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 여행"이라고 하면, 항상 다이빙을 우선으로 하여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는 물론이고, "시즌"이라고 하는 시기와 달의 모양까지도 봐 가며 "물 때"를 맞추기도 한다. 당연히 챙겨가는 짐들도 다이빙 장비들이 주로 공간을 차지한다.
다이빙 여행이라고 해서 굳이 그렇게만 갈 건 아니지만, 내가 유난하거나, 아니면 어쩌다 보니 장소도, 시간도 다이빙 외에는 잘 맞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다이빙을 하고 싶어서 여행을 간다면 굳이 다른 것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아까운 것이고, 사실 Hot한 다이빙 사이트라고 하면 다이빙 말고는 다른 것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다이빙을 주 목적으로 가지 않고 그냥 여행을 가서는, 간 김에 다이빙을 한 적이 딱 한 번 있다. 그때의 여행지는 인도네시아 발리였다.
발리는 인도네시아의 동서로 길게 뻗은 섬들 중, 가운데 쯤의 남반구에 있는 섬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좋고 잘 알려진 섬이지만, 그런 느낌 상의 거리에 비해 실제로는 거리가 좀 있어서 비행시간도 5시간이 넘고, 항공권 가격도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일단 섬에 도착하면 대체로 싼 물가에다가, 지역과 고급스러움의 차이에 따라 숙박비의 편차도 매우 커서, 잘만 선택하면 엄청 적은 비용으로도 편히 머무를 수 있는 곳이다. 섬의 크기도 제주도의 3배에 달해서 갈 곳도 많고, 서핑의 명소도 많아서 서핑을 배울 요량으로 몇 주, 몇 달씩 몸만 와서 머무르는 여행자들도 많다.
나와 아내 Sophy는 평소와는 좀 다른 여행을 하자는 생각으로, 별다른 것 찾아서 하지 않고, 욕심 없이 그저 숙소와 주변에서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는 휴양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의 평소 여행 스타일은 위에서 얘기한 다이빙 위주의 여행이거나, 역사와 문화에 초점을 맞춘 탐방 여행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획에 맞춰 열심히 몸을 움직여야 하는 빡센 여행이 많았다.
그래도 본전 생각(?)이 없지는 않아서, 하나 준비한 것은 발리에서의 다이빙이다. 다이버들에게 발리가 매력적인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몰라몰라(Mola-mola), 즉 개복치이다. (돌연사!?)
나 찾았어?
다른 것에는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여러 날도 아니고 딱 하루만 다이빙하기로 했다. 장비도 마스크와 (특히 나는 도수 렌즈를 사용하기 때문에) 수중 촬영용 스냅 카메라와 고프로만 챙겼다.
여행 전 예약해 둔 다이브 숍에서 다이빙 당일 아침에 우리 숙소까지 픽업을 와 주었다. 미니 버스를 타고 관광지를 벗어나 시골 풍경을 구경하며 40분 정도를 가니, 어딘가 뒷골목 같은 한적한 곳에 다이브 숍이 나타났다. 여기서 필요한 서류들을 작성하고, 마스크를 제외한 모든 필요한 장비들을 챙겼다. 그런데 내 사이즈의 수트가 많이 낡아 보였다. 이걸로 여기 물이 춥지 않겠냐고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추울 것 같으면 수트를 한 겹 더 입으렴 하면서 튜닉 (반팔 반바지 수트)을 하나 더 줬다. 이것도 시원찮아 보이긴 마찬가지였지만, 없는 것 보다야 낫겠지. 이때는 뭐, 괜찮겠지 생각했다.
다시 미니 버스를 타고 몇 분 안 가서 우리가 다이빙을 시작할 Sanur 비치에 도착했다.
해변은, 정말 시골스러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별달리 할 것도, 구경할 것도 없는 한산한 분위기에, 우리처럼 다이빙을 하러 온 관광객들이 간간히 보이는 정도다.
별달리 볼 게 없던 Sanur 비치. 다이버들을 싣고 오는 차들이 대부분.
해안에는 금방 출발할 보트들이 늘어서 있다.
우리도 잠시 머물다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배를 타고 나섰다.
그렇게 또 배는 한 30분 정도를 갔나? 돌 섬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먼저 온 배들이 정박한 곳에 우리 배도 멈췄다.
대여한 장비들을 입고 Sophy와 나 둘만 다이빙을 하자니, 아무것도 모르던 초보 다이버 시절로 돌아간 기분도 들었다. (장비 차림을 보면 초보 시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더라.)
드디어 발리의 바다로 입수!
물이 꽤 맑았고, 들어가자마자 복잡해 보이는 산호 바닥에 일렁일렁거리면서 지나가는 워베공(Wobbegong) 상어를 만났다. 워베공 상어는 인도네시아 부근의 바다에서만 볼 수 있고, 입 언저리에 수염이 잔뜩 나 있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어와는 전혀 다른 생김새를 가진 상어다. 언젠가 꼭 보고 싶었던 녀석인데 드디어 보게 된 건 기뻤지만, 이렇게 멀리서 보면 수염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안타깝다.
Wobbegong Shark. 위장색이라고 해야 되나. 움직이면 잘 보이니, 글 마지막에 있는 동영상에서 확인!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몰라몰라! 다이빙하기 전에 본 페이스북에서는 예전에 같이 다이빙했던 강사님이 어제 바로 여기서 찍었다는 몰라몰라 사진을 자랑하고 있었고, 우리 가이드도 어제 여기서 몰라몰라 4마리를 봤다니, 충분히 기대해 볼만도 하겠지?
저 앞에서 우리를 향해 오는 다른 팀의 다이버가 저쪽에 몰라몰라가 있다는 손짓을 해 준다. 역시! 있었어!
우리는 너무 쉽게 흥분해 버렸다. 그리고, 다이버가 가리키는 곳에 몰라몰라가 나타났다! 뭐야, 이렇게 금방 보는 거였어?
먼발치에서 보이던 몰라몰라는 어딘가를 가고 있었는데, 우스꽝스럽게 아래위 지느러미를 펄럭거리면서도, 우리의 상상 속에서 둥둥 떠다니던 것과는 다르게 휘리릭~ 하고 사라져 버렸다. 으잉? 저 생기다 만 녀석이 원래는 저렇게 빠른 거였어?
첫 다이빙은 몰라몰라 (있지도 않은 것 같은) 꼬리만 잠깐 보고, 생각보다 빨랐다는 것에 놀란 것 까지였다. 아무튼, 여기서 볼 수는 있다는 얘기니까. 좀 더 기대를 가져보겠어.
그런데 문제가 있다. 좀... 춥다. 첫 다이빙의 최저 수온이 무려 19도였다. 19도면 동해 바다 수준의 수온이다. 그런 곳을, 두 겹이라고는 해도 신축성도 없어서 몸속으로 물이 숭숭 들어오는 낡고 헤진 수트를 입었더니 보온이 전혀 안된다. 그렇게 올라왔더니 바깥도 적도 답지 않게 따뜻하지가 않다. 바람도 불어서 추운 몸을 다시 얼리는 듯했다.
더 추워진 몸으로 두 번째 다이빙을 들어갔더니 머리가 하얘졌다. 몸이 달달달 떨려서 뭐 눈에 제대로 들어오는 게 없다. 심지어 시야도 나빠져서 다이빙을 그만하고 그냥 올라가서 난로라도 끌어안고 싶을 지경이 되었다.
뿌연 물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고, 저 멀리 보이는 Cut-off (절벽 같은 곳) 너머에는 모래 바닥과 끝없는 검은 바다가 그라데이션을 만들고 있다. "이이이이이이거거거거거건건건건 끄끄끄끄끄끝끝끝끝이이이이이인ㄴㄴㄴㄴ데데데데데데" (이가 덜덜덜 떨렸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무언가 희미~하게 지느러미 긴 붕어빵 같은 그림자가 보였다. 저거다, 저거! 몰라몰라!
처음에 봤던 녀석처럼 어딘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녀석의 맹한 눈과 삐죽 내밀고 있는 귀여운 주둥이까지 보일 정도로 가까이 갔다. 주변의 작은 물고기들은 녀석의 뺨을 콕콕 찌르고 있었다. 아하! 여긴 클리닝 스테이션이구나. (큰 물고기들이 작은 물고기들에게 기생충 청소를 받는 곳)
좀 더 가까이 다가갔더니! 오, 이런... 뺨에 뭔가 꼬물거리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이 놀랍고 흥분된 기분이 죽을 것 같아 더 이상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그렇게 멀쩡히 가만있는 녀석을 한 바퀴 쭈욱 둘러보니, 추운 것도 꽤 견딜만했다.
드디어 만난 몰라몰라! Schooling Bannerfish들이 기생충 청소를 해 주고 있다.
사람 크기와 비교해 보면 원근감 때문이라고 해도 상당한 크기
뭐 이렇게 생긴 물고기가 다 있나 싶다.
나도 너랑 마주 보면서 투샷을 찍어보고 싶었다구.
보고 싶은 건 충분히 본 것 같군! 그런데 너무 추운 나머지 점심도 거의 먹지를 못하고, 따뜻한 햇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로 계속 오들오들 떨었다. 세 번째 다이빙을 할까 말까 고민까지도 했는데, 좀 덜 추운 얕은 물에서만 가볍게 돌기로 하고 세 번째 다이빙을 했다.
하지만 역시 여전히 춥군. 그래도 그동안 본 적 없던 Cowfish나 니모(흰동가리)의 알도 보고 하니 크게 나쁘진 않았다. (그래 놓고 물속에 70분을 있었네)
그래도 만타가오리도 봤다.
니모(흰동가리)의 알. 자세히 보면 알마다 눈이 한쌍씩 땡글땡글 보인다. 항상 주변엔 아빠 니모가 있으니 조심.
머리에 뿔이 달린 Cowfish. 조막만 한 게 뎅글뎅글거리며 다녀서 꽤 귀엽다.
갯민숭 달팽이들. 색깔도 예쁘고 가만히 있으니 사진 찍기도 쉽지.
꽃처럼 (또는 샤워타월처럼) 생긴 이것은 갯민숭달팽이의 알이다.
산호에 붙은 랍스터. 자~알 봐야 보이는 녀석들이다.
휴양 여행을 와서 하루쯤 다이빙을 하는 즐거움이 나쁘지 않구나. 그런데 그 즐거움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게 뭔지를 정말 너무너무 절실히 깨달은 다이빙이었다. 이날부터 다른 초보 다이버가 어떤 장비를 먼저 살까 물어보면 꼭 수트부터 사라고 조언을 해 주게 되었다.
개복치는 우리나라의 울산, 포항 앞바다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거 하나 보겠다고 여기서 다이빙을 하는 것은 어쩐지 무리일 것 같다.
울산, 포항의 시장에 가면 음식으로 개복치를 팔기도 한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은 "개복치"라는 것도 생소하겠지만, 이게 정말 내가 알고 있던 그 개복치가 맞는 건지 한 열두 번을 물어볼지도 모를 일이다. 시장에서 파는 개복치는 이미 손질해서 살코기만 내놓는데, 마치 청포묵처럼 생겼다. 아마 이게 뭐라고 얘기해 주지 않으면 '이 청포묵은 식감이 좀 부드럽네'라고만 생각할 정도이다. 게다가 아무런 맛도 없으니, 나는 아직도 내가 먹었던 그것이 개복치가 맞는지 의심을 지우지 못할 지경이다. 그런 걸 단지 우리 할머니 말씀대로 "회는 초장 맛으로 먹는 거지."라면서 "별미"라고 얘기하면 경상도스럽다고 얘기해도 되는 걸까?
다 자란 개복치는 크기도 큰 데다 피부도 워낙 두꺼워서 천적이 없다고 한다. 천적이래 봐야 아무거나 일단 물어뜯고 보는 뱀상어(Tiger shark) 정도? 오물거리는 입으로 해파리를 주로 먹고 사는데, 요즘은 하얀 비닐봉지를 해파리인 줄 알고 삼켰다가 질식해서 죽는 일이 많다고 하니, 어디에서나 결국 인간이 몹쓸 존재라는 자괴감이 든다. 시장에 파는 개복치는 그물에 걸려 죽은 것을 버리기 아까워 먹다 보니 별미라는 지위가 생겼는데, 해체하기도 무지하게 힘들어 점점 별미의 지위가 더 높아질 것 같다.
그런 개복치도 어릴 때는 너무 작아서 생존율이 무지하게 낮은데, 한 번에 3억 개의 알을 낳는 물량 공세로 종족 보존을 한다.
어느 시절의 스마트폰 게임에서 개복치가 너무 예민한 나머지 뭐만 했다 하면 놀라서 "돌연사!"해 버린다고 알려져 있는데, 예민한 것은 맞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그래도 예민하긴 해서, 수족관에 키우기가 쉽지가 않다고 한다. 제주도의 아쿠아플라넷에서도 처음 만들 때는 개복치가 있었지만 키우기가 너무 어려워 없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