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무료할 때 지구 한 바퀴 (4)
첫 시도에 이렇게 완벽한 룸메이트를 만나다니, 나는 운이 정말 좋았다.
‘혹시 이 크루즈에는 심리상담사나 정신과 의사가 있나요?’
온보딩하던 날에 통역팀 리드에게 내가 제일 먼저 한 질문이었다. 크루즈 출항 당일, 모두 설레는 얼굴로 승선하는 수많은 승객들을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중국에서 잘 다니던 대학을 때려치우고 심리학을 공부하겠다며 돌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심리학을 사랑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깊은 관심이 있는 나에게,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고 배우는 것은 일종의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그래서 이 크루즈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진 대규모 집단 역동의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관계의 변화가 일어나고, 또 그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을 발견하게 될까?’라는 기대가 생겼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도와줄 심리 전문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굉장히 아쉬워했다.
갑자기 걱정도 엄습해 왔다.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룸메이트들 생각 때문이다. 나는 평생 가족이 아닌 사람과 방을 함께 써본 적이 없었다. 12년간 유학 생활을 했지만 기숙사 생활도 겨우 1년이었고, 그마저도 독립된 2인실이었다. 이번엔 낯선 사람들과 한 방에서 세 달을 함께 지내야 한다니, 그들의 생활 패턴이 나와 맞지 않으면 어쩌지? 이런 걱정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승선하자마자 짐만 방에 두고 바로 온보딩을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룸메이트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였다.
내가 배정받은 R309호는 고시원 두 칸 크기 정도의 작은 방이었다. 2층 침대 하나, 싱글 침대 하나, 그리고 작은 옷장과 서랍장이 전부였다. 침대 사이에 겨우 큰 캐리어 하나 펼칠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이 좁은 방을 나는 일본인, 중국인 통역 봉사자 두 명과 함께 사용해야 했다. 온보딩 후 드디어 만나게 된 룸메이트들은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늦게 합류한 나를 위해 이미 룸메이트들끼리 불편한 2층 벙커는 돌아가며 쓰기로 약속했다며 나도 편한 위치의 침대를 사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줬다. 사소한 배려였지만, 그것만으로도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좋은 룸메이트들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룸메이트들과 나는 여러 공통점을 발견하며 금세 가까워졌다. 우리는 모두 어린 나이에 외국에서 생활하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왔고, 공교롭게도 모두 장녀였다. 장녀로서의 책임감과 부담감은 국적을 초월한 공통된 경험이었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긴 전우애는 우리 사이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더욱 놀라웠던 건 생활 패턴까지 거의 완벽하게 맞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모두 낮잠을 좋아했고, 밤에는 자정 이후에 잠드는 편이었다. 한번 잠들면 소음에도 쉽게 깨지 않았고, 자기 전에 조용히 하루를 정리하며 일기를 쓰는 습관도 비슷했다. 첫 시도에 이렇게 완벽한 룸메이트를 만나다니, 나는 운이 정말 좋았다.
우리는 밤마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연애 이야기나 크루즈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가벼운 수다에서부터, 문화적 정체성 고민, 가족에 대한 책임과 염려 같은 무거운 주제까지 다양하게 오갔다. 그리고 민감할 수 있는 역사적, 사회적 주제들도 자연스럽게 대화 테이블에 올랐다. 나는 중국인 룸메이트와 시진핑의 행보에 대해 토론했고, 일본인 룸메이트와는 한국의 일제강점기 역사를 이야기했다. 이러한 대화들은 우리 사이의 깊은 신뢰를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우리가 존중과 믿음 속에서 이런 주제를 편하게 나눌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였다는 뜻이었다. 단순한 정보 교류가 아닌,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치유와 성장이 함께 이루어지는 과정이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상처를 나누고, 서로를 통해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크루즈 위에서의 삶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고, 과거의 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룸메이트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나에게 치유와 성찰의 기회가 되었고, 이 크루즈에서의 일상이 내가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교훈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