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밤을 지낼 숙소로 움직였다. 우리가 가는 곳은 몬탈치노. 그렇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라는 와인의 그 몬탈치노이다. (그거 말고는 아는 바가 없다.)
가는 동안에도 풍경이 좋은 곳에서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바람을 맞고 햇볕을 쬐느라 시간을 계속 썼다. 그렇게 사진 찍고 움직이면, 한 3분 움직였는데 아까보다 풍경이 더 좋아 보이는 것 같고 도대체가 떠날 수가 없을 지경...
가는 내내 이런 풍경의 연속
멀리서 보이던 언덕 위에 붉은빛의 도시가 몬탈치노였다. 우리의 숙소는 그 도시의 외곽을 스치고 지나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 했다.
사이프러스 나무가 도열한 입구의 길과 길가에 넓게 자리 잡은 포도밭을 보니, 우리가 머물기로 한 숙소는 와이너리에 딸린 숙소임을 알 수 있었다. (예약 사이트에서 사진을 보긴 했겠지만 그걸로는 실감하기 어려웠다.)
살짝 흙먼지가 일어나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눈 앞에 보이는 건물로 다가갔다. 해가 좀 낮아져 있어서, 하늘이 좀더 짙은 푸른색을 뽐내고, 다른 한쪽으론 긴 그림자를 그리며 첫인상에 불을 붙였다.
첫인상부터 맘에 드는 몬탈치노의 아그리투리스모 Brizio
앗?! 이 귀여운 강아지는 뭐지? 사무실처럼 보이는 곳엔 사람이 보이지 않고 귀여운 강아지 한 녀석이 우리를 언제 봤다고 꼬리 치며 좋다고 달려든다. "야, 넌 집 지키긴 글렀구나? 너의 주인은 어딨니?"라고 말을 걸고 있으려니 사무실 문이 열리고 책임자(호스트라고 하자)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나타났다.
머무는 동안 만나기만 하면 꼬리 치며 반겨 주던 강아지 "Mia"
마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이것 참 첫인상부터 너무 좋잖아? 우리의 예약을 확인하는 동안 넉살 좋은 강아지 "미아"가 우리의 온 관심을 독차지했다.
호스트 아저씨는 우리를 이끌고 방을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마치 야심 찬 신축 건물을 소개하는 것처럼 온갖 효과음을 내 가면서 문을 열고 커튼을 걷고 하며 소개를 해 준다.
방보다 먼저 간 곳은 공용 공간인 사우나와 자쿠지. 우와우~ 이거 뭐가 엄청 특별해 보이는 풍경인데? 사우나와 작은 욕실, 그 옆에 수북이 쌓여 있는 얼음, 바로 옆에는 천장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샤워기. 다음엔 또 어떤 멋진 곳이 있을까 기대가 될 정도. (그런데 우린 맨날 밖에 돌아다니느라 이곳을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ㅠㅠ)
선배 언니들의 방은 2층. 야트막한 분위기도 있지만 다락방 같은 느낌이 아늑하고 나쁘지 않다.
우리 부부의 방은 1층인데 겉만 봐도 꽤 크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옷! 이렇게 근사한 방이! 고급 호텔의 정돈된 럭셔리함과는 다른 고전적인 멋이 물씬 풍기는 거실 겸 침실이다. 작은 통로 너머에는 널찍한 욕실 겸 화장실 가운데에 욕조가 있다. 우리에겐 특별히 업그레이드해 준 방이라는데, 지금껏 봐 왔던 어떤 고급 호텔방보다 더 인상적이다.
소박하지만 왠지 고급스런 느낌의 거실 겸 침실. 다 기분 탓임.
여기에 오기 전에 전화로 저녁을 먹을 수 있을지 문의했었는데, 오늘 저녁 예약은 마감되었고, 근처의 괜찮은 레스토랑에 예약을 해 준다고 했다. 내비게이션에 그 레스토랑을 찍으니 차로 10분 남짓 걸리는 거리다.
각자의 방에서 잠시 짐 정리를 하고 나오니 이제는 해가 붉게 변하고 있었다. 시간에 비해 아직 하늘을 떠도는 빛이 가시지 않았지만, 레스토랑에 도착하니 우리 자리일 것처럼 보이는 테이블만 빼고 다른 테이블은 모두 사람들이 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테이블은 절벽 한편에 야외의 천막 아래 테라스처럼 차려져 있고, 절벽 쪽으로는 절경이라고 하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여기가 토스카나임을 증명하는 듯한 어두운 저녁의 짙푸른 녹색의 언덕들이 펼쳐져 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왼쪽은 절벽. 그 건너로는 언덕들이 펼쳐져 있다.
남자 서버가 와서 주문을 받았다. 오오! 이 남자는 이탈리아 가면 조심하라는 바로 그런 비주얼의 남자 아닌가?! 살짝 처진 눈꼬리에 초콜릿색 윤기가 흐르는 머리, 저 셔츠 사이에 삐져나온 가슴털 좀 보라지. 허헛. 기분 탓인지 주문은 뭔가 많이 한 거 같고, 서버가 돌아가자 나를 제외한 세 여인들은 내 귀엔 제대로 들리지도 않게 같이 숙덕거린다. 그냥 기분이 좋은 거겠지만 너무 그렇게 계속 웃을 일은 또 뭔가요, Ladies.
노란 셔츠의 서버 때문에 주문이 과하게 들어 간 듯. (난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게 홀린 듯이 주문한 음식들은 계속해서 나왔고, 또 계속해서 비워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음식의 맛이 어땠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저 "우왕, 너무 맛있고 분위기도 너무 좋아!"라는 것이 지금까지 남은 기억이지만, 행복한 저녁이라는 것의 본질은 오히려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식사가 거의 끝날 즈음 디저트를 물어보러 예의 그 느끼하게 잘 생긴 서버가 왔다. 보통은 무슨 디저트를 먹느냐고 물어보니, 에스프레소와 술을 먹는단다. ??? 이 밤에 에스프레소를? 술을 디저트로?
"Caffè corretto"라고 하는 디저트. 에스프레소에 "Grappa"라고 하는 높은 도수의 술을 섞어 먹는다고 한다.
먹을 때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찾아보니 이렇게 먹는 것이 저녁 정찬 후에 먹는 이탈리아의 습관적인 디저트라고 한다.
외지에서 온 우리가 불편하지는 않았는지 레스토랑 주인처럼 보이는 후덕한 아저씨가 와서 호탕한 웃음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준다. 그러더니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도 두어 명 더 와서 갑자기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한 번 더 오면 단골 대접이라도 받을 것만 같다.
4명이 배 터지게 먹고 120유로(720유로가 아니다)면 괜찮지 않은가?
밤새 앉아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은 이미 11시가 넘었고, 우린 다시 내일을 위해 쉬어야 된다.
숙소로 가기 위해 차를 타고 조금 움직이다, 마을의 초입에 잠시 섰다. 사람이 만든 빛이 없는 자연의 밤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안전을 위해 켜 둔 자동차 전조등만 등지고 서니 제일 밝은 불빛은 머리 위에 있었다. "우와~! 저 별들 좀 봐!" 모두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하늘 한편을 길게 긋고 지나가는 별똥별에 잠깐 소리도 지른다. 또 그렇게 어둠에 눈이 적응되고 나니, 이제야 하늘 가운데에 크게 흐르는 은하수도 보인다.
낭만적인 저녁... 서울에서의 생활이 언제인지 아득한 듯이 이탈리아의 밤에 파묻히는 것만 같다.
Summary
저녁 식사 예약은 미리 해 두는 편이 좋은데, 숙소에 전화해서 물어보면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불빛이 없는 곳에서는 밤하늘을 보거나, 사진을 찍는 것을 준비해 가면 좋을 것 같다. 실제로 토스카나나 돌로미티에서 밤하늘 사진을 찍는 사진가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