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첫째 날
짠 내가 났다. 도시에서는 맡을 수 없는 냄새. 맨밥 한 숟가락 퍼먹어도 짭짤할 냄새. 내 안 가득히 숨을 들이켰다. 이 공기는 하루 종일 버스 안에서 산송장 마냥 있던 개고생과 등가교환이다. 오길 정말 잘했다.
지금 느껴지는 감격을 표현하듯 나는 양팔을 벌렸다. 그 모습에 자연이 감동을 받았는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춥지도 않고 딱 시원하다 싶을 정도의 바람. 난 그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 다시 숨을 들이켰다.
바로 앞에서 한 부부가 등장했다. 남편으로 보이는 자는 술에 잔뜩 취해 보였다.
“마누라! 싸랑하는~ 우리 마누라, 일루 와봐~ 아이~ 일루와 보라니깐! 꺼억~ 하하하! 다시, 끄으억~”
“아이 참, 그만 좀 해요! 몇 번째야! 막걸리는 이제 그만 마시고요!”
아.
어쩐지 찬바람에서 따스함이 느껴지더라.
숨 쉬는 사람 바로 앞에서 트림을 하다니. 폐가 썩어가는 기분이다. 이젠 이 짠 내가 시체 썩은 내 같았다. 그러다 보니 내 눈앞에 술에 취해 비틀비틀 거리는 저 부부는 악취를 뿜어내는 좀비처럼 보였다. 방금까지의 감격은 영화의 반전처럼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고통 속에 고통이 느껴졌다.
데이비드 D. 번스가 말했던가. 생각이 감정을 만든다고. 생각만 바꾸면 저 부부가 비익조(比翼鳥)처럼 금슬이 좋아 보이겠지만 내 생각을 바꿀 마음이 없었다. 저들은 무뢰한이다. 나에게 후각 테러를 선사했다.
복수심이 불타올랐다. 스컹크처럼 방귀라도 뀌고 도망치고 싶었다. 방귀가 나오려면 음식과 함께 입에 들어간 공기가 배 속에 가스와 혼합되어 항문에서 내 괄약근의 신호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방귀는 나올 기미조차 없었다.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종일 먹은 음식이 없었다.
의식하자 느껴졌다.
공복감이 말이다.
주위를 둘러봤다. 숙박 집도 많았지만 내가 찾는 식당이 몇 배 더 많았다. 하지만 선택지가 많으면 만족도가 낮아지고 실수할 확률이 높아진다. 괜찮다.
나는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그 어떤 선택을 해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안다. 바로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심리적으로 나의 선택을 정당화하게 된다.
나는 가장 처음에 눈에 들어온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시간이라서 그런지 손님 하나 없었다. 내 머릿속 한 구석에서 맛없어서 파리만 날리는 집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꽃 봉오리처럼 피어날 때쯤 바로 ‘전라도 한정식 ’을 주문했다. 나의 선택을 정당화하게 만들었다. 이건 심리적이라고 하기보단 의도적이지 않나 싶었다.
화장실에 갔다. 상복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야, 일어났냐?”
“어, 나 방금 도착해서 이제 해장 겸 밥 먹으려고. 살다가 처음 먹는다. 전라도 한정식.”
“진짜 갔냐?”
“응.”
“정말?”
“응!”
“에라이 불효자야. 우리한테는 그렇다 쳐도 오랜만에 귀국했으면 집에 좀 있어야지. 안 그래? 요즘엔 곁에만 있어도 효자 소리 듣는데. 걱정하시니까 매일 전화라도 해라.”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오랜만에 한국에 왔는데 이틀 만에 다시 밖으로 나가다니. 내가 선택한 이 도전이 이기적으로 보였다. 현제 우리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건 아마 대화일 거다. 화목한 가정이었지만 그 날이 있은 후 상처투성가 되었다.
1년 전, 엄마는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치른 후 이제 좀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엄마 고향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그렇게 슬퍼 보일 수가 없었다. 분명 우린 웃으면서 찍었는데 말이다.
그 후, 나는 호주로 떠났고 집에는 오직 아빠와 누나만이 남겨졌다. 엄마의 빈자리가 아물어지지도 않은 채 또 하나의 빈자리를 만들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알았으면 끊고 빨리 전화해. 아직 안 했지?”
“넌 너무 나를 잘 알아. 끊는다.”
바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호주에 있을 때 최소 1주일에 1번씩은 전화를 했었다. 1년에 52번 이상을 했다는 건데 주기적으로 전화를 하면서 느낀 게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빠의 말 수가 줄어들었다. 그게 좀 이상했다. 아빠와 어색한 사이도 아닌데 말이다. 전화 내용을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 나 혼자만 얘기하고 있었다. 왜 일까? 사람이 말 수가 줄어든다는 건 감정에 변화가 있거나 비밀을 지키기 위한 방어수단일 텐데.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되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번엔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는 몇 초 걸리지도 않고 바로 받았다.
“어.”
“나 도착했어. 지금 땅끝마을이야.”
“어.”
“이제 아침 먹어. 전라도 한정식으로 다가.”
“어”
“부럽지?”
“어.”
“…… 끝는다.”
“어.”
확실하다. 나의 빈자리는 애당초 없었다. 그래도 이것저것 사주길래 없는 정이 조금이나마 생긴 줄 알았다. 아침에 조욱(朝旭)이 뜨고 저녁에 석양이 지듯이 누나와 나의 관계는 여전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다. 가끔 밤에 달이 삭에서 초승달, 상현달, 그리고 보름달이 되는 것처럼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다시 보름달에서 하현달, 그믐달, 그리고 삭이 될 것이다. 이름이 바뀐다고 해도 달은 달이지 않은가.
화장실을 갔다 오니 한상이 균형을 이루면서 이쁘게 차려져 있었다.
총 16종류의 음식이 나를 반겼다.
처음 보는 녀석들도 있었다. 검고 자장면 줄기같이 보이는 톳과 노오란 계란을 같이 볶은 음식. 처음 보는 젓갈인데 맛을 보니 생선을 갈고 비린내를 잡기 위해 된장 간을 쌔게 한 음식. 시금치보다 좀 더 큼직하고 입안을 거칠게 맴도는 깻잎 같은 식감을 가진 나물에 들깨가루를 버무려 고소한 내가 나는 음식.
아마 이 맛은 이 곳에서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음식들은 전체적으로 간이 쌔고 고춧가루를 많이 써서 매웠다. 전라도 음식답게 맛났다.
“잘 먹었습니다.”
계산을 하고 나왔다.
4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겨울은 여름과 달리 일몰시간이 빠르다. 누군가가 이른 6시부터 붉은 하늘을 검은색으로 칠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내가 아무리 많이 걸어도 국토대장정의 가장 얕은 걸음이 된다. 그렇더라도 최대한 많이 걷고 싶었다.
인도네시아 친구의 허니문을 위하여.
땅끝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증발했던 식은땀이 증폭했다. 버스에서 체감했던 경사보다 더 비탈져 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험난한 곳에 왜 마을이 있는지, 누가 국토대장정의 시작을 땅끝마을에서 하는 분위기로 만들었는지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이 고비만 넘기면 이런 의문은 찾지 않을 해답이 된다. 나는 그 해답을 찾지 않기 위해 오르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차들은 꼬불꼬불하고 비탈진 도로 때문에 굼뜨게 운전을 했다. 그런 차들의 장단에 맞춰 나도 가방 때문에 굼뜨게 걸었다. 아침에 가방이 생각보다 무겁다고 느꼈지만 막상 시작하니 점점 더 무겁디무거웠다. 누군가 뒤에서 몰래 돌멩이를 하나씩 올려놓고 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견뎌야 한다. 며칠만 고생하면 이 가방의 무계가 익숙해질 것이다. 그때까지만 참기로 했다.
어느 정도 오르자 삼거리가 나왔다.
뒤를 돌아 땅끝마을을 봤다.
나의 출발지가 작게 보였다. 조금 더 걷다가 보면 더 작아지겠지. 그리고 더 걷다가 보면 콩알만큼 작아서 손가락으로 집는 시늉을 하겠지. 오늘이 지나면 보이지 않는 이 곳은 그저 내 기억과 사진 속에만 남아있겠지.
미안하지만 기약 없는 안녕은 하지 않으마.
내가 없을 동네여.
땀이 등을 젖힐 때 오르막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고난의 언덕은 짧았다.
오르막이 끝나자 내리막이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자연은 보상을 주는 듯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따스한 바람은 없이.
전화가 왔다. 호주 번호였다.
“네~”
“여, Bro. 한국 가니 좋나?”
“민우냐?”
“나 말고 니한테 전화해주는 사람도 있나? 아, 있구나. 보이스피싱. 하하하.”
“…… 나 국토대장정 중이다.”
“그래? 어느 기업으로 가는데? 근데 11월에도 하는 데가 있나?”
“몰라, 혼자서 하는 중이다.”
“진짜가? 위험한데. 조심해라, 재일 무서운 게 사람이다. 사람. 요즘 한국 뉴스 보면 사람 많~이 죽던데. 살인 파티하는 거 같더라.”
“이제 시작하는데 참 좋은 말만 해주네.”
“아하하하. 미안하다, 미안. 걱정돼서 하는 말이제.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생명보험은 내 쪽 계좌로 옮겨 놓는 거 알제?”
“끊는다.”
“알~앗다, 알았어. 하하하. 그래서 어떻게 하는데? 낮에는 자동차 몰고 저녁에 호텔에서 묵나?”
“…… 텐트 치고 잡니다.”
“텐트!? 미칬나? 니 얼어 죽는다. 그리고 니 아무 데나 치면 불법인 거 알제?”
“뭐?”
“불법이라고. 슬마 니 몰랐나?”
몰랐다. 난 망했다.