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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Mar 18. 2018

고요한 나팔링의 물속

프리다이빙-06 | 나에게 귀 기울이는 시간 | 2014년 10월

이 곳에 와서 가장 먼저 놀라움을 준 것은 엄청난 풍광이었다. 예전에도 스쿠버다이빙으로 배를 타고 먼발치에서 절벽 쪽을 본 적은 있지만, 절벽 위에 이렇게 근사한 리조트가 있었는지, 절벽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경치가 이렇게 아름다운지는 그때는 알 수가 없었다.


픽업트럭이 리조트 안의 작은 주차장에 섰고, 우리는 장비를 내려 절벽 근처에 계단과 함께 만들어진 플랫폼(?)으로 옮겼다. 리조트는 잔디밭이며, 곳곳에 심어진 야자수와 거기에 걸친 해먹들이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 주었고, 하와이 같은 열대 휴양지 하면 떠오르는 하얀 꽃 (Plumeria라는 이름의 꽃이다.) 역시 휴양을 위해 온 여행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줬다.


한송이 꺾어서 머리에 꽂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아름다운 꽃 Plumeria. 우리말 이름은... 하와이꽃일까??


바다 교육은 준비 운동, 즉 스트레칭부터 시작이다. 어느 운동이나 마찬가지이고, 수영장 교육의 시작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프리다이빙은 스트레칭이 매우 중요하다. 몸의 관절과 근육을 유연하게 하여 갑작스럽게 변하는 온도에 긴장하여 불편하거나 쥐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몸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여 산소 소모를 줄이고 숨을 오래 참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스트레칭은 우리가 흔히 하던 일반적인 스트레칭보다는 뭔가 전문적이어 보였다. 온몸을 쭉쭉 늘이며 하는 스트레칭이 마치 성장기 어린이들 키크기 운동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중요한 스트레칭이라 그런지 설렁설렁 끝나지 않고 꽤나 정성과 시간을 들여 진행된다. 그래서 이미 중간쯤부터는 이마에서 땀이 조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스트레칭이 끝나자 강사님이 각자의 장비를 챙겨주었다. 다른 장비는 수영장에서 이미 다 사용을 했었지만, 허리에 차는 웨이트는 바다 교육에서 처음 써 보는 것이다. 프리다이빙의 웨이트는 스쿠버다이빙에서 사용하는 것과 확연히 다르다. 웨이트 벨트의 재질은 고무나 실리콘으로 되어 있는데, 숨을 쉬는 데 편하게 하고, 몸에 딱 고정이 되게 하기 위해서 허리가 아닌 골반에 찬다. 얼추 차고 있으니 강사님이 와서 "이건 짱짱하게 차야 되는 거예요." 하면서 꽉 졸라서 다시 채워 주는데, 마치 골반 위치에 허리가 하나 더 생긴 것처럼 홀쭉한 모양이 되어 버린다. 대신 허리에 차는 것과는 달리 배에 압박이 느껴지지 않아 숨 쉬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바다로 가기 전 마지막 준비는 물을 마시는 것이다. 물을 충분히 마셔줘야 물의 압력 변화를 몸이 유연하게 받아들인다는데, 이것은 스쿠버다이빙과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오줌이 마려운 것 역시 스쿠버다이빙과 마찬가지.


절벽 위의 리조트에서 계단을 내려오면 바로 바다


프리다이빙은 역시 스쿠버다이빙보다는 장비가 간편해서 움직이기가 편하구나. 무겁고 거추장한 공기탱크가 없으니 다이버들도 편하고 굳이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배도 필요치 않다. 노란색 커버가 씌워진 튜브(부이(Buoy)라고 부른다.)에 긴 로프를 넣어 가져가고, 그 안에 수면에서 먹을 물과 추가 웨이트를 넣어 간다. 그 외에는 모두 개인 장비인데, 개인 장비라고 해 봐야 긴 오리발뿐이다. 물에 발을 담그고 오리발을 신고는 스노클과 마스크를 쓰고 부드럽게 나팔링의 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바다가 잔잔한 편이어서 편히 준비를 하고 바다에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다.


공기탱크를 메고 이미 수백 번 들어가 본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가벼운 차림으로 바다 한가운데로 가 보는 것은 처음이라 은근히 긴장이 되기도 한다. 노란색 부이를 끌고 열심히 해안을 벗어나 바다 가운데로 오리발을 차며 간다. 눈 아래로는 그저 새파란 배경에 햇빛이 일렁이는데, 이것이 마치 신비한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틈틈이 눈 앞으로 작은 미생물들(아마도 해파리의 유생이라거나)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기도 하며 몇 분 되지도 않았던 시간을 언제 어디까지 가야 하나 하는 의문을 가지고 오리발을 차던 허벅지에 열이 날 때쯤 강사님이 멈췄다.


강사님은 부이에서 로프를 꺼내 그 끝에 웨이트를 달고는 파란색의 끝없는 바다로 던지더니 이내 줄을 잡아 부이에 걸었다. (그냥 금방 끝내는 것처럼 보이는 부이 설치는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가능한, 보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이제 내가 기대하던 바로 그 바다 교육이 시작된다.


프리다이빙으로는 처음 온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워밍업이다. 워밍업은 모든 프리다이빙 시작 때 하는 것으로, 바닷물 수중 환경에 몸이 적응하도록 함과 동시에 나 자신의 컨디션도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다. 강사님은 우리에게 워밍업을 하는 방법과 자세, 주의 사항을 가르쳐 줬고, 한 명씩 번갈아가며 대략 10m 정도 늘어뜨린 로프를 잡고 숨을 참고 내려갔다.


프리다이빙 신동(?)이라 처음에도 잘 했지만, 지금 보니 자세는 좋지 않구나.


아침 식사 때 느껴졌던 프리다이빙의 고요함은 바다에서도 계속되었다. 한 명씩 번갈아가며 워밍업을 하는데, 워밍업을 하지 않는 동안은 참았던 숨도 고르고, 다음 숨 참기를 위해 준비 호흡을 하며 안정을 취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얼굴을 물속에 박고 가만히 있는 시간의 연속이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 봐야 다른 사람이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 자세랑 비교하면 뭐가 다른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정도다. 그러다 보니 교육생은 3명이지만 들을 수 있는 사람 목소리는 강사님 목소리 하나뿐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고요함은 물속에 있다.


두 뺨에 바닷물의 흐름이 느껴지고 귀에 수압이 느껴지는 때에는 항상 스쿠버 호흡기의 뽀글거리는 소리를 들어왔었지만, 프리다이빙의 물속은 지금까지 느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순간적으로 다른 세계로 들어왔다는 느낌은 청각의 변화로 시작된다. 나의 귀가 수면 아래로 들어간 이후로는 마치 모든 소리를 차단한 녹음실의 문을 닫는 듯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정말로 '난 누구? 여긴 어디?'라는 생각이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머리를 맴도는 경험이다. 눈 앞에 로프가 없다면 정말 위아래도 구분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오직 로프만 붙잡고 내려가다 보니 노란 테니스 공이 10m 수심임을 표시하고 있다. 나는 아직 숨을 더 참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좀 더 있어 보기로 했다. 로프를 붙잡고 가만히 있었다. 이것은 정말 신비한 경험이다. 분명 눈을 뜨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편안한 것 같기도 하고 현기증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더 있으니 내 심장의 박동 소리가 혈관을 타고 온 몸에 전달되는 것이 들린다. 내가 숨을 좀 더 참을 수 있다고 해도 불과 몇 분일 텐데, 숨을 쉬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계속 이렇게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천천히 로프를 잡고 당기기 시작했다. 별로 힘을 들이지 않아도 스르륵하고 로프를 따라 몸이 떠오른다. 흘낏 위를 보니 속세의 사람들이 나를 맞이하듯 양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얼굴이 물밖으로 나오자 교육받은 대로 회복호흡을 하고 OK 사인을 보내고 다시 이 세상 사람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물속이라도 눈 앞에 강사님이 나타나면 안심이 된다.


신비의 문으로 인도하는 듯한 성스러운 빛내림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는 듯 하다.


정확히 말해 물속에서의 고요와는 확연히 다르지만, 이 곳 나팔링은 물에 떠 있는 동안에도 여느 바깥 세계와는 다른 평온함을 주는 곳이다. 우리가 24시간 항상 느끼는 소음과 번잡함은 이 순간만큼은 다른 세계의 것이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느끼는 적막함과는 다른 평화로운 고요함이 주위를 감싸고 있다. 우리가 늘상 피하고 숨었던 햇빛마저도 마치 내 뺨을 쓰다듬어주는 것 같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물속에 담갔다. 양손도 손등을 아래로 하여 부이 손잡이를 잡고 햇빛을 피해 물속에 넣었다.


낭만은 잠시지만 햇빛에 탄 얼굴이랑 손목 장갑은 여름 가을 내내 유지된단 말이지.


쏟아지는 햇빛도, 시원한 공기도, 찰박거리는 물소리도 이 한 순간만을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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