그런 아비의 포부를 비웃듯 나는 그 옷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시대 여자아이들이 열광했던 만화영화, ‘카드캡터 체리’가 그려진 분홍색 레이스 원피스를 원했을 뿐이다.          


아빠의 현재 마음에 두고 있는 목적지는 엄마의 대학교 입학, 현재 일본 교환학생을 마치고 오면 겨울에는 하와이로 연수를 보내는 것, 그 뒤는 편입, 대학원, 그리고 박사과정까지다. 목적지를 늘 마음에 품고 그에 필요한 외국어가 막히거나 슬럼프가 오면 상대를 놀려 화나게 만들어 그 외국어를 정복시켜 버리고 말게끔 하는 특이한 우리 가족 코치다. 자신의 세 아이를 모두 독립시키고 잘 키워낸 엄마에게 엄마의 그동안 꿈을 계속 이룰 수 있게 선물해 주고 있다. 집안일을 오롯이 혼자 하게 되어 주부습진이 와서 현재 힘든 홀아비 시간을 경험해 보고 있다. 매달 일본으로 엄마를 보러 가는 아내 바보,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는 아빠. 그에게도 엄마와 떨어져 있다는 건 힘든 도전이었다. 오죽하면 ‘여자가 집에서 하는 일 없이 뭐했느냐?’라고 말하는 남자들을 다 때려 부숴버려야 한다는 과격한 소리로 두 딸을 포복절도하게 한다. 역시 사람은 누구나 경험하지 않으면 안다고 말하면 안 된다.          


불도저 같아서 미워했던 나의 아빠를 깊이 아껴주고 안아주는 느긋한 내 엄마. 둘의 행복을 계속 가슴 깊이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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