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탱강사 Feb 03. 2020

그 섬에 가기 위해 필요한 시간, 78시간

다이빙 여행 | 코코스 아일랜드 - 3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리브어보드 직원들의 소개를 시작으로, 여러 가지 준비 활동들이 이어졌다.


부두에서부터 하얀색 제복을 입고 우리의 짐을 옮겨줬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인사를 했다. 이들은 요리사, 주방 보조, 항해사, 다이브마스터 등의 각자의 역할이 있지만, 짐 옮기는 일처럼 세세한 일들 역시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작은 공간에서의 생활이니만큼 각자가 맡아야 할 일의 범위도 커지는 셈이다.


일주일 동안 우리가 끊임없이 찾게 될 직원들


이 배의 선장은 알베르토. 그냥 "베-또"라고 불러 달란다. 베또는 처음부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반겨줬는데, 배 위에서도, 다이빙을 하는 동안에도, 쉬는 동안에도 이런저런 짓궂은 장난을 치면서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한 재밌는 분이었다. 특히 다이빙하는 동안 항상 멋진 장면을 포착해 주는 관록에 모두들 엄지척에 동의했다.


"베-또" 선장. 수염 기른 개구쟁이


다음에 진행한 것이 안전 훈련. 배를 타면 꼭 숙지해야 하는 내용이다. 비상벨이 울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명조끼의 위치와 사용법, 구명조끼를 찾지 못했을 때의 행동 요령, 비상구의 위치 등등 정말정말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문제가 있을 때를 대비해서 소홀히 듣지 않아야 한다.


구명조끼도 한 번씩 입어봐야 실전에 당황하지 않겠지.


그다음은 각자의 다이빙 레벨과 경력, 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했다. 여기서 놀란 것이, 22명의 다이버들의 다이빙 횟수를 보니, 나의 다이빙 횟수가 밑에서 두 번째다. 


와우~ 모두들 엄청 많은 경험들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공식 레벨로는 강사인 내가 더 높지만, 실제 다이빙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겸손 모드로 연륜의 선배님들의 다이빙을 관찰해 보기로 했다. (결론적으로는 공식 레벨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았고, 그것만으로도 다이빙 실력을 가늠하기엔 충분치 않음을 알았다.)


나는 일천한 경력으로 주눅 들었지만... 횟수가 실력을 보장하는 건 아니더라는...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이고 나서는, 배 위에서의 첫 식사,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우리가 나가는 방향이 파도를 거슬러 가는 거라 유난히 배의 요동이 심하다. 그래서 다들 입맛이 없다. 그 입맛 없는 와중에 음식도 샐러드 같은 것들이 나오는데, 나이가 있으신 분들의 식욕을 돋우기엔 무리다.


입맛도 없는데 샐러드만 잔뜩 나오니 모두들 기운이 빠져 버렸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잠깐 쉬겠다고 침대에 누웠더니 내리 2시간을 자 버렸다. 배는 엔진 소리에서부터 속도를 내고 있음이 느껴졌고, 파도에 따라 배가 아래 위로 내리 치는 정도도 심해졌다. 남자 4명이 함께 머무는 침실은 뱃머리에 있는 방이라, 벽 너머로 바로 물살의 소리가 느껴지는 것이, 벽에서 물이 튀어나올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빵! 빵!" 소리를 내며 뱃머리가 높이 들렸다가 내려치는데, 몸이 살짝 뜨기까지 한다.


원래도 멀미가 심한 일행은 그나마 덜 흔들리는 곳을 찾아 크지 않은 배에서 이리저리 다녔지만, 조금 나을 것 같은 곳은 이미 외국인 여행객들이 선점해 버렸다.




영화에서나 보던 칠흑 같은 밤바다를 달리는 배가 이런 것이었겠구나. 잠도 잘 오지 않고 시끄러운 엔진 소리와 해머를 내리치는 듯한 뱃머리에 시달리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에도 배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그나마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기분 탓인지 배가 밤처럼 흔들리진 않는 것 같다.


지는 해를 찍은 건지 뜨는 해를 찍은 건지 모르겠다.
배는 잘도 간다... 언제까지 가나...


다시 식당에 모두 모였다. 이번에는 코코스 섬과 다이빙에 대한 브리핑 시간이다.


코코스 섬이 코스타리카의 국립공원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매우 보호받고 있는 지역이라, 이에 대한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단다.


섬 주위를 도는 다이빙에 대한 특징들도 얘기해 줬다. 모든 다이빙에는 조류가 있을 것이며, 또한 모든 다이빙에서 모든 종류의 상어를 보게 될 것이라고 한다. 상어들 중에는 비교적 공격적인 종류도 있어, 그들을 만났을 때는 절대 따라가지 말고 천천히 움직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되지 않았지...)


만일을 대비해서 GPS를 이용한 위치 발신기를 가지고 다이빙하게 된다.




다이빙에 대한 브리핑이 끝나고, 또다시 지루함의 시간이 이어졌다. 선베드에 기대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최고수. 한쪽 팔을 이마에 대고 눈을 감고 있다가 괜찮으냐는 물음에 "으으응..."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제일 측은하다.


깜깜한 밤, 잘 때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배의 엔진 소리가 순해졌다. 모두들 직감했다.


"오! 다 왔나 봐!"


다들 갑판 위로 나왔다. 배는 속도를 줄이고 있었고, 엔진 소리도, 물결 소리도 잦아들었다. 하지만 너무 깜깜해서 바깥의 모습은 알 수 없었다.


우리나라 스쿠버다이빙의 최고 경험자께서 말씀하시길, 지금까지 와 본 다이브 사이트 중에 제일 오래 걸리는 곳인 것 같다고 한다. 집에서 나온 지 78시간 만에 도착했다.


드디어 도착했다는 것과 더 이상 흔들림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에 부식으로 싸온 골뱅이 무침으로 맥주 파티를 했다. 입맛이 돌아오는 것도 금방.


매거진의 이전글 멀고 먼 미지의 세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