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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Oct 23. 2017

수영장에선 뭘 배우는 걸까?

프리다이빙-05 | 세상 심심해 보이는 프리다이버들 | 2014년 10월

둘째 날 아침이다.


푹 자고 싶었지만 그냥 눈이 떠졌다. 시간은 일렀지만 창밖은 이미 환했다. 아침의 바다를 보고 싶어 얼굴에 물만 묻히고 방을 나왔다.


바다라고 부르던 곳은 파란 거울이 되어 하얀 솜털 위에 배들을 얹어두고 있다. 아침부터 어린아이들이 웃고 떠들면서 잔잔한 수면에 심술을 부리고, 그 옆에는 아무렇게나 자란 것처럼 보이는 이 동네의 개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여기는 바로 앞에 평화가 살고 있구나. 이런 곳에서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던 생각도 잠시, '심심하겠지?'라는 현실적인 생각이 퍼뜩 드는 걸 보면, 좋게 말해서 현실 감각이 살아있다고 하겠고, 나쁘게 말하면 낭만이 없다고 해야 할까?


도시에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고요한 평화를 바라지만, 그것을 평화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반면에 저기 보이는 어린아이들도 언젠가는 도시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겠지만 그중에는 자기들이 누리던 평온이 더 값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겠지.


아침에는 이 동네 어린 아이들이 모든 배의 주인인 모양


프리다이버가 되기 위한 여정의 첫 아침이다.


첫 아침이라고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만은, 그 느낌이 자못 인상적이었어서 잊히지가 않는다.


골 아픈 회사일에서도 해방, 고요한 아침 풍경을 보며 또 힐링의 기운을 받은지라, 기분은 더 이상 즐거울 수가 없었고, 힘들게 왔던 여정, 모자란 듯 한 잠에도 아랑곳없이 몸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프리다이버들이 하나, 둘 식당의 테이블로 모였다. 부스스 눈만 비비고 나오는 사람, 동네 한 바퀴 산책을 돌고 온 사람. 그리고 멀리서 싼 방을 얻어 살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다이브 샵 강사님과 장기 여행자도 있었다.


어제는 보지 못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설렘이 채 싹트기도 전에 지나치게 조용한 분위기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응? 왜 이리 다들 조용하지?'


우리처럼 친구들끼리 같이 온 사람보다는 다들 혼자서 온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 쳐도 너무 조용하잖아?


처음 보는 사이인데 우리는 별 인사도 못하고 마치 일부러 평화를 즐기는 것처럼 어색한 미소를 띠며 바다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주인장 어른인 Kimmy 강사님이 합류해서 몇 마디 주고받긴 했지만 이 경건해 보이기까지 하는 고요의 분위기는 깰 수 없었다.


식사가 왔다. '엇? 뭐야, 아무리 아침이지만 음식이 왜 이리 적은 거야?' 바나나와 망고, 오트밀, 팬케이크가 전부인데 양이 많지도 않잖아. 그래, 프리다이빙을 할 테니 많이 먹지 않는 게 좋으려나?라고 합리화를 하긴 했지만, 이까지 오는 동안 피곤하고 별로 많이 먹지 못한 우리들에겐 역시 적은 양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입맛만 쩝쩝거리면서 둘러보니, 어랏? 왜 다들 밥을 안 먹는 거지? 우리와 강사님들을 빼곤 다들 절반 정도만 먹고 절반은 안 먹고 남긴 거다. 음... 그래, 솔직히 맛있는 아침은 아니었나 보다. 나는 오트밀을 맛있게 먹었지만 모두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 뭐, 건강식이니까 맛은 좀 없어도 되지 않나? 그래서 다들 많이 안 먹나? 모두들 말이 없으니 이런 생각들만 잔뜩 하고 앉았다.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아침 식사이지만, 좀 아쉬운 양이다. 근데 이마저도 다들 남기잖아?


둘째 날 수업은 드디어 물에 들어간다.


하지만 먼저 바다가 아닌 수영장에서 배우고 가는 거란다. 수영장은 차를 타고 가야 한다. 섬 중앙에, 바다랑은 조금 떨어진 한산한 곳에 리조트라고 있는 듯한 수영장에 갔다.


수영장 수업을 하러 멀리 달려온 수영장(리조트) "Tres Sophias".


리조트라고는 하지만 사람이 없어서 교육하기에는 좋다. 주말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좀 있다고 한다.


여기서 배우는 것은 숨을 얼마나 오래 참는지, 참는 시간을 더 늘려 가면서 본인의 잠재적 능력을 확인한다. 교실에서 해 본 것과 마찬가지의 스태틱(Static)이라는 훈련이다.


다음으로 다이내믹(Dynamic)이라고 부르는, 롱핀을 신고 핀 킥을 하는 연습도 했다.


이게 지금까지 동경만 하고 처음 신어보는 프리다이빙용 롱핀이구나. 핀이 긴 만큼 추진력이 좋은 대신 다리 힘이 더 필요했고, 짧은 스쿠버용 핀에 비해 킥 인터벌이 더 길어 익숙지 않았다. 흠. 의외로군. 내가 핀 킥을 쉽지 않다고 느끼게 될 줄이야.


움직임을 최소화하여 숨을 오래 참는 스태틱(Static) 훈련.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볼 수 있는 훈련이다.


처음 배우는 동안은 이게 바다에서 하는 프리다이빙이랑 무슨 관련이 있을까 했는데, 바다에 가기 전에 익혀야 할 기본적인 기술을 안전한 곳에서 연습한다는 의미와, 평소에 늘 바다에서 연습할 수는 없으니 수영장에서 할 수 있는 연습을 따로 배우는 의미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영장에서 할 수 있는 형태의 프리다이빙 역시 하나의 정식 기록경기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첫 바다, 수영장에서 다시 픽업트럭을 타고 바다로 향했다. 나에겐 일상이 아니라 굳이 덜컹거리는 짐칸의 딱딱함을 엉덩이로 느끼면서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갔다.


꽤 달린 후 도로를 빠져나와 비포장길을 가니 엉덩이가 아파서 도저히 앉아 있지 못할 지경이 된다. 슬쩍 일어나서 트럭이 향하는 방향을 보니 수평선이 보인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나팔링(Napaling)이라는 곳. 깎아지른 해안 절벽이 돋보이는 곳으로, 처음 보홀에 왔을 때 스쿠버다이빙을 해 봤던 곳이다. 배에서 볼 때는 몰랐지만 여기가 이렇게 근사한 곳이었다니. 얕은 수영장에서 앞뒤로 왔다 갔다만 해서 내심 아쉬움이 있었는데 탁 트인 너른 바다를 보니 기대감과 함께 과연 맨몸으로 들어가는 바다는 어떨지 긴장이 되기도 한다.


바다 수업을 위해 다시 먼 길을 달려 도착한 나팔링(Napaling) 해안의 칼리카산(Kalikasan) 리조트.


평온한 바다, 시원한 나무 그늘과 해먹. 여기는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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