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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음식, 소음, 그리고 술로 꽉꽉 찬 공간

스페인 미식 여행 - 5 | Tapas24, El Xampanyet

by 탱강사

오늘 아침도 조식 식당 아주머니가 불을 켜 주시고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 전세 낸 듯한 분위기의 식당을 느끼고 있자니 곧 버터의 고소한 냄새가 빈 곳을 채운다. 갓 나온 크루아상이 따끈한 기운을 풍기고 있다. 언제부턴가 난 아침의 크루아상으로 호텔에 대한 인상을 기억하게 됐는데, 이곳은 최상위권 수준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시작하는 가우디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아직 가게들이 문을 열지도 않은 이른 아침부터 이 많은 여행객들이 모여 있다니. 우리나라 사람들만의 부지런한 습성 때문인 건지 의문이 들 지경. 처음 만난 가이드의 소개말부터 오늘 투어는 꽉꽉 채워져 있어, 부지런히 다녀야 할 거란다.


바르셀로나는 이미 여행 왔던 곳이라 심적으로는 여유가 있었지만, 정해진 투어 일정을 쫓아가자니 발을 바삐 움직여야 했다. 오전 동안은 구도심(라발 지구), 구엘 공원과 까사 바뜨요를 돌아다녔다. 까사 바뜨요 앞에서 오전 일정을 마치고 각자 알아서 점심을 먹고 모이기로 했다.


오전의 구엘 공원은 관광객들로 가득
입장 마감이 되는 늦은 시간이면 이런 온전한 공원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예전의 사진)


까사 바뜨요가 있는 곳은 바르셀로나의 샹젤리제라고 불리는 그라시아(Gràcia) 거리에 있는데, 알고 보면 이 주변에는 맛집 또는 고급 음식점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어제 갔던 미슐랭 3 스타 Lasarte도 바로 이 근처에 있다.) 하지만, 잘 모르거나, 시간이 없거나, 큰돈을 쓰기가 부담스러운 너무나 일반적인 조건에서 벗어날 수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숙하고 변수가 적은 선택을 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까사 바뜨요 건너편에 맥도널드가 있다. 이민영 가이드가 우리를 끌고 다녀주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도 저 사람들처럼 맥도널드로 향했겠지.


우리에게 주어진 1시간은 이 동네 바르셀로나에서 밥을 먹는 시간으론 턱없이 부족한 시간일 테지. 맘이 급한 이민영 가이드는 내달렸고, 우리는 몸도 마음도 그저 끌려가듯이 뒤따라 뛰어야 했다. 그렇게 간 곳은 Tapas24.


Tapas24는 그 유명한 레스토랑인 엘불리 출신의 셰프 Carles Abellan이 연 식당인데, 우리가 갔던 시점 이전에 미슐랭 1 스타 경력이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은 배만 채우고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그 짧은 시간에 이 식당의 수많은 메뉴를 한꺼번에 입 속에 넣어야 하는 극단적인 미식 트레이닝을 하게 되었다.


미식 여행을 가기 위해서 머릿수가 많은 건 필수일 것 같다. 이것저것 많은 메뉴를 시켜서 맛을 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지. 적은 양의 음식들을 나오는 족족 입 안으로 던져 넣고 나온 것 치고는 가격은 꽤 높은 편이지만, 그 안에 황홀한 맛들이 농축되어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한 보상이 된다.





오후의 투어는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는 "채석장(La Pedrera)"이라고 불린다는 까사 밀라, 바르셀로나의 상징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돌아본다.


이 복잡한 걸 만들겠다고 여러 사람 힘들게 만들었다는 까사 밀라 (Casa Mila)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지금도 계속 건축 중이라, 방문 시기에 따라 보는 모습이 다를 수 있는데,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성당 내부의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의 환상은 절반밖에 있지 않았다고 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의 전시관까지 열심히 보다 보니, 입장 마감 시간까지도 성당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 많던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서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던 곳이 장엄한 기운으로 가득한 성당 안을 볼 수 있었다.


성당의 뒤쪽(?) 수난의 파사드. 건축가 수비라치가 가우디의 스케치를 재해석해서 만들었지만 공감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 저녁도 만들어진 계획은 없다. 모두들 같이 바르셀로네타 해변을 정처 없이 거닐다가, 이번에도 이민영 가이드의 정보 검색으로 즉흥적으로 찾은 식당을 갔다. 그런데, 분명 괜찮은 평의 식당이었는데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뭔가 이상한 걸? 이민영 가이드가 식당으로 가서 상황을 살펴보더니, 우리에겐 문화 충격인 대답을 듣고 왔다.


"7시 반인데 저녁 먹기엔 이른 시간이 아니냐?", "9시 반이면 모든 테이블에 예약이 다 차 있다. 2시간 만에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거냐?"


우리는 모두 놀라운지, 어이가 없는지, 아니면 부러운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식당을 들어갔다. 2시간 만에 저녁 먹고 다른 곳으로 갈 테니, 당신네가 지금 만들어 줄 수 있는 최고의 저녁을 먹고 싶다고 했다.


즉흥적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다행히 모든 음식들이 훌륭했고, 함께 곁들인 까바도 음식과 분위기와 딱 맞았다.


저녁 식당으로 찍은 La Mar Salada




저녁 식사를 마치고 또다시 해변의 방황. 까딸루냐 독립 시위대들을 헤치고 다니며, 골목골목마다 호기심이 생기는 음식점들을 들르기엔 이미 불러버린 배를 원망하며 숙소로 발길을 옮겼다.


그러다 마주친 엘 삼파녜(El Xampanyet)! 이민영 가이드가 노래를 노래를 부르던 그 타파스 바다. 이민영 가이드는 탄성을 지르며 바로 달려갔지만, 우리 나머지 일행은 모두들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저길 어떻게 들어간다는 거지?'


어제 아침에 봤던 El Xampanyet. 이 공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마치 퇴근길의 지하철 2호선 역삼역에서 강남역 방향 열차를 타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문을 열고 발을 들여놓을 공간이나 있을까 눈빛으로 서로에게 얘기하던 우리에게, 이민영 가이드는 이미 그 작은 타파스 바 중간에서 왜 안 들어오냐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것은 거의 팀장님이 같이 갈 사람만 가자는 2차 술자리의 느낌인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좁은 틈을 헤치고 들어갔고, 서양인들 사이에 거의 유일한 동양인들이었다. 오히려 그 때문인지 가게 직원들은 없던 자리까지 꾸역꾸역 만들어 우리를 앉혀줬다.


완전히 압도적이었다. 이 분위기. 이 좁은 공간에 빈틈없이 메운 사람들이나, 이 엄청난 소음. 혼이 쏙 빠진다는 게 이런 것이겠구나.



배가 썩 고프지는 않았지만, 맛을 보고 싶은 욕구, 이 분위기를 허투루 보내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또 이것저것 시켰다. 생선 비린내를 썩 좋아하지 않아 지금껏 시도해 보지 않았던 앤초비를 한 입 베어 먹었다. 호오! 이것, 살짝 나는 비린내가 내가 싫어하던 것과는 달리 어딘가 입맛을 돋운다. 그리고 뒤 이은 고소한 맛이 있군!


앤초비의 선명한 잔 가시가 오히려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먹고 마시고 큰 소리로 떠들지 않으면 다른 주객들의 소음에 내가 묻혀 버릴 것 같은 위압감이 가득한 곳이다. 이민영 가이드가 그렇게 간절한 눈빛과 목소리로 우리를 부르지 않았더라면, "그냥 숙소로 돌아갈까요?"라고 고객들을 헤아리는 친절함보다 본인의 호기심이 더 크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엄청난 곳을 경험하지 못했겠지. 역시, 나에겐 누군가 땡겨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가이드 이민영님 소개 : https://www.facebook.com/minyoung.lee.5623293
미식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기 시작한 여행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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