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토스카나 돌로미티 렌트카 여행 - 10/18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 시르미오네는 이제야 조금 알려지는 중인 곳인데, 우리도 일정 문제로 겉핥기만 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음에 또 오겠지 뭐...
이제 산이 주무대인 돌로미티로 갈 시간이다. 시르미오네를 나온 우리는 곧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를 한 바퀴 하고도 더 돌아 동쪽을 향하던 차는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톨게이트를 지나고 많은 컨테이너 운반차들을 지나치며 가다 보니 마치 우리에게 다가오듯 거대한 산들의 장막이 우리 눈앞을 압도했다. 우리 일행 모두가 입을 맞춰 "우와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로 돌로미티는 토스카나와는 전혀 다른 인상으로 우리와 첫 만남을 했다.
양쪽으로는 높은 산들에 우거진 숲과 암석들이 솟아 있는 것만으로도 장관인데, 둔덕에는 아기자기한 마을들이 있고, 또 그 마을에는 꼭 큰 교회나 성당의 첨탑들이 있어서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 준다. 그 사이의 골짜기에 쭉 뻗은 도로를 달리는 것이니, 운전의 피로 따위는 모르겠고 그저 이 길의 끝에 멀리 보이는 찬란한 햇빛 비치는 곳에 천상의 파라다이스가 펼쳐져 있지는 않을까 하는 비현실적인 기대까지 하게 된다.
궂은 날씨가 좀 아쉬웠지만, 원래 산악 지형이라 날씨가 변화무쌍하다고 한다. 멀리쯤 보이던 거대한 비구름이 언제쯤이나 우리 가는 길을 지나갈까 괜한 기대를 하기도 하고. 가끔씩 비치는 작지만 쨍한 햇빛에 교회가 빛나는 holy한 분위기도 보고. 또 그다음에는 작고 희미한 무지개가 보이기도 했다가. 절벽에는 가느다랗지만 길게 내려오는 폭포를 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하늘 끝에서 도로 바로 위까지 내려 뻗은 거대한 비구름에서 쏟아지는 폭우의 기둥을 뚫고 지나가기도 한다.
마치 영화 속에서 배를 타고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의 여정을 압축시켜 둔 장면처럼 비슷한 것 같은 길에도 수많은 장면들이 우리를 돌로미티의 세계로 최면을 걸어 끌어당기는 듯했다.
난생 처음 보는 풍경에 입을 헤벌레 하고 운전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늦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카레자 호수 (Lago di Carezza)이다. 어디 산 위에 있는 호수라는데, 아무리 해가 늦게 진다고 해도 산속이라면 더 빨리 어두워질 거고, 풍경을 볼 수 있을지도, 어두운 산길을 오르내리는 것도 걱정이 된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범상치 않은 긴 오르막 터널을 지났다. 산길이 시작되나 보다. 길은 왕복 2차로라 앞지르지도, 양보하지도 못하는데 구불구불하기는 엄청 구불구불한데, 우리 차 옆은 까마득한 절벽이다. 비도 간간히 오고 있어서 더 운전을 조심해야 하는데 하늘은 어두워서 마음은 또 급하다.
차로가 좁아 운전하기 까다롭네라고 생각할 때 맞은편 언덕 뒤편에서 커다란 트럭이 나타나서는 우리 앞으로 돌진해 오는 게 아닌가! 아니, 왜 굳이 그렇게 위협적으로 몰아붙이는 건데?! 맞은편에 또 커다란 트럭이 오지는 않는지 신경이 쓰이던 차에 룸미러를 보니 우리 차 뒤에 차 한 대가 붙었다. 나는 분명 제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지만 뒤에 붙은 차는 앞질러 가려 안달인 듯했고, 길이 구불구불한데 계속 맞은편에서는 차고 오고 있으니 맘대로 앞질러 가지는 못하는 모양인데. 이럴 땐 오히려 내가 맘이 불편한 거다. 그러다 어쩌다 좀 뻗은 길이 나오면 뒤차는 슝~! 하고 앞질러 갔다. 그래, 어떻게든 내 뒤에 차가 안 붙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동네 속도 제한을 어기고 싶지 않다구. (아니, 그런데 왜 이런 구불구불한 산길의 속도 제한이 시속 90km인 건데?!)
우리의 목적지가 가까워진 것 같다. 아직 하늘엔 빛이 있다. 도착했을 때 주차장은 들어갈 수 있었지만 옆에 있는 건물은 모두 문을 닫았다.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화장실도 못 들어가네? ㅠㅠ
더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구경을 하고 오려고 서둘렀다. 공기가 싸늘한데 비도 조금 오는 것 같아 겉옷과 우산도 챙겼다. 호수는 주차장 바로 옆이라 주차장 맞은편의 내리막 길만 내려가면 바로 호수였다.
작은 호수다.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호수였다. 하지만 이 풍경은 도대체 어디일까? 제일 먼저 본 것은 물빛. 잔잔한 물 아래로 청록색 옥빛이 빛나고 있었고, 바닥에 깔린 돌과 나무들이 보인다. 그리고 숲. 가지런히 뻗은 침엽수들이 적막의 소리를 내는 듯이 서 있다. 그 위로 비치는 햇빛. 다행히 해는 넘어가지 않았구나. 그 뒤로 우뚝 버티고 있는 바위의 봉우리들. 그 위로는 영험한 기운을 뿜는 구름들. 실제의 풍경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갈하다고 할까.
오히려 늦게 온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들이 적어서 호수 주변은 온통 적막하고 숲의 나뭇잎들이 스치는 소리라도 들릴 것 같다. 그리고 어두워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하늘도 아직 빛이 남아 있는데, 산 아래로 내려가기 직전의 해가 호수 뒤의 바위산을 비추는 광경 또한 장엄하다.
그렇게 한동안을 변화무쌍하게 색을 바꾸는 호수의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면서 있었다. 그러다가 호수 너머의 저 숲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어? 왠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질퍽질퍽하고 바위에 막혀있기도 하지만, 호수 주변으로 길이 있기는 했다. 그 길을 따라가니 맞은편에서 보던 그 숲에 들어왔다.
하아... 여긴 또 무언가.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호수 너머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벤치가 있어서 여기에 앉아 커피라도 한 잔 하면 둘도 없을 운치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고요의 세상에 있다가, 그래도 해는 넘어 어두워져, 더 늦기 전에 산을 내려가 오늘의 숙소에 가야 했다.
어둡고 젖은 산길을 내려가는 것은 스릴이 있다기보다는 바짝 긴장이 되었다. 다행히 뒤따라 오는 차가 없어서 덜 불편한 마음으로 최대한 천천히 움직였다. 다시 고속도로에 접어들었을 때는 온통 깜깜해져 있었다. 마을의 불빛이 좀 보이는데, 오는 동안의 풍경들이 생각나, 여기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을 뽐내는 곳일까 궁금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Chiusa(키우사). 돌로미티 아래의 휴양 마을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로는 차가 올라갈 수 없을 것처럼 보여 주차를 어찌해야 할지 신경이 쓰였지만,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번거롭지만 숙소에 물어봤다. 거리가 좀 되지만 숙소에서 전용으로 쓰는 실내 주차장이 있어, 짐은 여성 멤버들이 챙겨가고 나는 주차를 하고 왔다. 깜깜한 밤길이지만 관광지다 보니 무섭기보다는 어릴 적 추억 속에서나 와 본 듯한 시골길의 정취가 느껴지는 마을이다.
우리가 묵을 곳은 시간이 늦었음에도 아직 식당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분위기를 좀 느껴볼까 싶었지만, 피곤한 몸에 쉬고 싶은 여성 멤버들은 음식을 방으로 가져와 먹자고 한다. 방은 작고 오래된 스타일이지만 먼 길 오느라 지친 우리에겐 충분히 아늑한 곳이었다.
다리 고정이 안 되는 이상한 테이블 위에서 아무렇게나 펼친 이탈리아의 피자는 조금은 짰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이탈리아의 피자맛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먹다 보니 금방 사라져 버렸고.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끼리 얘기를 하다 보니... 돌로미티 초입의 장관과 카레자 호수의 신비로운 고요함을 만난 이후로 토스카나의 기분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분명 오늘 아침까지도 돌로미티의 여유로운 풍요를 동경했음에도, 지금은 아득히 먼 옛일처럼 느껴진다. 이 기분은 우리 네 사람 모두 동의했다. 그렇게 돌로미티는 단 하루 만에 우리의 여행을 지배해 버렸다.
Summary
돌로미티 멋지다.
돌로미티 멋지다.
돌로미티 멋지다.
이탈리아의 왕복 2차선 산길 운전 정말 스트레스 받는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굳이 이탈리아라서 그런 건 아닐 거야...)
카레자 호수의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신비롭다. 늦은 시간이라서 더 멋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드라이빙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