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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용호 Feb 09. 2019

10.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11월 5일, 셋째 날

 처음에는 버스정류장에서 잘까 생각했다. 삼면이 바람을 막아주는 벽이고 편의시설로 의자가 있으며 깨끗한 편이기에 그랬다. 하지만 문제점이 있다. 사람의 방문이 잦다는 점. 잦은 방문은 위험도가 높아진다. 안전을 위해 사람이 없는 장소를 수색하기로 했다. 사람이 없는 곳은 사람이 무서워하는 장소다. 그래서 폐가나 무덤을 찾아봤다. 요즘 세상에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지 않은가. 허나 안타깝게도 시골길이라 내 시야에 들어오는 건 대부분의 논두렁과 듬성듬성 있는 집들이었다. 곧은길 속에 호주 번호로 전화가 왔다. 민우였다.



 “왜요.”

 “어? 살아있네. 어디고, 집 이제?”

 “뭔 집이야. 나 지금 나주 가는 길인데.”

 “나주? 나주가 어디쯤 이였지. 아, 벌써 거기가? 기름값 많이 들었겠네. 차 빵꾸는 안 났나?”

 “야, 죽을래?”

 “하하하, 농담이다, 농담. 사서 고생하느라 힘들제? 근데 생각보다 빠른 거 같은데 진짜 걸어가고 있나? 구라제, 그제?”

 “내가 뭐 하러 그런 거짓말을 해.”

 “그렇기는 한데. 보통 애들이 힘들다고 버스 타고 호텔 같은데 묵으면서 띵까띵까 하다가 돌아와서는 자기 국토대장정 했다고 떵떵거리면서 다니더라. 그런 놈들 많다! 혹시나 우리 Bro가 그런 놈들 이랑 똑같이 될까 봐 걱정이 돼가 그라제.”



 정말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이해가 안 갔다. 사람마다 여행하는 취향이 다르다. 누구는 맛집을 음식을 즐기고 누구는 명소를 찾아다니고 누구는 그곳의 정통을 체감한다. 어떻게 여행을 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다. 타인이 판단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걸 왜 남들에게 거짓말할까? 각자의 방식이 있어서 그렇게 한 건데. 좀 더 편하게 했다고 국토대장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편의를 고난이라고 억지로 읽을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어디서 자나?”

 “몰라. 최대한 사람 없는데 찾고 있긴 한데.”

 “그러고 보니까. 절이나 교회에서도 잘 재워준다.”

 “아, 진짜? 근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물론 난 모르지. 그냥 필이다, 필. 누구처럼 사서 고생하는 타입이 아니니까. 하하하. 일단 한 번 시도해보고 쫓겨날 때 기분이 어떤 지 좀 알려……”



뚝.



 종교집회장에서도 잘 수 있겠구나.



 어디에도 태양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붉은 흔적만이 남을 뿐. 선택범위를 넓혀 텐트 칠 곳을 찾아봤다. 그러다 깃발 달린 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덩굴이 우거진 담벼락, 최근에 완공된 것처럼 흉하나 없이 붉은색 벽돌로 된 집이었다. 어두워서 무슨 깃발인지 모르겠지만 태극기가 걸려 있는 거 같았다. 그 집은 마을회관이었다.


 만약 교회나 절도 가능하다면 이 곳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작은 희망의 줄을 붙잡고 가봤다. 밤이 된 줄 모르는지 마을회관은 불이 꺼져 있었다. 혹시나 해서 마을회관 문을 두드렸다.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다. 문에 종이 하나가 붙여 있었다. 담당 경찰관의 연락처였다. 전화를 걸었다. 없는 번호였다. 바로 앞에 통나무집처럼 생긴 체험학습장과 그 옆으로 작업장으로 보이는 하얀색 건물 2채가 있었다. 목에 약간 힘을 주고 주변에 마을 사람이 있나 불러봤다. 메아리조차 없었다.


 이제 다른 곳으로 가기에는 세상은 너무 어두웠다. 쓸쓸히 내 머리 위에 있던 가로등에서 불이 켜졌다. 마치 갈 곳 없는 나그네에게 불이라도 쬐고 가라는 듯. 마을회관 바로 옆으로 빈 공간 하나가 있었다. 3~4인용 텐트를 치기에 딱 알맞았다. 오늘은 여기서 자자. 혹시 마을 사람이 온다면 자초지종 설명하면 되니까. 최대한 불쌍하게.



 가방을 내렸다. 텐트를 치려고 보니 배낭 끈이 많이 헐어 있었다. 텐트와 침낭 무계를 견디기 힘들어 보였다. 텐트 끈도 많이 헐어 있었다. 최대한 빨리 갈 테니 그때 까지만 버텨 주길 바랬다. 텐트를 설치하고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은 아침에 간식거리로 산 빵으로 때웠다. 오늘은 내 허기와 합의하에 배를 채웠지만 다음에는 좀 더 넉넉하게 사기로 했다. 두 번째라서 그런지 좀 더 능숙 능란하게 준비를 했다. 손전등을 꺼내고 물통을 머리 위로 두고 베개로 쓸 신발을 침낭 밑에 두었다. 핫팩 2개를 터뜨리고 침낭 안으로 넣었다.


 마지막으로 소변을 보려 텐트 밖으로 나왔다. 물어보지도 않고 이 장소를 사용하다 보니 미안해서 마을 밖으로 나가 볼 일을 보려고 했다. 그래 봤자 마을회관이 마을 입구에 있어서 1분도 안 걸린다. 신기하게도 텐트 안과 밖의 온도는 똑같았다. 바로 앞에 보이는 하얀 건물에서 왠지 모르게 섬뜩함이 느껴졌다. 두건 물 사이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올 것만 같았다. 가로등 불빛에 얼굴부터 천천히 보이고 손에는 알 수 없는 기다란 철기가 가로등 불빛을 반사시켜 내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 같았다.


 기분 탓 이려니 하고 텐트 바로 뒤에서 볼일을 봤다. 보는 내내 고개는 두건 물 사이를 주시했다. 허겁지겁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담벼락이 바람을 막아주는 줄 알았는데 바람소리가 텐트 안으로 휘몰아쳤다. 내 몸은 바람소리 장단에 맞춰 벌벌 떠는데 텐트는 고요하게 가만히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불안함에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눈꺼풀은 더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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