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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Jun 07. 2017

다이빙의 여운을 로그북으로

스쿠버다이빙-22 | 시키지 않아도 잘 써요. | 2010년 7월

이제는 그래도 중견 다이버가 된 것이 아닐까?라는 지금 생각하면 택도 없는 자만심을 가졌던 것인지,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그야말로, 근본 없는 다이빙을 해 왔다는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멀고도 언제 다시 가 볼 기약도 없는 꼬따오의 다이브 숍에서, 매일매일 바뀌는 수많은 스쿠버다이빙 교육생 중에 하나로 다이빙을 배웠을 뿐이고, 그 이후로 다른 어떤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바른길(?)로의 인도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의 다이빙 여행에서는 Angela 강사님의 도움을 받으며 다녀 보니, 나의 근본 없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로그북. 로그북이란 마치 다이빙 일기처럼 매 다이빙에 대해서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날짜, 시간, 바다 상태, 장비 상태, 바다에 들어가서 뭘 봤는지, 인상적이었던 것이 뭐가 있었는지 등을 쓰는 것이다. 지금껏 내가 써 왔던 로그북이래 봐야 그나마 빼놓지 않고 써 둔 것만 해도 다행이라 할 정도로 날짜, 시간, 장소만 있었지 뭘 했는지 도통 써 둔 것이 없다. 가끔씩은 처음 보는 수중생물이라고 써 두기도 했고, 방문했던 리조트와 다이브 숍 스탬프는 꼬박꼬박 받아뒀으니 이것만이라도 게으른 듯 농땡이 치지만은 않은 과거의 나에게 감사해야 할 노릇인가.


그래도 써 놔서 고마울 지경인 나의 애송이 시절의 성의 없는 로그북. 빨간색 "PAID" 스탬프는 또 뭐람?


Angela 강사님과 다이빙을 함께 갔을 때는 가끔씩 저녁 식사 시간에 앞서 본인의 로그북을 또박또박 열심히 쓰시는 장면을 보게 됐다. 멀찌감치만 봐도 페이지 하나하나 빽빽하게 뭔가를 쓰시는 게 보였고, 어떤 때는 마치 유치원 조카가 그렸다 해도 믿을 법한 그림으로 바닷속 풍경을 그리기도 했다. 그리고 충격을 받은 것이 바로 로그 수(다이빙 수. 매 다이빙 로그마다 몇 번째 다이빙인지 기록한다.)였는데, 어.. 얼마? 3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냥 엄청나게 큰 수였던 것까지만 기억할 정도였다. 세상에, 그 정도면 이제 지겨울 때도 됐을 것 같은데 여태껏 매 다이빙에 저리도 쓸 것이 많을까 싶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로그북을 써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만 하면서.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에는! 진정한 중견 다이버로 거듭나자는 생각 외에도, 새로 장만한 카메라로 사진 찍었던 재미를 더 그럴싸한 모양으로 표출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이왕 로그북을 좀 더 알차게 쓰는 김에 로그북에 사진을 붙이자. 내가 그림을 그려가며 로그북을 쓰지는 않을 것 같으니.


다이빙 여행을 마치고 왔지만 찍어온 동영상과 사진을 보면서 그때를 다시 떠올리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다. 큰맘 먹고 투자해서 카메라를 새로 산 보람이 생긴다. 사진 찍은 시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 사진이 어느 포인트였는지도 알 수 있고, 깜빡 잊었던 작은 물고기나 갯민숭달팽이 같은 친구들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욕심이었는지 내가 찍어온 동영상은 양이 어마어마했다. 뭐 거의 다이빙 전체를 다시 돌아보는 느낌이려나. 그래도 처음엔 신난다. 그렇게 보다 보니, 또 하나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본 것들이 뭔지 제대로 알고 넘어가자.


영상에 찍힌 물고기와 산호, 작은 생물들 모두 제일 잘 나온 부분을 캡처해서 사진으로 만들었다. 이것들을 모두 로그북에 붙이기 좋은 사이즈로 우표만 하게 인화했다. 그리고 인터넷과 지난번 팔라우에서 샀던 물고기 도감을 뒤져가며 찾았다. 어떤 물고기들은 엄청 미세한 차이가 있는 것들도 있어서 구별하기 쉽지가 않았다. 그럴 때면 아내인 Sophy와 이게 맞네 저게 맞네 목소리를 높일 때도 있지만, 대개는 Sophy가 맞는 걸로 합의를 봐야 했다.


사진을 편집하고 분류하고 인화하고 자르고 붙이고 또 찾아보기를 일주일 꼬박 한 것 같다. 그리하여 완성한 로그북은 이전의 로그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었다. 이 정도면 중견 다이버의 로그북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터. 게다가 이제는 보홀 바다에서 보는 생물들이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남들보다는 잘 알게 되었지 않을까 하는 학문적 성취감도 있다. 몇 번을 넘겨봐도 이 로그북 참 근사하다.


오픈워터 교육 때 받은 이 로그북은 디자인은 좀 빈약한 편이다. 그래서 사진으로 뒤덮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웨이트가 6kg에서 5kg으로 줄어든 기록이 있다.


여기에는 어떤 수트를 입었는지도 기록해 두었으니 다음 다이빙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




로그북 쓰는 법


로그북은 다이빙 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번의 다이빙마다 하나의 로그를 씁니다. 로그북의 형식은 대체로 비슷한데, 로그수, 날짜, 다이브 포인트, 다이빙 시간, 수심과 수온, 날씨 등의 환경적인 내용과, 착용한 장비, 수트, 웨이트, 사용한 공기량 등의 본인의 다이빙 정보도 기록합니다. 객관적인 정보 외에 물속에서 본 수중생물들과 특별한 이벤트, 인상적이었던 것들, 다이빙하면서 떠올랐던 잡념들부터 가끔은 뜬금없이 든 철학적 고민까지, 일기장처럼 본인이 쓰고 또 기억하고 싶은 어떤 일이든지 덧붙여 쓰면 됩니다.


로그북을 쓰는 법은 스쿠버다이빙의 처음인 오픈워터 코스에서 배웁니다. 오픈워터 코스의 바다 훈련을 마치고 나면 그날 저녁에 강사는 다이빙했던 포인트와 시간, 수심 등을 알려주고, 뭔가 본 거 같긴 한데 뭘 봤는지 잘 모르겠는 입문자를 위해 우리가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일깨워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다이브 숍과 리조트에는 그곳만의 스탬프가 있어서, 로그북에 스탬프를 찍어 이곳에 온 것을 기념하기도 합니다. 마치 다이빙 여권 같은 느낌이지요.


그래서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은 로그북을 좀 더 예쁘고 재미있게 만들기도 하고, 또 이를 매 여행에 가지고 다니면서 자랑하기도 합니다. 저처럼 작은 사진들을 붙여가며 수중생물 공부를 하기도 하고, 사진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바닷속 풍경을 그림으로 그려내기도 합니다. 다이빙 여행지에서 산 작고 귀여운 스티커들은 로그북을 꾸며주기도 하면서 또한 기념이 되기도 합니다. 여행 동안 챙겨둔 비행기 티켓이나 호텔 바우처, 다이브 포인트 세금 납부서나 허가증 같은 것들도 나중에 보면 기억을 떠올리게 해 주는 좋은 기념품이 되기 때문에 로그북에 잘 보관하는 것도 좋습니다.


금손 다이버가 그린 다이브 로그북.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보는 이들에게 그 순간의 황홀함을 온전히 전달해 준다. (출처: https://www.soapbear.com)

Log #1. Palau Ngermeaus


Log #5. Palau Iromaru point


Log #11. Palau German channel


로그북은 내용이나 형식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많은 형태로 나오고 있지만, 일반적인 로그북의 유형을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PADI의 로그북. 무단복제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Dive No.    지금까지의 모든 다이빙 수

Date    날짜

Location    다이브 포인트

Time IN/Time OUT     입수 시간, 출수 시간

Start/End     공기통의 공기 잔압. 다이빙 시작할 때와 마쳤을 때의 잔압입니다. 일반적으로 bar를 쓰지만, 미국쪽에서는 psi를 씁니다.

Weight     웨이트. 외국에서는 lb(파운드) 기준의 웨이트도 많기 때문에 잘 알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대략 2lb = 1kg 정도로 환산할 수 있습니다.

Exposure Protection     수트, 복장

Visibility     수중 가시거리. 주관적이고 정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적절한 본인만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Temperature    Air: 기온    Surface: 수면의 수온    Bottom: 수중, 가장 깊은 수심에서의 수온

SI Surface Interval    이전 다이빙부터 다음 다이빙까지의 시간

PG Pressure Group    다이빙 압력 테이블에 따른 다이빙 후의 압력군. 다이빙 전과 다이빙 후에는 PG가 달라집니다. (뭔지 모르겠는 분이라면 오픈워터 코스를 제대로 못 배운 겁니다.)

5m/15ft stop    3분 안전정지

Depth    수심. 주로 최저 수심을 기록하며, Avg.(평균) 수심은 다이브 컴퓨터에 기능이 있으면 기록할 수 있습니다.

Bottom Time    수중에 머무른 시간


로그북에 남기는 기록들 중에는 입수 시간이나 다이빙 시간, 수심, 수온 등 다이브 컴퓨터에 의존해야 하는 정보들이 있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함께 하는 강사나 가이드로부터 이 정보들을 받아 적기는 하지만, 온전히 나의 정보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용 다이브 컴퓨터를 장만하는 게 좋습니다.


2010년에 장만한 다이브 컴퓨터를 아직도 쓰고 있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내 다이빙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로그북의 효용은 다이빙의 기억을 떠올리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로그북은 또한 개인적인 다이빙의 성장 기록이기도 합니다. 다이빙을 하면서 잘 안되거나 어려웠던 점, 함께 간 강사로부터 받은 조언 등을 쓰고 나중에 되새겨보면 다이빙 기술을 향상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중요하게 쓰이는 정보가 웻수트와 수온, 웨이트입니다. 본인이 어느 정도의 수온에서 어느 정도 추위를 느꼈는지, 어떤 웻수트를 입고 편안하게 느꼈는지를 기록해 두면 다음 여행 갈 때는 더 이상 추위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지요. 또한, 웨이트 역시도 충분했는지, 필요 이상이었는지를 로그북에 기록해 둡니다. 어떤 웻수트를 입었는가에 따라 웨이트의 무게가 달라지기 때문에 로그북의 기록은 아주 중요한 정보가 됩니다.


로그북은 강제 사항은 아닙니다. 일기장 같은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쓰고자 하는 마음으로 쓰는 것이며, 귀차니즘이 충만한 분들은 로그북을 쓰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스쿠버다이빙 코스에서는 일정 이상의 로그수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전문 다이버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PADI의 다이브 마스터 코스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40번 이상의 다이브 로그가 필요합니다.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는 로그북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만일 로그북을 충실히 쓰지 않은 사람이라면, 본인이 원하는 때에 코스 신청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꼭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도, 본인의 다이빙 역사를 내일모레면 까먹을지 모르는 기억에만 담기에는 멋진 다이빙을 선사해 준 오늘의 바다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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