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탱강사 Mar 31. 2019

다시 찾아온 세노테, 그 험한 여정

다이빙 여행 | 칸쿤-09

처음 세노테를 왔을 때처럼 두 번째 칸쿤도 그리 오랜 계획이나 깊은 고민 없이 결정되었다. 노마 강사님이 친한 다이버들과 동굴 다이버 코스 교육을 위해 세노테 투어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여, 나도 같이 한 번 가 볼까나? 하고 농담처럼 Sophy에게 던진 것이 결국 실현된 것이다. 비용이 만만치 않은 액수라 주저하던 나를, 친한 사람들과 가는 것만도 좋은데 그들이 좋은 사진가들이기까지 하니, 더 좋지 않겠느냐는 놀라운 설득력으로 납득시켰다. (아내 눈치를 보는 다른 남편들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될 것 같은 상황)


첫 칸쿤 여행도 가는 길이 순탄치 않았는데, (순탄치 않았던 첫 여정 이야기 - https://brunch.co.kr/@divingtang/81) 두 번째 투어는 더 했다. 칸쿤이랑 나랑 뭐가 안 맞나? -_-;;; 이미 잡아 둔 여행 일정이 완전 돌발 이벤트인 대통령 보궐 선거와 겹쳐 버렸다. 그나마 다행히도(?) 출발 날짜를 하루만 미루면 나머지 여행 일정은 맞출 수 있었다. 여행도 중요하지만 투표를 안 하면 여행 안 보내 준다는 Sophy의 엄포 때문에라도 투표는 당연히 하고 떠났다.


계획을 급히 변경하다 보니 항공편이 길어졌다. 안 갔어도 될 도쿄를 거쳐 가는 여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비행기에 문제가 생겨 칸쿤과는 영 먼 곳인 샌프란시스코로 간 다음 다시 LA를 거쳐 칸쿤으로 가란다. 그것도 9시간의 환승 시간을 더해서. 늘어난 경로와 비행기에 문제가 생겼던 3시간까지 보태면 한 15시간을 까먹게 생겼다. 우중충한 샌프란시스코에서의 9시간은 보람 있는 시간이 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다. 잠깐 시내를 나가 Super Duper 햄버거를 먹은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


어쩌다 보니 길어진 여정
계획도 변경된 데다, 비행기 문제로 먼 길을 가게 생겼다. 무려 인천-도쿄-샌프란시스코-LA-칸쿤의 여정...
우중충한 날씨의 샌프란시스코. Super Duper 햄버거가 맛있어 봤자 위로는 잠깐.


칸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이른 아침. 다행히 이번에는 내 짐도 같이 나왔다. 공항의 세관 게이트를 나올 때 커다란 버튼을 누르게 되어 있는데, 녹색 불이 들어오면 통과, 빨간색 불이 들어오면 짐 검사를 받아야 한다. 특별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복불복 시스템이다. 앞의 승객들은 모두 녹색. 아하하. 설마 굳이 내 차례에 빨간색 불이 들어오진 않겠지. 내 얼굴에 "한국인"이라고 쓰여 있기라도 한 건지 세관원이 나에게 "버튼 누르세요."라고 한국말로 웃으면서 얘기해 준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아! 왜! 또! 왜 하필 내 차례에 빨간색 불이 들어오는 건데!? 다른 건 괜찮은데, 인천 공항에서 3만 원이나 내고 따로 포장해 온 프리다이빙 핀을 뜯어야 한다. 이거 흠 나지 않게 잘 풀어서 계속 재활용해야 되는 건데... ㅠㅠ


하지만 공항 세관에 그런 배려는 없었다. 골판지로 된 포장 박스의 한 귀퉁이를 뜯어 뭐가 들어 있는지를 보여줘야 했다. 검사하는 세관원도 울상인 내 표정이 안돼 보였는지 검사는 살살(?)하고 통과시켜줬다. 에효, 여기가 미국이 아님을 다행으로 생각하자. 미국이었으면 포장 박스를 온통 뜯어버렸을 거야.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나오면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로밍을 해서 쓰려고 했지만 데이터 통신이 안 터진다. 이래서야 먼저 와 있던 노마 강사님과 카톡을 할 수가 없다. 노마 강사님이 나를 위해 픽업 택시를 예약해 줬다고 그랬는데,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이 모두들 떠나도록 나를 맞으러 온 택시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해 봐도 연결이 안 되는 걸 보면 노마 강사님은 로밍을 하진 않은 것 같고. 이를 어쩐다... 앗! 그래, SMS로 집에 있는 Sophy에게 연락해서 이걸 노마 강사님과 중개 대화를 해 보자. 일단 Sophy는 내가 보낸 SMS를 잘 받아 줬다. 노마 강사님께 카톡을 보냈다는데 아직 답이 안 온다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공항 앞 승강장.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어 물어봤다. 목에 직원 카드도 메고 있고, 들고 있던 서류에 내 이름과 내가 탈 택시 정보까지 있다. 그렇다면 이 사람 얘기를 들으면 택시를 탈 수는 있겠구나 싶었다. 나를 픽업해 갈 택시 기사랑 잘 알고 있으니 연락을 해 주겠단다. 어딘가 전화를 걸더니 금방 올 거란다. 그래도 뭔가 애매한 느낌이라, 예약해 둔 바우처를 보여주면서 이 사람이 오는 것이 맞냐고 캐물었는데, 얼버무리는 식으로 다 연결되어 있으니 상관없다는 식의 얘기를 한다. 


이거 뭔가 수상하잖아?

여행객들이 빠져나간 칸쿤 공항. 이때만 해도 사람이 좀 있었지만, 조금 더 있으니 아예 사람이 안 보였다.


답이 안 와 1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졌던 노마 강사님과 연락이 되었다는 SMS가 Sophy로부터 왔다. 그래서 칸쿤-서울-칸쿤의 위성 생중계 쓸데없이 지구 한 바퀴 돌아오는 대화가 이루어졌다.


노마 강사님은 운전사가 약속 장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러고, 나는 약속 장소에 와 있지만 운전사는 없고. 옆에 있던 공항 직원은 운전사가 곧 온다 그랬지만, 내 바우처에 적힌 이 운전사가 오는 거냐고 물으니 상관없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와서 그런지 대화도 영 매끄럽지가 못하다.


그 와중에 공항 직원이 연락한 운전사가 왔다. 오자마자 나한테 반갑다고 인사를 하길래, 당신이 바우처에 적힌 "미겔"이 맞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안토니오고 미겔은 자기 친구란다. 안토니오나 미겔이나 우리나라에서 준호나 지훈만큼 흔한 이름 아닌가? 그러더니 금방 내 짐을 차에 싣고 있다. 아니, 잠깐, 기다려 보라구. 당신이 나를 숙소로 데려다 줄지, 인질로 삼아 몸값을 요구할지, 아니면 비밀의 마야 신에게 인신 공양을 할지 어떻게 알겠냐구. 그런 나의 걱정에 아랑곳없이 이 친구 안토니오는 나보고 빨리 가자고 재촉한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를 드라이버 안토니오. "이 친구 시원찮게 생겨서 얼마 못 받게 생겼어."라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Sophy의 걱정에 가득 찬 문자가 왔지만, 나는 이미 차에 탔고, 차 문이 닫히고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아니, 이 순간의 느낌은 방아쇠는 당겨졌다의 느낌이었을 거다. 노마 강사님이 전해준 얘기로는 미겔이 친구 안토니오를 보내 나를 태우고 올 거란다. 그리고 전화번호도 하나 보내줬다. 여기로 전화를 걸어 "당신이 미겔이야?"라고 물으니 맞다고, 그러고 뭐라뭐라 얘기했는데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다. 아마도, 맞겠지...라고 생각하자.


운전 중이던 안토니오가 물 마시겠냐고 권한다. 음? 이거 마셔도 되는 건가? 뚜껑은 "끼릭"하고 따는 소리가 나는데? Sophy에게 물 마셔도 될까라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절대 마시지 말란다. 근데 난 이미 한 모금 마셨는데... (우린 멕시코를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지...)


나를 태운 차는 평지의 도로를 달렸다. 넓고 넓은 평지의 수풀에는 가끔씩 가게들이 나오기도 하고, 마을이 나오기도 하고, 으리으리한 리조트의 정문이 나오기도 한다. 첫 여행에서는 깜깜한 밤이라 암흑만 보이던 곳이 이런 곳이었구나.


다행히 차는 으슥하지 않은 마을로 들어섰고, 내가 와야 할 곳으로 무사히 도착했다. 여기서 노마 강사님도, 원래 나왔어야 할 미겔도 만날 수 있었다.


미겔, 너는 왜 내 기대대로 나를 만나러 오지 않아서 이렇게 힘들게 만든 거니? 근데 그렇게 귀엽게 웃으면 내가 화도 못 내잖아?


힘들게 왔더니 노마 강사님이 먹고 힘내라고 아침을 차려 주셨다. 거참 건강해 보이는 아침일쎄.


매거진의 이전글 플라야 델 카르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