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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Jul 22. 2018

Blackout

프리다이빙-12 | 보이지 않는 위험 | 2015년 6월

블랙-아웃, blackout : 명사. 1. 무대의 암전 2. 텔레비전의 브라운관의 밝기가 갑자기 그침. 또는, 전파가 갑자기 끊겨 화면이 꺼지는 일. (출처: 구글 사전)


구글에서 한글로 "블랙아웃"을 검색하면 나오는 설명이다. 연극이나 방송에서 장면이 완전히 검어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 같다. 설명이 너무 전형적이고 올드한 느낌이 드는 것이, "브라운관"이라는 단어는 왠지 확대해 보면 점점이 RGB 색깔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좀 더 현실성 있는 설명이 없을까 검색 엔진을 바꿔서 찾아봤다.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니 "역대급 폭염 지속 전력수급에 이상 없나 블랙아웃 우려 커져"와 같은 기사 제목이 보인다. 우리 집도 하루 종일 에어컨을 껐다켰다 하면서 더위를 이기려다 보니 1994년의 여름은 어떻게 버텼는지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블랙아웃"이라는 말은 정전이나 예기치 못한 사고에 의한 어둠, 모든 것이 보이지 않고, 그 이전과 이후가 단절되는 상태를 한 단어로 표현할 때 쓰는 것 같다.


프리다이빙에서 블랙아웃(줄여서 "BO"라고 부르기도 한다.)이라고 하면, 산소 부족으로 인한 순간적인 의식불명을 말한다. 프리다이빙 교육에서는 블랙아웃을 매우 중요하게 설명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숨을 참는 수중이라는 환경도 극단적인데, 블랙아웃은 정신을 잃는 사고이기 때문에 목숨과 직결되는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프리다이빙을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중급 프리다이버 과정까지도 블랙아웃에 대한 중요성은 끊임없이 들어왔지만 이론 교육에서만 보다 보니, 마치 비행기 불시착 때는 소지품을 챙기지 말고 탈출하라는 지침처럼 배우는 것과 실제로 일이 벌어졌을 때의 심리적 유리감이 있지는 않을까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내 눈 앞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중급 프리다이버 수료를 위한 기준은 이미 모두 통과한 천재 다이버 나는 고급 프리다이버와 같이 트레이닝을 하게 되었다. 고급 프리다이버 과정에서는 뭘 배우는지 의욕 가득한 호기심으로 다이버와 강사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보기도 하고, 나의 다이빙이 고급 다이버와 별 차이 없는 것처럼 보여 혼자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트레이닝은 어느덧 중반을 넘어, 이제 할 만큼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이제 좀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 즈음이었다. 같이 트레이닝 중이던 고급 다이버는 이전 다이빙에서 시도했던 수심을 닿지 못하고 얼리턴(Early turn. 목표 수심을 도달하지 못하고 수면으로 올라오는 것)을 한 것이 아쉬웠는지, 한 번 더 시도를 해 보겠다고 한다.


임원 회의에 들어온 신입 사원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무슨 일이 생기는지만 보자는 마음으로, 혹시라도 손등이 햇빛에 탈까 손등도 물에 잠근 체로 고급 다이버 선배님의 다이빙을 지켜봤다. 깊은 물아래로 다이버의 윤곽이 아까보다 더 흐리게 사라져 가는 걸 보니, 아마도 이전 다이빙에서 도달하지 못했던 수심까지 가지 않았나 싶었다.


강사님은 세이프티를 위해 잠수를 했고, 역시나 윤곽이 흐릿하게 사라져 갈 즈음 그 윤곽이 둘이 되면서 고급 다이버와 함께 올라오고 있었다. 다이버도, 강사님도 편안하고 순조롭게 올라왔고, 수면에서의 회복 호흡 준비를 위해 고개를 살짝 들어 부이를 바라보는 다이버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을 때도 이상한 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나에게도 블랙아웃이었을지 모르겠다. 그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으니. 분명 수면으로 올라왔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다이버는 내가 물에서 얼굴을 들었을 때 부이 위로 보이지 않았다. 순간, 강사님이 황급히 움직이는 곳을 보니, 다이버는 중심을 잃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었다. 강사님은 다이버의 목을 받친 후 마스크를 벗기고 뺨을 두드리며 다이버를 깨웠다.


그 순간이 어찌나 긴박한지, 나에게는 마치 화면 너머의 동영상처럼 멀어 보였고, 뭘 해야 할지 모른 체 우두커니 바라만 봤었던 것 같다. 두어 번 뺨을 두드렸지만 다이버의 고개는 여전히 젖혀져 있었고, 강사님은 구조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곧 다이버는 정신을 차렸고, 이제야 목을 가누고 부이를 잡았다.


"내가 어떻게 된 거죠?"
다이버가 블랙아웃에서 깨어나 제일 먼저 한 말이었다.


이제야 이론 수업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블랙아웃이라는 것이 뭔지 피부로 느껴졌다. 처음에 썼던 블랙아웃의 정의처럼, "깜빡" 하는 순간 그 잠깐의 기억이 사라져 버리고 눈을 뜨면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이다.


전력 수요는 많은데 예비 전력이 부족해서 블랙아웃(정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처럼, 필요한 산소에 비해 몸에 품은 산소가 부족해질 때 역시 블랙아웃이 생긴다. 수면 바로 아래까지도 별 이상이 없던 것처럼 보이던 다이버라도 한 순간 정신을 잃을 수 있으며, 이때 즉시 세이프티 버디의 구조가 없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바로 앞에서 극적인 장면을 보고 나니, 몇 시간의 이론 수업보다 더 인상적으로 뇌리에 남게 된다. 단 한순간도 방심하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천재 다이버라고 우쭐하지 말고, 조그만 하나라도 최상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되뇌게 하는 경험이 되었다. 거기다 교육 시간에 여유롭게 배우던 구조 절차가 그저 교과서에만 나오는 얘기가 아니고, 실제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제대로 버디를 구하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배우고 연습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원한 맥주로 안전 다이빙을 다짐. 진지할 땐 진지하고 놀 땐 놀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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