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들여다보는 그들의 삶
페루 이키토스에서는 주 이동수단이 툭툭이다. 자동차는 거의 안 보이고, 도로 위는 툭툭이가 점령했다. 가끔 독특하게 생긴 버스가 지나다니는 걸 봤는데 구글맵에 경로가 뜨지 않아 타 볼 엄두를 못 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현지인 친구 레오의 즉흥제안으로 이키토스 생활 3개월 차만에 드디어 처음으로 버스를 타봤다!
현지 조산사 레오를 따라 가정방문을 마친 뒤, 보건소로 돌아가야 했는데 갑자기 레오가 "너네 버스 타볼래?" 하더니 냅다 달려오는 버스로 돌진했다. 우린 얼떨결에 레오를 따라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는 창문도, 심지어 문도 없었다. 사방팔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려 얼굴을 마구 때렸지만 참을 수 있었다. 꽉 막혀 더운 것보다는 이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키토스의 버스는 생김새뿐만 아니라 운영 방식도 조금 특이하다. 일단 정확한 승하차 장소가 없다. 서 있다가 손을 흔들면 버스가 멈춰 나를 태워준다.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내리고 싶을 때 일어나서 운전하고 있는 기사님께 2 솔(약 700원)을 내면 세워준다.
처음 올라탔을 땐 좀 낯설었지만 어느새 나는 사방이 뚫린 버스에 적응했다. 그렇게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땀을 식히고 있는데 흘러나오는 음악이 꽤나 경쾌하다. 남미의 음악은 흥이 넘친다. 듣고 있으면 절로 몸을 들썩이게 되고 어느새 내 몸은 바운스를 타고 있다.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제야 내가 이키토스를 제대로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는 툭툭이를 타고 맨날 가던 길로만 왔다 갔다 했다. 그런데 버스를 타니 좀 더 마을 안 쪽까지 지나다닐 수 있었고, 좀 더 가까이서 현지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하교하는 아이들, 가판대에 닭, 과일 등 물건을 파는 아주머니들, 의자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땀을 식히는 할아버지들. 나에게는 낯설지만, 이들에게는 일상인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마치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찍는 느낌이랄까.
나는 여행을 가면 택시를 타기보다는 걸어 다니거나 버스로 이동하는 것을 선호한다. 시간은 좀 더 걸리지만 천천히, 좀 더 가까이서 그 도시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역시나 버스를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에서야 이 도시를, 이키토스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언젠가 오늘의 이 순간이 떠오를 테고, 또 그리워지는 날도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