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토스카나 돌로미티 렌트카 여행 - 8/18
오늘도 일찍 눈이 떠졌다. 새벽의 풍경이 어떨까 싶어 잠깐 나가 봤지만, 안개에 싸인 토스카나의 언덕 풍경은 나오지 않았다. 좀 더 이른 시간에 나와야 되나?
역시 부지런한 한국의 여행객들인지 선배 언니들도 일찌감치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나왔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 건지 가볍게 차려진 식당은 우리만을 위해 준비된 곳 같은 느낌마저 들었고, 아직 체 나오지 않은 음식들도 있는 모양이다.
아침 식사의 시작은 역시 풍부한 거품의 카푸치노. 난 이번 여행 동안은 매일 아침 카푸치노를 먹을 거야. 여기에 버터향 가득한 크루아상과 달콤한 파이와 과일들로 아침을 마무리한다. 음식들이 별다를 건 없지만, 이른 아침의 깨끗하고 서늘한 공기에, 붉은 햇빛에 묻어오는 따끈한 카푸치노 향을 맡으며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서울에서 살던 매일매일의 고단함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오늘의 여행지는 시에나. 한때는 피렌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큰 도시 국가였다지만, 피렌체에 밀린 이후로 그 위세가 많이 떨어진 도시라는데,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피렌체에 비해 시에나에 대해서는 뚜렷이 생각나는 것이 없다. 하지만 항상 피렌체와 비교되는 도시라는 점에서 마치 모차르트에 가려진 살리에리에게 연민이 가는 것처럼 시에나에도 유난한 호기심이 생겨난다.
숙소에서 시에나까지는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구글에서 검색한 시에나 가는 길 도로변에 있는 동네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단지 "간단히 점심을 때우자"라는 생각으로 한 불확실성이 있는 애매한 판단이었지만, 여기서 인상적인 토스카나의 맛을 보게 된다.
한국으로 사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은 여러 가지 이탈리아 식재료들을 팔고 있었고, 능숙한 영어로 우리에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던 주인아저씨가 적당히 알맞은 메뉴를 추천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던 야외 테이블과는 달리 실내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조금 있으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동네 주민들로 보이는 젊은 (그러나 족히 결혼은 했을 것처럼 보이는) 남정네들이 한 무리가 들어온다. 그러더니 커다란 테이블을 차지하고는 앉지도 않은 체로 엄청 떠들어 댄다. 역시 이탈리아 남자들은 수다스러운 것인가.
이윽고 나온 음식은 토마토와 치즈 등의 소스가 버무려진 음식들, 그리고 이 가게에서 직접 만든다고 자랑을 늘어놓던 여러 가지 햄 종류들이 나왔다. 가져다준 주인아저씨가 역시 모든 햄들이 뭘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일일이 설명해 줬다. 그렇게 설명이 더해진 음식은 그만큼 맛과 감동이 더해진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들은 라드(돼지기름)와 발효된 고기에 펜넬 시드를 잔뜩 버무린 햄. 라드는 우리의 두려움에 비해 훨씬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나는 게 꼭 버터 같았다. 펜넬 시드가 잔뜩 들어간 햄은 일단 냄새부터 범상치 않아서 우리 일행 중에 나만 겨우 먹을 수 있었는데, 첫맛이 꼭 삭힌 홍어의 풍미 (ㅎㅎㅎ). 씹으면 씹을수록 코를 찌르는 향은 더욱 강해졌고, 펜넬 시드의 향까지 더해져 지금껏 맛본 적 없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시에나에 도착했다. 도시의 입구처럼 보이는 커다란 성곽 앞에 역시 공공 주차장이 있어, 여기에 주차를 해 두고 걸어 올라갔다. 계속 좋았던 날씨가 오늘은 궂어서 비도 조금씩 오는 것이 아쉽다.
처음 와 보는 도시임에도, 모든 길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도록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눈 앞에 나타난 거대한 성당. 이탈리아에서는 남들이랑 같은 걸 그렇게도 질색한다는데, 시에나의 성당을 보니 그 얘기가 실감이 날 정도로 독특한 외형이다. 흐린 날씨에도 성당 꼭대기에 붙은 거대한 금빛 장식판이 번쩍거린다. 성당의 내부는 또 얼마나 화려하고 독특할지 무척 궁금했지만, 입장을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니, 엄두가 안 난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ㅠㅠ
성당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너나할 것 없이 모두들 자연스레 모이게 되는 곳은 부채꼴 광장으로 유명한 캄포 광장이었다. 사진에서만 보던 곳을 실제로 보니 새롭긴 한데... 여기서 뭘 하길래 이렇게 부산스럽고 복잡하지? 광장 주변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알아보니, Palio di Siena라고 하는 유명한 경마 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다. 열정적인 이탈리아의 축제들 중에서도 꽤 유명한 축제인데, 준비하는 것만 보고 가려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언젠가는 축제를 직접 구경해 볼 날이 있겠지...
광장을 나와 아직도 옛 영광이 살아 있는 듯한 거리를 돌아다니며 시에나의 분위기를 즐겼다. 이름 있는 도시답게 우리가 하루 만에 볼 수 있는 곳은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이제 저녁을 먹으러 돌아갈 시간이다. 오늘 저녁은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에 예약이 되어 있다.
아그리투리스모의 정취를 느끼려면 역시 숙소에서 저녁을 먹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번 여행에서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인 아그리투리스모의 저녁 식사라 사뭇 기대가 된다.
여유를 부리며 야외 테이블로 나오니, 해가 멀리 언덕 너머로 지는 중이고, 그 빛이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다른 테이블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정찬에 걸맞게 드레스와 가벼운 정장 차림이었는데, 우리에겐 아직은 익숙하지 않기도, 한편으론 부럽기도 한 모습이다. 다음에 올 때는 저렇게 차려입고 나와 봐야겠다.
Summary
현지의 햄 맛은 우리가 지금껏 먹어온 것들과는 전혀 새로운 맛과 향이었다.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아그리투리스모의 저녁 식사는 강추!
진짜 고급 올리브 오일은 풀향이 나고 매콤한 맛이 난다.
오늘의 드라이빙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