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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Oct 21. 2018

드디어 스쿠버다이빙 강사

스쿠버다이빙-43 |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 2013년 9월

PADI 스쿠버다이빙 강사 시험의 첫날, 필기시험을 무사히 마치나 싶었는데 우리 동기 중 한 명인 "쭌"이 과락이라고 하여 모두들 걱정이다.


아니, 어디서 왜 그... 아... 뭔가 더 물어보기에는 너무 분위기가 침울하잖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과락인 사람도 내일 재시험을 볼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노마 코스디렉터가 본인이 가르친 사람 중에 지금까지 떨어진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쭌"의 얼굴에서는 마치 "망했네 망했네 망했네 망했네"라고 절로 소리가 나는 듯했다.


재시험이라는 구원의 손길이 있으니 시작부터 너무 낙담하지 말라고 위로를 하고 싶었지만, 시작부터 이러니 더욱 낙담이 크지 않겠는가. 그래도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시험들이 남아 있으니 여기서 좌절하지 말고 준비를 해야지.


첫날의 일정은 필기시험뿐이었지만 늦게 시작해서 곧 저녁 시간이 되었다. 아무 정보도 없이 와 있는 울진. 주변에 밥 먹을 곳이 어딘지도 몰라 우리는 다 같이 차를 타고 "읍내"로 나갔다. 솔직히 어디가 어딘지 알고 간 것도 아니고 서울에서 올 때 보니 어딘가 좀 번화한 곳이 있었으니 그 방향으로 가다 보면 밥 먹을만한 데가 나오지 않겠나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나갔다. 나만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조금 흥분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한 마음들이 뒤섞여, 어딜 찾아가고 말고 할 정신적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아마 노마 코스디렉터가 가자고 하는 대로 따라만 갔었겠지.


아직 여름의 끝자락에 걸려 있는 때였지만, 동해안의 낮은 생각보다 금세 어둠에 밀려나고 있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가 내일 있을 시험을 또 준비해야 한다. 그래도 작게나마 음식점들이 있는 "읍내"(?) 불이 켜진 음식점도 많지 않은데, 우리는 그나마 만만해 보이는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식당은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고,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도 피로한 우리에게 휴식의 시간을 주는 듯했다. 하지만 쭌의 침울한 표정 때문에 목구멍을 넘어가는 고기 질감이 적잖이 거친 느낌이다.


분명히 이날의 저녁은 맛있었어. 맛있었다고... 근데 이 분위기 무엇?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니 꽤 늦은 시간이 되었지만, 모두 모여서 다음날의 시험 준비에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다. 남은 시험은 교실에서의 교육 프레젠테이션, 수영장에서의 스킬 시범과 교육 시뮬레이션, 응급 구조, 바다에서의 교육 시뮬레이션이다. 특히 교육 시뮬레이션 시험은 교육생이 교육을 받는 중에 잘못하는 행동을 바로잡아 주는 것인데, 우리 강사 수험생들이 각자 돌아가며 초보 교육생 역할을 해야 하다 보니, 잘못하는 행동도 쿵짝이 맞지 않으면 혼돈의 카오스로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한 번쯤 교육생 역할도, 강사 역할도 해 보면서 그 느낌을 미리 기억해 두어야 본시험 때 자칫 멘붕에 빠질 위험이 없을 거란다.


어설픈 오픈워터 교육생을 연기하는 어설픈 강사 지망생


우리는 오픈워터 과정을 배울 때의 다이빙 꼬꼬마 때의 (남아 있지도 않은) 기억을 되살려 최대한 어설픈 실수를 연출해야 했다. 그렇게 꾸며진 실수의 연기마저도 어설퍼, 구경하던 나머지 동기들은 웃기 바쁘고 과락으로 침울해 있던 쭌도 잠깐 동안은 걱정을 잊은 듯 웃고 떠들며 피로도 풀고 긴장도 풀어 갔다.




시험 둘째 날, 여러 팀들이 돌아가면서 시험을 보도록 일정이 짜였는데, 우리는 오전에 수영장에서 스킬 시범과 교육 시뮬레이션을 하는 일정이다. 강사 과정 준비하면서 몇 번 멘붕을 겪었더니 오히려 지금은 담담하다. 넓고 깨끗한 수영장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뿐, 시험에 대한 걱정은 크지 않았다.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설명도, 물속에서 진행하는 스킬 시범도 별 무리 없이 끝냈다. 동기들도 별 어려움 없이 통과한 것 같다.


남은 시험은 교실 프레젠테이션과 응급 구조, 그리고 내일로 잡힌 바다 실습 시뮬레이션이다. 특별히 어려울 것이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동안 준비해 온 것들이 오늘과 내일 결판이 난다고 생각하면 남은 시간 쪼개서 하나라도 더 봐야 한다. 그런 마음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어서 식당을 독서실 삼아 모두들 책을 씹어 먹을 듯이 마지막 발표 준비를 해 댔다.


오후에는 시험인 듯 아닌 듯 한 강사 응시생 전원이 참여한 응급구조 실습 워크숍이 수영장에서 있었고, 뒤 이어 진행된 응급구조 시험은 이미 시험 같은 연습을 한 직후라 모두들 아주 가뿐하게 통과했다.


시험 잘 보라고 레스큐(구조) 워크샵을 시험 직전에 해 준다.


교실 프레젠테이션 역시 감독관 선생님과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 진행되어 아주 유쾌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으레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노마 코스디렉터의 학생들이 대부분 발표가 훌륭하다는 얘기를 들으니 역시 우리가 잘해서 그렇구나라는 자신감(?)도 생긴다. 그렇게 기분 좋게 프레젠테이션 시험을 마치고 나오니, 그새 재시험을 본 쭌이 세상에 더 없을 밝은 표정을 짓고 있더라. 다행히 가뿐히 재시험을 통과해서 어제부터 이어온 24시간의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진 모양이다.


쭌의 필기시험 과락의 구렁텅이에서도 벗어났겠다, 전체 시험 일정도 거의 끝나가고, 분위기도 순조롭게 적응이 되니 다들 마음이 풀렸다. 어제보다는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생겨 근처의 성류굴 입구의 관광지에서 나들이 기분을 내며 이미 시험이 다 끝난 것 같은 기분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걱정이 다 사라진 것만 같던 성류굴 근처에서의 망중한


마지막 날의 바다 실습 시험이다. 좋은 분위기를 타고 있지만, 바다는 또 다른 세상이다. 지난 동해 투어에서도 바다의 변화무쌍 예측불가를 여실히 느꼈는데, 울진의 바다라고 그렇지 않으라는 법이 없다. 물속 세상은 또 겉만 봐서는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는 일이다.


역시 동해의 바다는 울진이라고 다르지 않다. 물은 역시 차고, 물속은 뿌옇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 조금씩 걱정이 밀려온다. 이렇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교육생의 실수를 어떻게 잡아내야 할지. 게다가 감독관의 수신호를 제대로 보고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건지도 걱정이다.


한 명 한 명씩 돌아가며 감독관이 부르면 그룹을 이룬 응시생들이 한 칸씩 밀리듯이 강사와 교육생 역할을 하며 시험을 치렀다. 역시나, 감독관의 수신호가 잘 보이지가 않는다. 바짝 붙어서야 겨우 지시를 알 수가 있었고, 그에 맞춰서 강사 역할도, 교육생 역할도 해야 했다. 이렇게 앞이 잘 안 보이다 보니, 오히려 실수를 하는 교육생 역할을 하는 사람은 더 잘 보이게 움직여야 했고, 다음 순서의 동기들도 그에 맞춰 각자의 역할을 더 뚜렷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바다 시험도 무사히 끝났다. 바다에서 나오는 중에도 감독관을 하신 선생님이 노마팀들은 항상 보면 세심한 것들까지 신경 써서 배운 티가 난다고 얘기하신 걸 보니, 어제의 프레젠테이션 시간에 들은 칭찬도 그냥 한 얘기는 아니었겠다 싶다.


시험이 끝났다. 더운 여름 매일 칼퇴근을 하고 보낸 늦은 저녁,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보낸 주말들, 피자 먹고 남은 걸 가져와 집 냉장고에 쌓여 있는 피클과 핫소스, 최저치를 경신한 몸무게, 아직도 호머 심슨 턱수염처럼 남은 마스크 탄 자국 모두가 보상을 받을 시간이다.


바다 시험을 마친 후 샤워하고 체 말리지 못한 머리를 휘날리며 강사 인증서(Certificate) 수여식에 급히 왔다. 밝은 태양 못지않게 모두들의 표정 역시 밝다. 특히 쭌의 표정이 더 그렇다. 감독관 선생님들이 손수 싸인해 주신 인증서를 새로이 강사가 된 사람들 이름을 부르며 나눠줬다. 홀가분한 마음에 어디 가서 사진 찍히는 거 좋아하지도 않던 사람들이 기념사진 찍는다고 여기저기 몰려 돌아다니느라 그새 머리가 다 말랐다.


강사 인정증을 수여하시는 PADI 김부경 감독관


지금까지의 줄어든 체중과 다시 쌓인 피자치즈를 보상 받는 강사 인정증


스쿠버다이빙이 뭔지도 모르고 친구 따라 오픈워터를 배웠다가, 이제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다니. 단순히 취미 이상의 인생의 새 길의 문을 열고 발걸음을 내디딘 느낌이다.


당장은 "드디어 끝!"이라고 홀가분한 마음이 든다. 다다르고자 하던 고지에 이르니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진 것 같다. 하지만 마치 구름을 넘어 산꼭대기를 오르니 주위에 더 높은 봉우리들이 보이는 것처럼 이 앞엔 또 어떤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설렘이 오히려 강사 준비 때 보다 더 커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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