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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Jun 10. 2019

수중 동굴에서 살아남기

다이빙 여행 | 칸쿤-14

Cavern diver 코스에서는 동굴 다이빙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안전 수칙들을 배운다. 버디를 잃어버렸을 때 찾는 방법, 길을 잃어버렸을 때 찾는 방법, 동굴이 무너지거나 시야를 잃었을 때 빠져나오는 방법 등이다. 물론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최우선이겠지만,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 배움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Intro to cave 코스에서는 Cavern보다 더 깊은 동굴을 들어가는 기술을 배우는만큼, 좀 더 심각한 위험 상황에 대한 대비 기술을 배운다. 그래서 추가된 연습이 모든 안전장비를 잃은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대응 방법이다.

ㄷㄷㄷ 그게 뭐야. 그런 곳을 왜 들어가냐고... 하지만 정확히 말해, 그런 곳을 찾아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가다 보니 그렇게 된 상황을 벗어나자는 것이다.

모든 안전장비를 잃어버린 상황이란, 버디 다이버도 잃어버리고,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인 가이드라인도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설상가상으로 라이트가 없거나 진흙이 잔뜩 일어나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상황을 얘기한다.

Eden 세노테를 내려다보며 훈련 설명을 들었다. 이미 이때부터 만만치 않음을 짐작하긴 했지만...


그렇게 듣고 나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도대체 감도 못 잡겠다. Hugo가 방법을 설명해 줬다. 내가 가지고 있는 Spool line(간이 설치용 가이드라인)을 이용해서 주 가이드라인을 찾아가는 것인데, 결론적으로는 눈 대신 손을 써서 길을 찾는 방법이다. 아,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한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 그런 걸 해야 될 줄이야.

동굴의 어느 한 지점에서 Hugo가 내 눈을 가린 후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움직였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뺨과 손등으로 흐르는 물, 그리고 막연히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공허한 어지러움이 전부였다.

그리고 멈췄다. Hugo의 손도 내 몸에서 떨어졌고. 여기서 나는 장님이 되어 생명줄인 가이드라인을 찾아야 한다. 손을 더듬으면서.

먼저 내가 가진 남은 장비로 출발 지점 기준을 잡는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Spool line을 풀어가며 손을 더듬어 조금씩 조금씩 탐색 범위를 넓혀간다. 가이드라인을 찾을 때까지. 어찌 보면 미노타우르스를 해치우고 실을 더듬어 미궁을 빠져나오는 테세우스 같기도 하다. 여기서는 장님 테세우스인 것인가? 심지어 수중.

동굴 다이빙에서는 손의 감각을 위해 장갑을 끼지 않는다. 바닥을 만지면 마치 버터 같은 진흙이 만져진다. 그 사이로는 무라도 갈릴 것 같은 강판 질감의 돌들이 뾰족하게 나와 있는 것이 다 만져진다. 그리고 조금만 움직이면 공기탱크가 벽에 부딪치며 땡그렁땡그렁 소리를 낸다. 손도 잔뜩 긁히고 수트까지도 찢어졌을 것 같은 그런 좁은 공간이다.

끈기 있게 해 보자. 내가 정말 이런 곤경에 처하더라도 살아남아야지. 차근차근... 천천히... 꾸준히... 마음 다잡고...

여기는 아닌가봐. 다른 곳을 탐색해 봐야겠어.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와 방향을 바꾸고 다시... ... 하아... 여기도 아닌가봐...

...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히... 버티자, 버티자... ... 조금만 더 가면 가이드라인이 있을 거야... 난 여기서 살아나갈 거라구. ... ?? 어? ... 이게 뭐야? 이건? 내가 처음 시작점을 표시해 둔 거잖아? 그렇게 열심히 손을 더듬으며 왔는데 어디를 얼마나 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제자리라니!

처음엔 마음을 차분히 하려고 했다. 시간이 좀 흐르자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좀 더 지나니 이젠 짜증이 났다. 이게 뭐하는 짓이람, 이런 동굴 오지 않을 거라구! 그 다음은 화가 났다. 내 얌전한 입에선 금방이라도 욕이 한 사발 나올 기세였고, 당장 눈가리개를 벗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억제해야 했다. 참고 참아 길을 찾다가 내가 출발한 곳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나니 이젠 절망적이 됐다. 나 이제 그만 할래...

사막에서 헤매다가 보면 사실 뱅글뱅글 돌고 있는 거라던가? 영화 혹성탈출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자유의 여신상을 찾았을 때처럼 나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이런 교육을 하다 보면 은근히 강사가 도와주는 일이 많다. 이쯤 헤맸으면 Hugo가 내 손 끝에 line을 쥐어주든지 하지 않을까도 기대했지만, 전혀 그런 낌새도 없었다.

이렇게 계속 못 찾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Spool line을 잡고 바닥을 헤치는 손은 점점 공허해졌다.

그러다 갑자기 뺨에 물의 흐름이 미묘하게 느껴졌다. 역시 Hugo가 날 line이 있는 근처로 데려다 주나보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존재 여부가 의심스럽던 guide line이 내 손에 걸렸다. "이렇게 어거지로 시험을 통과하다니!"

훈련이 끝나 다행스럽다거나, 이제 살아 나간다는 기쁨도 있어야겠지만, 내 의식을 지배하는 감정은 분한 마음이았다. 다이빙 좀 한다고 우쭐대던 내가 이 정도밖에 아닌 것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노마 강사님 얘기로는 Hugo도, 노마 강사님도 날 도와준 일은 없었단다.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침울한 기분에는 변함이 없다.

이렇게 동굴 속에서 헤매고 나오니 다이빙 시간이 90분이 넘어갔다. 손은 작은 상처들로 가득하고, 보이지 않는 자존심엔 더 큰 상처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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