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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강사 Apr 14. 2019

환상적인 빛내림, El Pit

다이빙 여행 | 칸쿤-10

멀고 험한 길을 달려 다시 온 칸쿤. 하지만 도착하니 아침이라 쉴 새도 없이 오늘의 일정이 시작된다. 힘들게, 일정을 줄여서 온 터라, 쉬라 그래도 악착 같이 나가야 할 판이다.


먼저 와 있던 노마 강사님과 다른 다이버들이 잡아 둔 숙소는 상당히 깔끔하고 아늑하다. 노마 강사님이 챙겨 주시는 간단한 아침과 홍삼엑기스를 먹고는 짐을 풀어 장비를 들고 나섰다.


내 일정이 하루 줄어서, 같이 가려고 아껴 둔 포인트들이 있었지만 두 군데 밖에 가지 못한다.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은 Cenote Angelita. 스페인어로 "앙헬리따"라고 하는 이 곳은 수심 30m 부근의 안개처럼 깔린 "물속의 강" 풍경으로 매우 유명한 곳이다. Cenote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라도 인터넷에서 한 번 쯤 사진으로는 봤을 그런 곳이다. 그런데, 여기는 멀기도 하고 어제 비가 와서 시야가 좋지 않을 거라는 가이드의 판단에, 앙헬리따와 비슷하다는 El Pit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El Pit은 입구가 지면보다 낮은 곳에 있어서 다이버도 계단을 걸어 내려가야 하지만, 장비를 들고 내려가는 대신 줄에 걸어 올리고 내린다. 들고 내려 가는 것보다는 훨씬 편하네. 날씨도 좋은 데다 장비를 올리고 내리는 모습과 잔잔한 세노테에 하릴없이 가만히 떠서 쉬고 있는 다이버들의 모습을 보니 세상 모든 평온함과 고요함을 여기에 다 모아 둔 것 같다.


수면이 지면보다 훨씬 아래에 있어서 공기탱크는 줄로 내려주는 것이 새롭다.
수면에 떠 있으면 세상 평온하고 적막한 게, "Pit"이라는 이름보다 "Haven"이 더 나을 것 같다.


수정처럼 맑기만 해도 눈이 시릴 것 같은데 오늘은 햇빛이 열일해서 El Pit의 시그니처라는 한줄기 광명의 빛내림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 빛은 그대로 물속으로 이어져 바닥까지 이어진다. 바닥이 너무 선명히 보여, 수심 40m에 이르는 깊은 곳임에도 내려가면 바닥에 금방 닿을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긴 여정과 오늘 아침의 소동에도 불구하고 세노테의 물속에서 축복처럼 내리는 빛을 보니 세상 편하고 아늑하다.


Cenote El Pit의 시그니처라는 한 줄기 빛내림. 노마 강사님 덕에 인생샷 건졌네.


얕은 수심근처에는 아지랑이처럼 흐릿한 물이 있는데 Halocline이다. 사람들이 오가서 계속 흐리게만 보이는 모양인데, 가만 있으면 거울 같은 경계면이 생기게 될까?


헤일로클라인 (Halocline)이란, 비중이 높은 (무거운) 바닷물과 비중이 낮은 (가벼운) 민물이 만나 섞이지 않고 경계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물과 물끼리 만났음에도 섞이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한데, 그것이 너무도 거울면 같이 극명해서 직접 보면 이게 진짜인가 싶은 의심이 들 지경이다.


바닥에는 분명 우리보다는 훨씬 오래전부터 자리잡고 있었을 것 같은 다란 나무들이 희미한 수중의 강과 함께 근사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앙헬리따에서 못보는 풍경을 여기서라도 볼 수 있으니 아쉽지는 않다.



다른 다이빙처럼 물고기를 보는 것도, 거친 물살에 휩쓸리는 것도, 미로같은 동굴을 탐험하는 것도 아닌, 마치 넓고 깊은 수영장에서 연습이라도 하는 것 같은 다이빙이었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힐링이 된다. 특히 하늘에서 내리쬐는 이 한줄기 광명을 물 속에서 받는 기분이란, 마치 선택된 자에게 주는 축복을 한몸에 받는 기분이다.


https://youtu.be/OmCIJI1cJ1g

세노테 El Pit의 환상적인 풍경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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