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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Nov 13. 2018

깊어지는 수심(水深), 깊어지는 수심(愁心)

프리다이빙-14 | 고급 프리다이버의 고뇌 | 2015년 11월

피곤하던 첫날은 무리한 연습은 피하고 설렁설렁 하자는 마음으로 쉬었더니 그럭저럭 피로는 좀 풀린 것 같다.


오전은 수영장 연습이다. 수영장 연습이 얼굴 타기 정말 좋은(?) 시간인데, 오늘은 구름이 끼어 더위도 덜 하고 얼굴 타는 것도 좀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근데 흐린 날도 얼굴 타기는 마찬가지라지?)


프리다이빙 코스의 수영장 훈련은 레벨에 따라 다른 점은 기록 기준이 단계 별로 높아진다는 것 말고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크게 없다. 고급 프리다이버 코스의 이수 기준은 계속해서 프리다이빙에 관심을 놓고 있지 않은 나에게 대수롭지 않은 목표이다.


DNF(Dynamic No Fin. 잠영)을 할 때 중성부력에 맞춰 수영장 물 중간에 맞춰 가만히 미끄러지듯이 떠 가는 것이 조금 어려웠을 뿐이다. 대신 나 스스로의 성취를 위한 목표들이 있어서 이것으로 나의 도전을 대신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STA(Static. 숨 참기)부터 지난번에 세웠던 5분 30초에 달하는 기록에는 턱없이 모자란 시간에 '아, 힘들어서 못하겠다.'라는 마음으로 멈추었다. 정말 힘들었다. 숨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기보다는, 온몸이 못 견디게 지치는 느낌이었다.


DYN(Dynamic. 핀 잠영)도 강사 코스 기준에 맞춰 시도를 했지만 역시 달성하지 못하고 힘들어 포기. 핀을 좋은 걸 신으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강사님 얘기로 위안을 삼아야겠다.


그보다 더 큰 도전이자 걱정은 수영. 이건 오직 강사 코스 패스만을 위한 목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00m를 10분에 들어와야 강사 코스를 패스할 수 있다.


지난번에도 많이 못 미친 기록으로 좌절했는데, 지금은 좀 나아졌을지 모르겠다. 막판에 힘들어지니 초반에는 힘을 아껴야 할지, 후반에 뒤쳐지는 기록을 대비해 초반에 속도를 높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되는대로 해 봐야지.


수영장 왕복이 두 바퀴쯤 남았을 때는 정말 숨을 헐떡대면서 악으로 해야 했다. 힘이 좀 빠져 고개를 덜 들라치면 물도 한 모금씩 꼴딱하게 되고. 그렇게 겨우 도착한 기록은 10분 하고도 23초! 조금만 더 노력하고 연습하면 10분 기록을 깰 수 있겠는가? 근데 도저히 더 줄일 수 없을 정도로 힘든데...


구름이 낀 Tres Sophias 수영장


오후에는 이론 수업을 진행하고, 셋째 날 다시 바다에 나갔다. 피로가 좀 풀렸을까 생각했지만, 첫 워밍업을 하면서부터 벌써 첫날에 느꼈던 것과 비슷하게 지친 느낌을 받는다. 이거 뭐 나이 탓인가... 몸이 피로를 느끼면 마음도 의욕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휴-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되는 데까지만 하자.


그런 마음가짐 때문인지, 아니면 워밍업이란 게 원래 그런 건지, 두 번째 워밍업부터는 힘들다는 느낌은 많이 줄었다.


고급 프리다이버 과정 완료를 위해서 해야 하는 것들은 바다에서도 별 도전 과제가 되지는 않았다. 역시 천재... 이제는 수심이 깊어지는 느낌을 실전에 투영해야 하는 단계가 되었다. 30m 수심에서 가졌던 '도대체 이 이상의 수심은 어떻게 가는 거지?'라는 의문은 마우스필 기술을 배우면서 말끔히 풀렸다. (마우스필 얘기는 다음 편에...) 마우스필을 배우고 나니 30m 수심에서도 광명이 비치는 것처럼 문이 열렸다.


하지만 그 광명 오래 가지 못했다.


40m 부근에 이르자 교실 수업에서 말로만 듣던 "폐압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 이런 느낌이 존재하는구나. 프리다이빙을 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못 느꼈을 그런 느낌.


30m 이전에는 몰랐던 가슴을 짓누르는 수압을 온전히 경험한다는 것이 고통스럽다기보다는 신비로웠는데, 오히려 고통스러웠던 것은 마치 앞을 알 수 없던 길에서 안개가 걷히나 싶더니 눈앞에 거대한 산을 만난 것처럼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을 마주친 일종의 당혹감 같은 것이었다.


물론 마우스필을 배우고 30m 수심에서 느꼈던 장벽을 금세 넘어섰으니 40m부터 높아지는 장벽도 분명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겠는가.


과정 마지막 날에는 워밍업을 한 후 도전 수심을 50m로 두었다. 전날 기록이 46m였으니 50m면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수심이겠지. 하지만 욕심은 없었다. 어쩌면 욕심이 없어서였을까? 40m 부근이 다가오자 가슴과 목구멍에 들어가는 힘이 아차 하는 순간 풀려버렸고, 그러자 기도가 열리면서 애써 잡아두었던 이퀄라이징용 공기가 폐로 돌아가 버렸다.


이렇게 되면 되돌릴 수 없다. 털끝만큼의 미련도 없이 몸을 돌려 천천히 올라갔다.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어제 46m 기록을 냈을 때도, 50m 도전을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 올라갈 때도 드는 생각은 같았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 숨 쉬고 싶다.'


물속에 들어가면 신비로운 고요함에 매료되어 나만의 세상에 빠져드는 것 같다가도, 가슴을 누르는 엄청난 수압과 이제는 너의 세계로 돌아오라는 몸의 신호인 컨트랙션이 더해지면, 주체할 수 없는 생존 본능으로 밝고 따뜻한 물 위로 향하게 된다. 물 위로 올라와 회복호흡을 몰아쉬면서 '이번에도 힘들었지만 별 탈 없었군.'이란 안도감이 든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아, 이 힘든 걸 계속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물에서 나와 몸에 물이 마르고, 햇빛에 몸이 따뜻이 달아오르고, 저녁을 먹고 배가 불러 노곤해지고, 여기에 또 맥주 한잔 시원하게 목을 넘기고 나면, '하아... 다시 물에 들어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매번 반복되면서도 나의 잘못은 아닌 일이다.


잡념을 잊게 만드는 한바탕의 소나기. 작은 수영장에서 동네 꼬마들이 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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