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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용호 Jan 30. 2019

7. 차라리 도로 위를 구를래.

11월 4일, 둘째 날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 앞에서 고민한다. 생각이 절정에 이르면 마침내 결정한다. 그 결과에서 만족할 때도 있지만 불만족할 때가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후회의 맛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후회를 할까? 우린 항상 그 순간에 최선의 선택을 한 것뿐이지 않은가. 이것은 최악일 때도 있지만 때로는 최고일 때도 있었다. 그게 사는 맛이고 우린 이 맛을 경험이라고 한다. 나의 선택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호주에서 처음 본 평야에서 대자연의 위대함을 느꼈다. 그 위대함을 잊지 못해 시골에서 살던 나는 주말에 도시로 가지 않고 호주 자연경관을 찾아다녔다. 그 무엇도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우린 인간이다. 대자연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조형물을 만들었고 그것은 이제 예술이 되었다. 우리는 인간이란 생명체도 위대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난 방독면도 없이 오염된 매연을 마시고 인간의 사망률을 높인 자동차를 맨몸으로 피하면서까지 교량의 미를 보기로 했다.


 그렇다. 고속도로로 간다. 내 몸이 미소를 지었다.



 “학생, 그럼 조심이 가요.”

 “감사합니다. 아저씨.”



 햇빛에 달궈진 텐트를 정리하고 배낭을 멨다. 물이 다 떨어져 화장실에서 물을 떴다. 그리고 다시 출발했다. 조금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아저씨가 잘 가라고 오른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감사하다고 왼손을 흔들었다. 마을의 끝을 알리는 짧은 다리를 지나 삼거리에 도착하는 순간 떠올랐다. 



 “아, 맞다. 슈퍼 가야 하는데.”



 간식으로 채운 배는 벌써 텅텅 비어 있었다. 다시 뒤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내 몸이 제발 그냥 가자고 애걸복걸했다. 어쩔 수 없이 길을 이어 갔다.


 고속도로는 일반국도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었다. 고속도로의 첫걸음은 날쌔게 지나가는 자동차의 굉음과 함께 시작됐다. 폭주를 즐기는 자동차의 웃음소리가 이렇게 컸을 줄이야. 인도가 없는 고속도로가 한층 더 살벌하게 느껴졌다. 최대한 차선 끝으로 가려고 노력했다. 위험하다는 마음보다 미안함이 더 컸다. 고속도로에서 사람이 걸어간다고 누가 예상할까. 개인의 목적으로 인해 남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었다. 그래서 더욱더 사회성 없는 모질이처럼 내 몸을 구석으로 몰았다.


 하지만 그 구석에는 또 다른 시련이 있었다. 바로 곤충들이었다. 고속도로에 붙어있는 식물들은 그야말로 숨겨진 대자연이었다. 그곳은 곤충들의 낙원이자 베이비붐 시대였다. 별에 별 곤충들이 내 면상을 향해 날아왔다. 너무 놀라 처음에는 움찔하며 차선 안으로 갈 뻔했다.


 좌측에는 자동차들이, 우측에는 곤충들이. 진퇴양난에 처해버렸다. 나중에는 역정이 나서 날아오는 곤충들에게 박치기를 시도했다. 장수말벌과 사마귀일 경우는 나약한 대가리를 조아리며 차가 오는지 한 번 스윽 보고 잠시 몸을 기울여 지나갔다.





 어느덧 터널이 보이기 시작했다. 차 없이 터널 앞을 서니 이렇게 의리의리 해 보일 수가 없었다. 아까 농담처럼 말했던 인간의 위대함이 느껴졌다. 자동차로 이곳을 지나갈 때는 창문을 다 올렸는데 지금은 창문 대신 목토시를 눈 밑까지 올렸다. 터널로 들어갔다.


 내가 밟을 길이 아스팔트에서 하수도로 바뀌었다. 인도로 만든 돌이 아니다 보니 밟을 때마다 기우뚱거려서 혹시나 무너지면 어쩌지 라는 망상의 꽃도 펴봤다. 터널의 풍경이 수미상관이라 뭔가 입구로 빨려 들어가는 블랙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약에 블랙홀이 지구를 삼킨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는 몽상가가 되려는 순간 터널 밖으로 나왔다. 작은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해남 7km.





 고속도로로 걷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다른 사람들도 이 길을 걸었을까? 아니면 국토대장정 사람들만의 길이 따로 있지 않을까? 설마 그 길이 소방관 아저씨가 말한 구시저수지 방향일까?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고속도로에 있는 차들을 봤다. 좌측 차선에서 수많은 자동차들이 나를 지나쳤다. 그리고 우측 차선에는 나 혼자만이 걸어가고 있었다. 한참 전부터 말이다.


 다른 생각이 들었다. 굳이 다른 사람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어야 할까? 꼭 그것이 정답은 아니지 않나? 이 길을 처음으로 걷는 이가 나라도 상관없지 않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길은 나만의 길이다. 나의 길은 정해졌고 남들이 뭐라 하든 나는 이 길을 걸어갈 것이다. 내 안에서 결론이 내려졌을 때 표지판 하나가 정보를 주었다. 



‘국토종단 땅끝 출발 29.3km 지점입니다.’



하지만 나에겐 더 이상 필요 없는 정보였다.





 쉬고 싶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할 때는 몰랐는데 쉴 곳이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그냥 바닥에 누워 버리고 싶었다. 만약 본능대로 했다면 나는 관 짝 행이 되고 누군가를 살인자로 만들게 될 것이다. 강제로 쉬지 않고 걸었다. 


 어깨가 통증 때문에 가방 끈을 거의 어깨 끝 라인까지 옮기기도 했다. 무릎은 이미 아사직전이라 고통을  즐기기 시작했다. 발은 쉬지 못해 물집이 조금 잡힌 상태였다. 해가 어느 정도 내 눈높이가 되자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안동리 마을 입구에 있는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고 싶었는데 내 몸이 무리라고 했다. 이제 얼마나 더 걸어야 하나 확인했다. 여기서 해남읍까지 거리는 2.8km였다. 걸어서 1시간도 안 되는 거리다. 


 조금만 참자. 해남구에 도착하면 밥 먹고 바로 잘 수 있다. 이 마음 하나로 버스정류장을 못 본 척 지나갔다. 내 몸에게 미안했다.



 낮은 건물들로 수많은 간판들이 달린 해남읍. 어제 고속버스로 이곳에서 땅끝마을까지 40분 만에 도착했는데 두 발로 걸어오니 이틀이나 걸렸다. 좀 더 중심가로 들어가니 수많은 음식점들이 보였다. 중국 집, 삼겹살 집, 해산물 집, 외 많은 음식점들이 있었지만 나는 제주 흑돼지갈비 집으로 들어갔다. 만약 아침에 라면 봉투를 뜯기 전 제주 흑돼지 음식점 간판을 봤다면 분명 다른 음식점으로 갔을 것이다.


 문을 열었다. 손님은 2명뿐이었지만 음식점에 크기에 비하면 적당한 인구밀도였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가방을 내리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다리가 이 꼬라지를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앉을 때 똑같이 덜덜 떨었다. 고통을 참으며 천천히 다리를 폈다.


 양이 많을 거 같은 왕갈비탕을 시켰다. 반찬들이 먼저 나왔다. 고추, 계란찜, 김치, 깍두기, 어묵 볶음, 감자볶음이었다. 조금씩만 먹으려고 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탕이 나오기도 전에 고추 빼고 다 먹어버렸다. 아마 집이었다면 젓가락을 쓰지 않고 양손으로 허겁지겁 먹었을 거다. 아주머니가 왕갈비탕을 가지고 오며 놀랬다. 반찬이 나오고 왕갈비탕이 나오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아마 광고 3개 분량 정도였다.





 “반찬 더 드릴까요?”

 “네, 죄… 감사합니다.”



죄송하다고 말할 뻔했다. 호의를 받으면 죄송하다는 말보다 감사하다는 말을 쓰라고 엄마는 늘 말했다. 그래야 상대방과의 관계가 상하로 나눠지지 않는다고 말이다.


 처음보다 많은 양의 반찬들이 나왔다. 본능적으로 다시 반찬을 싹쓸이하고 싶었지만 또 그렇게 하면 아주머니가 리필을 해 주실 거 같아 참았다. 아주머니는 언제 반찬 그릇이 비워지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게 말을 걸었다.



 “여행 중 이신 가봐요.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하세요. 저, 근데 올라오시는 거 에요, 아니면 내려오시는 거 에요?”

 “아, 땅끝마을에서 올라가고 있어요.”

 “어디까지 가세요?”



 점심에 만난 아저씨가 생각났다.



 “안양까지 갑니다.”

 “안양이요? 경기도 안양? 정말로 요? 저 어릴 때 안양에서 살았었는데.”



 그 전엔 먹느라 아주머니를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울 거 같은 미소와 함께 눈망울이 초롱초롱했다. 


 마치 영화 '써니'의 소녀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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