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첫째 날
지금 몇 시일까? 낡아서 검게 변한 거 같이 생긴 벽시계를 봤다.
2시 59분.
보통 사람들은 3시로 보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어제 술을 마시면서 마지막으로 시계를 봤을 때에도 2시 59분이었다. 아니 2시 58분이었나? 그게 뭐가 중요한가. 1점 차이로 1분 남은 상황에 놓인 농구선수도 아닌데 말이다. 핸드폰을 켜고 시간을 봤다.
6시 19분.
버스 출발 시간은 7시 20분으로 1시간 01분이 남았다.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걸어서 20분 거리다. 운도 좋다. 알람 없이 이 시간에 일어났다니.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어제 술을 마시며 알람 시간을 맞췄다. 그래, 바로 이 자리. 내가 일어난 이 자리에서 알람을 맞추고 다시 술을 마셨다.
아!
맙소사......
여긴 우리 집이 아니다. 친구네 집인 아지트였다. 저 낡은 시계가 내 방에 있는 시계와 똑같아서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항상 아지트에서 먹고 자느라 미안한 마음에 시계 2개를 사서 하나를 선물로 줬었다. 생각해보니 그때 저 시계의 색깔이 갈색이었다. 이딴 게 뭐가 중요할까.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6시 20분.
맙소사! 1분이나 지났다니 큰일 났다.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침착하게 일어났다. 아직 친구들에겐 11월 2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들이 깨지 않게 천천히 그리고 신속히 아지트 밖을 나왔다. 그리고 뛰었다.
아직 태양도 11월 2일에 있는지 세상은 어두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시간을 확인했다. 7시 하고도 1분이 지났다. 걸어간다면 늦을 시간이기에 다시 뛰기로 마음을 먹었다.
배낭을 매기 전까진 말이다. 배낭을 메자마자 바로 택시를 불렀다. 이것은 본능이다. 이반 파블로프가 말했듯 환경의 변화에 즉각적으로 반응한 생존본능 말이다.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매표소로 갔다.
“목포 버스 아직 안 갔죠?”
“네~”
아주머니는 한 버스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다행이다.
바로 표를 사서 자리를 잡았다. 첫날부터 이렇다니 앞으로 천고만난 할 거 같은 불안감은 왜 드는 걸까. 하지만 걱정마라. 언제나 나는 위기를 기회로 바꿔왔다. 지금까지 그렇게 잘 살아왔다. 필연적인 부분이라면 무조건 실천하고 본다. 이 상황에선 게으름이란 친구는 절대 낄 수 없다. 다만 그 후로는 게으름은 나의 Best Friend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난 버스가 출발하기도 전에 자버렸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어디서 자야 할지 모른 채.
일어나기 싫었다. 정말 일어나기 싫었다. 만일 11월 3일의 태양을 봐야 한다면 목포에 도착한 이후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적어도 오늘의 나에겐 말이다.
첫 느낌은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마치 잔뜩 취해 클럽에서 추는 춤처럼 말이다. 그다음으로 든 느낌은 시끄러움이었다.
모닝콜을 그 어떤 아름다운 음악으로 틀어도 최악의 곡이 된다. 과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쿠지로의 여름 : Summer가 순간 역겨워질 뻔했을 때 이 사실을 깨닫고 모닝콜을 기본 1로 바꿨다.
지금 들리는 이 시끄러움이 기본 1이다. 그래서 일어났다. 몸뚱일 일으키면서 내가 누워 있었고 한 할머니가 내 머리를 흔들고 계셨다는 걸 깨달았다.
“학생, 이제 정신이 들어? 빨리 저 소리 좀 꺼봐.”
“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오른쪽 주머니에서 기본 1을 우렁차게 외치는 핸드폰을 꺼냈다. 알람을 껐다. 할머니와 다른 분들에게 들릴 정도로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그리곤 자리에 앉았다.
내 머릿속 메모리가 6:00 AM으로 알람을 맞췄다던데 정작 알람 시간은 9:06 AM이었다. 왜 이렇게 알람이 맞춰졌을까 생각을 해봤다.
아마 내 기억대로 6:00 AM으로 맞추려고 했을 것이다. 다만 처음에 6을 적고 폰을 거꾸로 들고 있다는 걸 인지해서 다시 돌려 알람을 맞추려고 했다면 9:06 AM이 될 것이다.
아니 잠깐만. 틀렸다.
내 추론대로 했다면 6:09 AM 된다. 9:06 AM이 되려면 여기서 하나의 조건이 더 추가된다. 바로 내가 시분 간이 구별 안 될 정도로 취해서 분 자리에 6을 적었다면 말이다. 나의 멍청함을 잊고 싶어 눈을 감았다.
전화가 왔다. 어제 같이 술을 마신 상복이었다.
“야, 어디야? 해장하러 가야지.”
“나 지금 해남 가는 중인데?”
“해남? 거기가 어디야? 너희 동네 음식점이야?”
“아니, 땅끝마을 해남! 목포 밑에 있는데.”
“지금? 뭔 개소리야, 야! 진짜로 어디야? 우리가 거기로 갈게.”
“아~ 됐어. 나 지금 너무 졸리니까. 도착하면 연락 줄게.”
그리곤 바로 잤다.
만일 다시 도착하기 전에 깨어나게 된다면 그곳은 꿈 속이길. 국토대장정 중 바라지 않던 일이 일어난다면 그곳 또한 꿈 속이길. 이 여행이 끝나도 내가 고난의 부족함을 느낀다면 그곳은 현실이길.
믿음, 소망, 사랑 중 재일은 소망이지만 아멘.
“목포입니다!”
잠결에 들었지만 아마 기사님이 말씀하셨을 거다.
정신을 차리고 창문 밖을 봤다. 별 볼일 없는 풍경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가 다시 이곳에 오려면 몇 날 며칠을 걸어야 한다. 그때도 이 곳이 이렇게 보일까. 버스가 멈췄다.
배낭을 챙겨 목포 고속터미널에 들어갔다. 목포 고속터미널은 내가 생각하던 이미지 그대로였다. 오래된 건물에 사람들이 적당히 분비며 그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반가워서 안아줄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
다만 예상치 못한 부분이 있다면 외국인들이었다. 목포에는 어떤 관광명소가 있길래 외국인들이 여기까지 왔을까. 한국인인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마치 내가 대만에서 무지개마을에 갔다 왔다고 대만 친구들에게 말했을 때 대만 친구들이 고개를 갸우뚱했을 때처럼.
만일 그들이 언어의 문제로 곤경에 처한다면 내가 그들만의 119가 되어주겠다고 다짐했다.
무인매표소로 갔다. 난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땅끝마을 해남은 해남과 땅끝마을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지한 나는 하나의 지역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땅끝마을 표를 샀다. 내가 타게 될 마지막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도착했다.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내 자리에 앉았다. 더 이상 졸리지 않았다. 심심했다. 하지만 핸드폰은 건들 수 없었다. 난 멀미가 정말 심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스나 비행기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때마다 나는 내 머릿속에서 판타지 세계로 들어갔다. 그 세계에서 나는 초능력자였다. 영혼을 옮겨 다닐 수 있는 영 능력자. 책을 읽는 그들의 몸을 잠시 빌려 책을 읽는다. 책의 내용은 그때그때 달랐다. 보통 나의 과거 또는 미래의 이야기였다. 가장 많이 읽은 책은 과거라는 시리즈 중에 후회였다.
해남에 도착했다. 하지만 해남은 출발지가 아니다. 버스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내렸다. 남은 사람이라곤 나와 3명의 남학생 그리고 노부부뿐이었다. 그들은 과연 어디로 가는 걸까. 나와 같은 사람은 여행자는 보이지 않았다. 하긴 지금은 11월이니 없는 게 당연하다.
버스에 의문이 생겼다. 맞는 길로 가는 게 맞는 걸까. 맞는 길로 간다고 하기엔 버스가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워낙 좁아서 앞에서 차가 오면 둘 중 하나는 양보를 해야 했다. 하지만 버스가 중간에 멈추고 3명의 남학생이 자연스럽게 내리려는 걸 보아 내 안의 의문을 지웠다.
학생들은 “기사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게 좀 이색적 였다. 당연한 건데 말이다. 삭막한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라고 해야 할까.
호주에서는 지나가다 모르는 사람들하고 인사하며 잘만 얘기했었다. 문화 차이가 있듯이 지역 차이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학생들이 내리고 난 뒤에 바로 노부부가 내렸다. 이제 버스에는 나와 기사님 뿐이었다.
이제 출발하나 싶었는데 멈춘 버스 바로 앞 분식집에서 아주머니가 갑자기 올라탔다. 내 눈치를 한 번 보고는 기사님 입에 도넛 하나를 집어넣었다. 그러곤 바로 내렸다. 아마 부부 사이가 아닐까 싶었다. 기사님은 운전석에 앉은 채 허리를 숙여 분식집을 깊게 바라봤다. 그러더니 손짓 한 번 하시곤 다시 출발했다.
땅끝마을 푯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버스가 급하강을 했다. 처음에는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올라가야 될 시련라는 걸 깨닫자 등이 뜨거워지며 식은땀이 났다.
시작부터 산을 타야 하다니. 참으로 영광스럽구나.
“땅끝마을입니다!”
11월 3일 오후 3시 16분. 나 홀로 국토대장정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