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무료할 때 지구 한 바퀴 (1)
피스보트에 탑승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항상 받는 질문이 있었다. "어떻게 피스보트를 알게 됐어요?" 내가 답변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놀라곤 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피스보트를 알게 된 계기가 너무도 우연이기 때문. 모든 것은 인스타그램에서 시작되었다.
2년 전부터 내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며 자주 내 스토리를 확인하는 사람이 있었다. 눈에 띌 때마다 나도 몇 번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가 본 기억이 난다. 대학생 같아 보이는 앳된 얼굴, 그리고 그의 포스팅에서는 무해한 바이브 분위기가 느껴졌다. 친구들과 주고받는 댓글을 보니 스캠 계정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그를 맞팔로우했다.
맞팔 후 2년간 우리는 일절 교류 없이 서로의 스토리만 지켜보며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듯한 스토리를 연달아 올리기 시작했다. 몇 달씩이나 여행을 다닌다니, 어떻게 가능할까? 금수저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궁금증이 점점 커졌다.
그러다 어느 날, 그의 스토리에서 피스보트라는 NGO를 홍보하는 내용을 보았다. 그의 세계 여행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나는 그에게 바로 디엠을 보냈다. 그것이 우리의 직접적인 첫 교류였다. 다행히 그는 친절하게 나를 반겨주었고, 그걸 계기로 우리는 화상 미팅을 잡았다. 통역 봉사로 세계 일주를 했다는 데, 그 경험은 상상이 되지 않아 그와의 미팅이 더 기다려졌다.
그와 미팅을 갖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통역이라는 쉽지 않은 일을 하는데 열정페이도 아니라 아예 돈을 주지 않는 것 자체가 사실은 굉장히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단 뭐 하는 곳인지 들어나 보자, 안 그래도 이 사람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했는데 이참에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화상 미팅에 참여했다.
화상 미팅이 시작되자, 익숙하지만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그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 어색하게 첫인사를 나눈 후, 그는 자신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는 시간을 먼저 가지자고 제안했다. 그의 제안에 나는 웃으며 동의했고, 굉장히 어색한 채로 나는 내 전반적인 인생 배경을 2분 내로 요약해 소개했다. 그도 그의 일생기를 요약해 읊어주었다. 그는 나보다 8살이나 어린 친구였다. 어쩐지 어려 보이더라니! 이것도 인연인데 말 편하게 하며 지내자는 내 제안에 그는 바로 ‘오 그러자 그럼’이라고 쿨하게 답했다. 이 당돌하고 귀여운 친구의 이름은 희석이다.
희석이는 도쿄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던 중, 우연히 피스보트에 대한 정보를 접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피스보트가 얼마나 유명한지 알게 된 후, 마지막 학기였던 그는 취업 준비에 앞서 피스보트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고.
그가 자세히 들려준 피스보트 경험담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세계 곳곳을 누비며 통역 봉사를 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접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깨달았다는 그.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희석이는 단순히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삶의 지혜와 통찰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 강조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점점 피스보트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이게 과연 나에게 맞는 선택일까? 몇 달씩 배 위에서 생활하며 낯선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희석이와의 대화가 계속될수록, 나는 그가 얼마나 진심으로 피스보트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자신이 경험한 세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 나왔다. 그런 그의 모습은 나에게도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진로 고민으로 몇 개월 동안 골머리만 앓던 나에게 어쩌면 해답의 기회가 온 건 아닐지 생각했다.
8월 말과 12월 초에 출항하는 크루즈의 한-영 통역 자원봉사자를 모집 중이라고 했다. 희석이랑 화상 미팅을 한 것이 벌써 8월 중순이었으니 여유롭게 12월 크루즈에 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12월 루트는 내가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아프리카 대륙을 중점적으로 돈다 한다. 무조건 가야 한다. 이 기회는 내 인생에서 몇 없는 절호의 기회처럼 느껴졌다.
그날로 희석이에게 피스보트 담당자의 연락처를 전달받아 이력서를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