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80세 노인의 몸으로 태어나 거꾸로 나이를 먹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영화는 개봉 당시 45세였던 브래드 피트(벤자민 역)의 전성기 모습을 부활시켜 화제를 모았는데, 브래드 피트가 젊어진 모습으로 나타낼 때마다 영화관은 여성 관객들이 내뱉는 나지막한 탄성으로 채워지곤 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원작은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단편 소설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대부분은 원작의 방대한 내용을 짧은 시간에 담으려고 고군분투하지만, 이 영화와 원작은 그 반대인 것 같다. 영화는 3시간에 걸친 긴 런닝타임을 통해 벤자민의 삶을 잔잔하게 그려내지만, 원작인 소설을 읽는 데는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원작 소설을 모티브로 할 뿐 원작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의 주요 플롯은 시간을 초월한 벤자민과 데이시(케이트 블란쳇 분)의 사랑이다. 하지만 데이시는 영화에서만 등장하는 인물로 원작 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원작은 벤자민의 로맨스보다는 남들과 다른 일생을 살며 발생하는 그의 소소한 변화에 집중한다. 정교한 분장과 CG로 세월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의 역량도 놀랍지만, 세월을 따라 변해가는 벤자민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생생하게 표현해낸 원작은 영화보다 한 차원 높은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에서 벤자민의 아버지는 벤자민을 양로원에 버리지만, 원작 속 아버지는 충격에도 불구하고 벤자민을 평범한 아이로 양육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벤자민이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것 없다고 끊임없이 자신을 세뇌하며 나이별 육아 메뉴얼에 따라 딸랑이나 장난감을 던져주고, 아동복을 맞춰주는 모습은 한 편의 시트콤같이 익살스럽다.
세월이 지나며 변해가는 아내와 벤자민의 관계라던가, 갈수록 고집이 세지고 말썽만 부리는 아이가 되어가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고 남들 앞에서는 삼촌이라 부르라 부탁하는 아들 등 원작은 영화보다 훨씬 현실감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닮은 듯 다른 매력을 지녔지만, 영화와 원작이 주는 메시지는 동일하다. 일반인과 정반대로 흘러가는 벤자민의 일생 역시 보통 사람들의 인생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것.
브래드 피트와 가슴 아련한 로맨스를 좋아한다면 영화를, 허를 찌르는 상상력을 원한다면 원작을 추천한다. 물론, 둘 다 봐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통플러스 에디터 김정아 jungy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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