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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Sep 24. 2018

앗쌀한 동해의 추억

스쿠버다이빙-40 | 다이브마스터 훈련의 마지막 | 2013년 6월

동해란, 나에게는 대체로 아련한 추억이 깃든 곳이다.


나는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아직도 조각조각이지만 해운대 송정 바닷가의 때 묻지 않은 추억이 떠오른다. 지금도 인스타그램 필터를 쓴 것 같은 아날로그 사진이 모서리가 닳은 체로 남아 있다.


대학 4년 (정확히는 4년 반...) 동안은 학교도 집도 포항에 있었다. 그렇지만 의외로 바다에 가는 일은 많지 않았는데, 학교에서 바다를 나오는 일은 부유한 배경을 가진 선배가 기분을 내서 차를 태워주거나, 몇몇이 모여 돈을 나눠 내며 택시를 타야 갈 수 있는 사치스러운 일 중에 하나였다. 그마저도 택시를 타려면 택시가 잡히는 곳까지 걸어 나가야 하는 수고가 필요했다.


겨울 방학에 하릴없이 집에 있는 날에는 슬리퍼만 끌고 나가면 사람 보기는 어려워도 길게 뻗은 깨끗한 백사장이 있는 해변이 있음에도, 볼 거래 봐야 미래소년 코난에 나오는 인더스트리아 같은 바다 건너 포항제철의 불빛뿐이라 굳이 바람 맞아 가며 나갈 일은 없다. 그래도 모처럼 포항에 눈이 많이 와서 한껏 쌓인, 아무도 밟지 않은 바닷가의 끝없이 펼쳐진 눈밭을 혼자 거닐어 본 것도 다른 이들에게는 없었을 조금은 쓸쓸한 기분이 드는 추억이다.


나의 동해에 대한 추억은 대체로 이 정도. 그래 봐야 모두 (어쩌면 당연하게도) 동해를 그저 바라보는 정도의 추억들이다.


그런데 지금 하려는 것은 바라만 보던 그곳을 뛰어들겠다는 거다.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어!"라는 호기심 같은 건 생긴 적도 없었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서 동해 투어를 가려면 주말을 알차게 채워야 한다. 그 주말의 시작은 새벽부터 시작된다. 늦지 않으려고 일찍 나왔더니 아무도 안 보인다. 혹시라도 약속 장소를 잘못 찾은 건가 싶어 주위를 돌아다녀 봤지만 그냥 내가 너무 일찍 나온 것뿐. 이런 여행이 처음이라 설레고 긴장되어 일찍 나온 사람은 나뿐인 모양이다.


너무너무 설레서 너무너무 일찍 나왔더니 약속 장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멤버들이 모두 모이기까진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해가 가장 긴 계절임에도 안개가 낮게 깔린 이른 새벽은 음습했다. 여행객들이 더 많아지기 전에 최대한 멀리 내달려, 동해를 오가는 여행객들에게는 나름 유명하다는 백반집에서 아침을 먹은 후, 바다가 보이는 곳에 이르니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아직 잠도 덜 깬 것 같은 기분인데, 다이브 숍에 차가 멈추고부터는 분주한 분위기가 되었다. 혹시 지금 바로 다이빙을 나가야 하나 걱정이 되었는데, 그나마 다행히도 오전은 짐 정리하고 스케줄을 의논하며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주말동안 있을 다이빙을 미리 훑어보는 시간. 그래도 쉽지 않겠지만.


점심을 먹은 후 동해에서의 첫 다이빙은 같이 온 레스큐 다이버의 해양 실습을 같이 하는 것이다. 레스큐 다이버 코스는 나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대로 하면 되겠지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지난번 제주도 실습에서도 다이브마스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일들을 해야 함을 느꼈는데, 레스큐 다이버 코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직 초여름에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해가 나지도 않는다. 수트를 입고 장갑을 끼고 후드까지 쓰고 있으니, 마스크를 쓰기 전까지는 얼굴만으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비릿하고 축축한 바닷내를 코로 들이마셨다가 마스크를 쓰고 나니 이미 내 몸이 반쯤은 동해 물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처음으로 스쿠버다이빙으로 들어와 보는 동해. "첨벙!"하고 다리를 뻗어 뛰어든 동해의 물은 마치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멋도 모르고 뛰어든 목욕탕의 냉탕같이 서늘했다. 새로 장만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짱짱한 웻수트도 싸늘한 바닷물을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차갑던 바닷물도 금방 나의 체온에 데워졌고, 처음 둘러보는 동해에 대한 호기심을 따라 몸을 돌려 내려갔다.


동해 다이빙은 지금까지 다녔던 다이빙과는 달랐다. 차가운 물 온도도 그렇고, 눈 앞은 안개가 짙게 깔린 것처럼 뿌옇기만 하다. 이 다이빙이 여행이 아닌 "훈련"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여기서 여러 가지 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레스큐 다이버 코스를 위해서 여러 가지 비상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고, 물속에서 찾은 커다란 무언가를 바깥으로 건져 올리는 연습도 했다.


레스큐 다이버가 찾아내기를 기다리며 행방불명자가 되기도 했는데, 물속이 너무 추운 데다 앞도 잘 안 보여서 제발 나를 빨리 찾아 주기를 바라며 멀리 가지도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혼자 떨어져 있는 동해의 물속은 차갑고 하얗고 거대했다. 그렇게 기다리다 눈 앞을 지나치던 아무 특징도 없는 작은 물고기가 나의 첫 동해 다이빙에서 본 인간 이외의 유일한 생명체였다.


동해의 바다는 들어가 보기 전에는 좋을지 어떨지 알 수가 없다.


물속에서 건진 보물상자(?)를 인양하는 연습


오픈워터를 배우러 이번에 처음 바다를 와 보는 다이버는 다이브마스터 과정을 밟고 있는 우리 동기들의 교보재(?)가 되어 주었다. 오픈워터를 동해에서 한다는 건 상당한 도전이지만, 오픈워터 다이버 입장에서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를 테지. 오픈워터 다이버 한 명에게 4명의 예비 다이브마스터가 붙어서 동작 하나하나까지 봐주며 챙겨 주는 걸 우리는 사치스런 황제 다이빙이라고 불렀지만, 과연 정말로 좋기만 했을지 아니면 거추장스러웠을지는 우리도, 오픈워터 다이버도 몰랐을 일이었겠지.


동해에서의 훈련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다이브마스터로서의 역할에 부담을 느끼는 경험도 있었다. 다른 곳에서 펀다이빙을 했을 때 늘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가이드를 직접 하는 연습이었다. 가이드 역할도 처음이지, 이 포인트도 처음이지, 춥고 앞이 안 보이는 바다 환경도 처음이니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는데, 가끔씩 바닥도 보이지 않고 따라오던 동료들도 흐릿하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타났다 할 때는 무서운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그래서 멀리 가지는 못하고 아무것도 볼 것 없는 해변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이래서야 다이브마스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다이브마스터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은 모두 완료했고, 앞으로의 난관을 헤쳐 나가는 건 또 결국 나의 숙제가 되겠지.


다이브마스터 훈련의 끝이 보인다. 근데 이게 끝일까 시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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